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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텔 톤과 무채색의 만남
모른 척해줬으면 할 땐 굳이 인사해서 난감하게 만들고, 친구들이 보는 앞에선 내 인사를 무시하는 대학 동기. 시력이 나빠서 못 봤다는데, 그 말을 믿어도 될까? 뭐든 애써서 노력하는 과 대표 시원(강은빈)은 유명 영화인 집안에다 ‘타고난 인기남’인 다운(조혁준)이 부담스럽다. “시원이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에 다채롭고 다양한 옷을 입고, 다운이는 남의 시선에 크게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무난한 걸 좋아한다고 설정했어요.” BL(Boy’s Love) 팬덤에서 연출력을 인정받아 ‘BL계 봉준호’라고 불리는 황다슬 감독은 두 캐릭터의 차이가 옷차림에서도 드러나길 바랐다. 강은빈은 이 차이를 “시원이는 파스텔 톤, 다운이는 무채색”이라 요약하기도 했다. <블루밍>(제작 케나즈·배급 NEW)은 성격도 빛깔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대학 영화과 신입생으로 만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풋풋하고 달짝지근하게 그린 BL 웹드라마다. 지난 3월31일 공개되어 네이버 시리즈온 실시간 1위, 일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인무잘’로 시작해 ‘블루밍’으로 끝나는 이야기
<블루밍>은 탁본 작가의 BL 웹툰 <인기는 무언가 잘못되었다>(이하 <인무잘>)를 원작으로 한다. 1회당 15분 내외, 전체 분량은 11부작. “<인무잘>이란 부제가 붙은 1화로 시작해서 마지막 11화에선 부제 없이 <블루밍>으로 끝나요. <인무잘>로 스타트해서 <블루밍>으로 마무리하는 프로젝트라는 걸 담고 싶었습니다.” 황다슬 감독은 작품의 부제와 숨은 뜻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인무잘>에서 시작했지만 <블루밍>만의 색을 입으면서 원작 속 요소가 많이 각색되었다. 시원과 다운의 전공은 정치외교학과에서 영화과로 바뀌었고, 다운의 부모는 대기업 임원에서 유명 영화감독과 제작자로 바뀌었다. “시중에 교양 강의를 함께 들으면서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캠퍼스물이 많아서 색다른 과목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라고 황다슬 감독이 말했다. “극중 영화과 과목이나 과제들은 제가 직접 경험했던 것들을 많이 차용했습니다.” 감독 자신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출신이라 디테일한 설정이 가능했다.
로맨틱 멱살잡이
캠퍼스, 바닷가, 그리고 맥줏집. <블루밍>에는 대학 새내기의 공간이 예쁘게 담겨 있다. 촬영 중 많은 로케이션을 오갔지만 강은빈과 조혁준이 특별히 좋아했던 곳은 바닷가. 유난히 두 배우의 합이 좋았다고 한다. 사실 바닷가는 두 캐릭터의 첫 키스 신이 촬영된 장소이기도 하다. “시나리오에 ‘시원이가 풋풋한 모습으로 다운이의 머리를 잡고 키스한다’라고 적혀 있었어요. 머리를 잡고 시도해보니 그림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디어를 냈어요. 멱살을 잡고 끌어당기면 어떨까.” 설레는 첫 키스 신은 알고 보니 강은빈의 로맨틱한 ‘멱살잡이’ 아이디어가 더해진 결과물이었다. 12세이상관람가인 <블루밍>에는 사랑스러운 키스 신이 몇 차례 더 등장한다. 바닷가와 이어지는 실내 신에서 두 배우는 실루엣으로만 등장해 입을 맞추는데, 이때도 강은빈의 센스가 발휘되었다. 줄곧 먼저 다가왔던 다운의 입술을 시원이 조심스레 만지며 설렘을 유발한 것. “시원이가 다운이를 얼마만큼 원하는지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다운이의 입술을 조금씩 만졌죠.”
“L .O.V. E 사랑해 난 이 말이 전부야”
조혁준은 연기뿐 아니라 사운드트랙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가 직접 부른 <L.O.V.E>는 속삭이는 듯한 사랑 노래.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면서 수많은 노래를 불렀을 그이지만, 사운드트랙 작업은 그것과는 달랐다.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느낌을 주는 곡이라 우렁찬 성악 발성으로 부를 순 없더라고요.” 이 곡, <L.O.V.E>는 한국어 버전과 중국어 버전이 따로 녹음되었다. 즉, 그가 중국어 가사도 소화했다는 의미다. 악보에 중국어의 뜻을 메모해가며 연습했다는 그는 이날 방송에서 “솔직히 말하면 외국어를 잘했다기보다 발음 위주로 공부해서 노래에 입혔던 것 같다”고 겸손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작품 공개와 동시에 <블루밍> 사운드트랙도 발매되었는데, <L.O.V.E>의 가수는 조혁준이 아닌, 캐릭터의 이름 다운으로 표기돼 있다. 하지만 그가 부른 곡이란 걸 알고 들으면 좀더 말랑말랑하고 설레는 건 왜일까.
신인배우 강은빈, 조혁준의 첫 장편 주연작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시원이의 생각과 말이 저와 닮아 있다고 느껴져서 애정이 많이 갔어요. 시간이 흘러 <블루밍>을 다시 보면 신인으로서 풋풋하고 열정적으로 임했던 저를 발견하고 뿌듯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강은빈은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해왔다. 그는 이날도 대학로에서 연극 'B 클래스' 공연을 마치고 스페이스 방송에 참여했는데, <블루밍>은 그의 첫 장편 주연 드라마다. “이런 관심과 사랑을 처음 받아봐서 얼떨떨하고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하는 조혁준도 <블루밍>으로 첫 장편 주연 드라마 필모그래피를 완성시켰다. 스페이스의 마지막, 두 배우는 배우로서의 포부를 들려주었다.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강은빈은 “작품과 캐릭터를 소중하게 생각하겠다”고 다짐했다. 조혁준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그리고 그 생각과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객이 보고 공감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는, 그런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