[스페셜2]
'듄'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VFX 슈퍼바이저에게 듣는 제작기
2022-03-25
글 : 임수연
'듄' 시리즈의 새 역사는 시각으로부터

3월27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술 파트의 가장 강력한 수상 후보는 단연 <듄>이다. 이미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전초전이라 불리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촬영상, 음악상, 음향상, 미술상, 특수시각효과상을 받았고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서도 미술상, 시각효과상, 음악상을 휩쓸었다. 오스카에서는 작품상과 각색상 외에 편집상, 의상상, 음향상, 음악상, 촬영상, 미술상, 특수효과상, 분장상 등 기술 부문에서 강세를 보이며 총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수상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처럼 <듄>의 기술적 성과가 시상식 시즌에 두드러지게 주목받는 것은 단지 예산의 규모나 기술력 때문만이 아니다. 1965년 출간된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 소설 <듄>이 영화화되기 어려운 프로젝트라는 편견이 팽배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난관은 수십년간 열성적인 독자들이 각자 그리는 ‘듄’의 세계가 모두 달랐다는 데 있었다. 소설이 묘사하는 비주얼은 수십년간 견고했던 팬덤을 만족시킬 만한 완성도로 시각화된 적이 없었고, 영상화된 <듄>의 불가능성에 대한 신화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없던 세계를 새로이 만들어야만 했다. <컨택트>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 감독은 팬덤이 막강하고 각색이 어려우며 거대 예산을 필요로 하는 SF 대작을 만들어야 할 때 앞으로도 가장 먼저 소환될 이름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작업했던 스탭들과 함께 <듄>을 둘러싼 오래된 악명을 깨부수며 기존 독자와 새로운 관객, 평단이 고르게 흡족할 만한 유니버스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신비 속의 프로젝트였던 <듄>은 어떻게 월드와이드 매출 4억달러 이상을 올리며 성공적인 프랜차이즈의 첫 작품이 되었을까. 프로덕션 디자인과 시각효과(VFX)를 책임진 패트리스 베르메트와 폴 램버트를 화상으로 만나 <듄>의 비주얼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물었다.

단서는 책 안에 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미 15살 때 원작 소설 <듄>의 스토리보드를 만들었다. 그가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하기도 전이었다. <프리즈너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에너미> <컨택트> 등 드니 빌뇌브 감독 세계의 시각적 무드를 책임져온 패트리스 베르메트 프로덕션 디자이너에게도 <듄>은 “팬들의 기대뿐만 아니라 드니 빌뇌브 감독의 기대에도 부응해야 했기 때문”에 도전적인 작업이었다. “나도 10대 때 원작 소설을 읽었지만 그것은 내가 읽었던 많은 책들 중 하나였다. 드니가 <듄>을 함께하자고 했을 때 책을 다시 읽고 이 안에 담겨 있는 모든 요소를 추출하기로 결심했다. 세계에 대한 단서들을 메모하고 영화의 모든 측면을 압축하며 프로덕션 디자인을 했다.”(패트리스 베르메트) 가령 책에서는 “아라키스는 인류에 의해 건설된 가장 큰 건축물”이라든지 “아라키스에서는 바람이 시속 880km로 부는데 금속을 찢을 수 있다”라는 묘사가 있다. 때문에 아라키스 행성의 건축물은 비스듬하게 지어졌다. 사막 행성에 지어진 건축물은 실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두꺼운 벽이 필요하고, 직사광을 피하고 바운스 라이트(실내의 천장이나 벽 등에 비추어 그 반사광으로 조명하는 조명법 또는 그 조명광)를 사용하게끔 세트를 만들었다. 아라키스 행성에서는 탁 트인 사막을 가로지르기보다는 바위에서 바위로 이동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좋은 건축과 디자인은 외관만 멋진 게 아니라 목적이 있어야 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더 믿게 하려면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라는 감독과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믿음은 10191년 행성간 여행을 전제로 한 <듄>의 배경에 타당한 설득력을 부여했다.

그린 스크린이 아닌 옐로 스크린

드니 빌뇌브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다큐멘터리적 접근 방식을 선호하며, 배우와 스탭에게 가능한 한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듄> 역시 그린 스크린을 배경으로 놓고 촬영한 뒤 VFX로 배경을 덮씌우는 대신 4831m2 크기의 사운드스테이지(촬영과 녹음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설계된 스튜디오. 방음 시설을 갖추어 대사를 녹음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편집자)에서 직접 하나하나 세트를 짓는 쪽을 선택했다. 프로덕션 디자인팀이 레퍼런스를 모으고 구체적인 그림을 그린 기간만 7개월에 다다른다. “프리프로덕션 첫날, 제작자 중 한명이 내게 물었다. ‘멋진 이미지지만 이것들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요?’ 실현 가능성을 함께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다.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우리는 해냈다.”(패트리스 베르메트) 물론 VFX 작업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2049>를 함께한 폴 램버트 VFX 슈퍼바이저는 “마블 영화처럼 블루 스크린이나 그린 스크린 배경으로 촬영한 후 모든 것을 VFX로 만들기보다는 포스트프로덕션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작품을 촬영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려고 했다”고 전한다. 그 결과 고안된 것이 브라운 컬러의 옐로 계통의 스크린이었다. 프로덕션 디자인팀은 모래색과 비슷한 색상의 원단으로 세트를 만들었고, 이른바 ‘옐로 스크린’은 3가지 정도의 빛을 벽에서 반사시키며 배우들이 적절한 조명을 받을 수 있게끔 했다. 옐로 스크린에서 파생되는 빛은 촬영감독에게도 상상선이자 빔이자 기둥으로서 디렉션을 주었다. 폴 램버트는 “촬영 전 테스트를 통해 옐로 스크린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라며 무엇보다 <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쓰는 헬멧과 가리개가 장점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옐로 스크린을 썼기 때문에 마치 가리개에 사막이나 허리케인이 비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첨단 컴퓨터가 없는 시대의 과학 기술

최첨단 컴퓨터가 없는 시대의 SF는 현대적 스크린 대신 어딘가 레트로적인 장치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장치가 홀로그램과 보디 실드다. 폴 램버트 VFX 슈퍼바이저는 “컴퓨터로 직접 인간을 구현하는 것은 정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며, 무엇보다 완벽하게 리얼한 인간을 만드는 것은 아직 어렵다”고 말한다. “우리는 실용적인 기술과 새로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혼합을 생각해냈다.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샬라메)가 움직일 때마다 그의 좌표를 알 수 있게끔 인터랙티브하게 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그렇게 컴퓨터로 만든 홀로그램이 탄생했다.”(폴 램버트) 폴 아트레이데스와 거니 할렉(조시 브롤린)이 싸우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보디 실드는 <7인의 사무라이>의 명장면을 참고한 것이다. 프레임을 섞고, 분리하고, 미래의 프레임을 추출하고 혼합하는 등의 시행착오를 거쳐 얻어낸 장면을 처음 봤을 때 폴 램버트 VFX 슈퍼바이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라는 고민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타격이 적중했을 때는 빨간색, 빗나갔을 때는 파란색이 나오는 클래식한 설정의 아이디어를 도입해 지금 영화에 등장하는 전투 신을 완성했다.

<듄>의 제국주의와 브루탈리즘 건축

<듄>의 아라키스 행성과 원주민 프레멘, 스파이스 자원을 둘러싼 귀족 가문들의 우주 전쟁은 석유와 석탄을 놓고 촉발된 제국주의 시대 식민 통치를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듄>의 건축이 브루탈리즘(거대한 콘크리트나 철제 블록 등을 사용하여 추하게 여겨지기도 한, 특히 1950~60년대 건축양식)에서 영감을 얻은 것 역시 “건축은 자연적 현실에 대한 반응”(패트리스 베르메트)이기 때문이다. 식민지 행성에 온 제국주의자들은 원주민들에게 힘을 과시하고 그들이 자신에게 복종하게끔 강조하는 건축물을 지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아이디어는 <듄>의 프로덕션 디자인 컨셉을 결정하는 중요한 열쇠가 됐다.

잠자리를 닮은 오니솝터는 어떻게 탄생했나

<듄>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잠자리 모양의 비행기, 즉 ‘오니솝터’는 새나 곤충의 날갯짓으로부터 고안된 오래된 비행 아이디어 중 하나다. 원작이 1965년에 출간된 소설인 만큼 <듄>에는 첨단 비행선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비행법을 고민하던 1490년부터 역사가 이어져온 오니솝터가 어울린다. 책에 묘사된 오니솝터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프로덕션 디자인팀은 각각 12t에 다다르는 비행기 모형을 두대 제작했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로, 또 요르단으로 오니솝터를 실어 나르며 실감나는 비행 시퀀스를 만들었다. 오니솝터의 날개는 VFX로 추가한 것이다. 폴 램버트 VFX 슈퍼바이저는 “날개의 펄럭거림이나 모션 블러(CG에서 고속으로 운동하고 있는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 고속 운동 중인 물체를 필름으로 촬영한 경우, 한 코마 한 코마의 화상은 운동 방향에 대해 블러로 찍힌다. 이 블러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물체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편집자)를 얻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설명한다. 날개의 변화가 비행 속도 및 모션 블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프레임당 11개의 샘플을 렌더링했다. 가령 1초짜리 클립이 있다면 24프레임에 11을 곱한 264가지의 계산이 필요한 것이다. 폴 램버트 VFX 슈퍼바이저는 “계산 과정이 무겁고 까다로웠지만 오니솝터의 날개를 실감나게 구현하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고 전했다.

사막, 모래 그리고 모래괴물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듄>은 험난한 사막 촬영과 모래와의 사투를 필연적으로 견뎌야 하는 현장이었다. 무려 18t의 모래를 동원해 풍력 기계로 불어가며 관객이 실제 사막의 건조하고 냉혹한 무드를 실감할 수 있도록 촬영했다. 관건은 VFX로 구현할 수박에 없는 모래괴물(sandworm)의 움직임과 모래의 상호작용을 자연스럽게 관리하는 것이었다. 폴 램버트 VFX 슈퍼바이저는 “모래에서 뱀과 지렁이의 움직임을 참조해 시각효과를 시뮬레이션했다. 그런데 시뮬레이션을 할수록 이것은 모래 속의 모래벌레가 아니라 물속의 고래와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한다. 이유는 사막의 거대한 모래언덕은 마치 바다의 물결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모래벌레와 모래가 충돌할 때 이는 파도가 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이것은 점점 모래벌레(sandworm)가 아니라 모래고래(sandwhale)에 가까워진다. 이것은 고래 애니메이션의 일반적인 언어이자 모래효과였다.” (폴 램버트)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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