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관객이 극장에 가지 않는 이유를 말한다 - 관객 4인 대담
2022-04-14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다양성이 제일 중요하지만, 가장 좋은 건 기본 아닐까

극장영화의 위기를 논하고 비상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혹은 영화계 내 단체들이 몇번의 테이블을 마련했고, 정부와 극장 차원에서 가시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 관객의 목소리는 늘 빠져 있었다. 도화선을 지핀 것은 최근 CJ CGV의 영화 티켓 가격 인상 소식이었다. 이제 CGV에서 2D영화를 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1만5천원(주말 기준)이 됐다. 영화계가 코로나19 직격타를 맞은 지 3년차에 접어든 지금, <씨네21>은 영화 제작자와 투자배급사, 극장이 겪는 고민만큼 관객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판단했다. 대학 영화동아리 회장과 영화과 학생, 독립예술영화관 서포터스와 멀티플렉스 극장 VVIP 회원 등 대표성을 지닌 4인의 관객을 초청해 코로나19 이후 극장영화의 위기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이들의 대화는 기업과 영화 제작자가 겪는 어려움을 중심으로 논의됐던 포스트 코로나 영화산업 담론에 반드시 탑승해야 할 핵심적인 재료가 될 것이다.

장혜령, 김태현, 김한슬, 박세훈(왼쪽부터).

김태현 | 2020년 서울대학교 영화공동체 ‘씨네꼼’에서 회장을 맡았다. 지금은 학교에 다니면서 웹기획 개발을 하고 있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가리지 않고 보는데, 한창 많이 볼 때는 한해에 100~200편씩 봤다. 지금은 2주에 한편 정도 보는 것 같다. 가장 최근에 극장에서 본 영화는 <패러렐 마더스>다.

김한슬 |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18학번. 영화는 공부할 때 주로 보는데, 아무래도 프랑수아 트뤼포처럼 옛날 고전영화를 많이 접하게 된다. 평소에는 생각을 덜 할 수 있는 가벼운 작품을 선호한다. 코로나19 이후에는 극장을 거의 가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극장에서 본 영화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다.

박세훈 | CGV VVIP 회원. 일부러 영화관 할인이 되는 카드를 두장이나 쓰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꾸준히 극장을 찾아 영화를 챙겨본다. 가장 최근에는 <모비우스>를 봤는데, 일부러 굿즈를 주는 4DX관 상영 회차로 감상했다. 마블 영화를 포함해 ‘돈값’ 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장혜령 | 예술영화관 아트나인 서포터스 ‘아트나이너’로 활동하며 소식지에 실리는 영화 리뷰와 기사를 썼다. 원래 극장에서 영화를 일주일에 2~3편씩 봤던 영화광이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1~2편 정도만 본다. 대신 OTT로 한국·미국·영국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보고 있다. 가장 최근에 극장에서 본 영화는 <모비우스>다.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여전히 20만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식당과 카페, 술집, 놀이공원에 간다. 백신 접종률이 86%를 돌파하고(2차 접종 기준) 일상 회복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면서 점차 회복세에 접어든 업계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유독 극장은 침체기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장혜령 극장은 환기가 되지 않고 어둡다. 코로나19 시대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취식이 금지됐지만 팬데믹 초기에는 마스크를 벗고 폐쇄된 곳에서 무언가를 먹는 행위가 위험하다는 인식도 있었다. 팝콘 먹는 즐거움도 사라졌는데 여전히 극장에 가기 위해서는 왕복 시간도 든다. 그에 반해 OTT에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졌다. 넷플릭스 프리미엄 구독료 1만7천원과 주말 CGV 티켓값 1만5천원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렇게 사람들은 집에서 쉽게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하는 습관에 길들여졌다. 제작사들이 영화에 투자를 덜하면서 영화의 질도 많이 낮아졌고, 볼만한 개봉작이 없으니 극장에는 재개봉, 재재개봉하는 영화가 많아졌다. 극장 체험을 강조하는 작품이 아니고서야 극장에 안 가게 되지 않을까.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마케팅을 해야 하는데 극장 상황이 어렵다며 요금을 두번이나 올리는 것은 해결책이 아닌 것 같다.

김태현 소비자 입장에서 극장이라는 공간은 기본적으로 장소를 대여해주고 먹을 것을 파는 곳이다. 그런데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요즘엔 너무 많이 생겼다.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대면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요구가 더 커지는데, 사실 극장이 소통의 공간은 아니다. 그럴 바에야 사람들과 얼굴 마주보며 수다 떨 수 있는 곳을 가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혼영’이라는 말이 생긴 것은 혼자 영화를 보는 게 일반적이지 않아서다. 그런데 요즘엔 여러 명이 함께 영화 보러 가기가 주저되는 상황이다 보니 극장 문화 자체가 많이 쇠퇴한 게 아닐까. 이런 점에서 현재 극장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 선택지는 모텔이라고 생각한다. 모텔 대실료가 극장 2인 티켓값보다 더 저렴하고,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떠들면서 무언가를 볼 수 있다. 요즘엔 넷플릭스가 구비되어 있지 않은 숙박업소가 없다.

김한슬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직전 한국영화 관객수가 역대 최대 수치를 기록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영화관에 관객이 오지 않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영향이 가장 컸다. 아직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이 굉장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영화는 이제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영화를 공부하고 만드는 학생 입장에서 어떤 영화가 극장에 걸리기를 원하는지, 코로나19 이후 영화는 어떻게 될 것인지와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만난 관객은 극장에서 겪는 공동의 경험이 극장에 가는 이유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팝콘 먹는 소리가 거슬린다고 하지만 그것도 관람의 일부다. 웃긴 포인트에서 다 같이 웃는 경험이 코로나19 이후 어려워졌다. 그래서 코로나19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된다면 극장영화가 다시 부활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드는 동시에 코로나19 이후 가속화된 비대면 문화로의 흐름을 고려해야 한다. OTT의 편리함과 즐거움을 느낀 관객이 다시 극장을 찾게 하려면 단순한 영화 감상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극장이 제공해야 한다.

박세훈 친구들과 어울려서 대화할 때 예전에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 봤어?”라고 했다면 최근에는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봤어?”라고 한다. OTT의 화제작들이 대화의 주제가 되기 때문에 극장에 가는 것보다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는 것이 사회생활에도 이롭다. (웃음) “집에서 ‘치맥’ 먹으면서 TV로 영화를 볼 수 있는데 불편하게 밀폐된 공간에서 답답하게 마스크 끼고 앉아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코로나19 초기에 많이 했다. 실제로 볼만한 영화가 많이 개봉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극장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역대 스파이더맨들이 등장하는 신은 집에서 혼자 봤다면 그냥 무릎을 치고 말았겠지만 극장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반응하니 “나만 소름 돋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감탄사를 동시에 내뱉는 경험은 극장에서밖에 할 수 없다.

<듄>의 성공이 의미하는 것

예전에는 완성도가 높지 않아도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들이 있었다. 팬데믹 상황에서는 <모가디슈>만큼 만들어도 361만, 역대 스파이더맨이 총출동해도(<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755만 관객이 상한선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극장을 가게 만드는 것은 어떤 영화인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영화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인가.

김한슬 시청각적으로 고심해서 만든 영화만이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드라마적인 서사가 중요시되는 이야기는 유튜브에도 OTT에도 넘친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짧은 영상들을 단편영화로 볼 수도 있고, 기존 방송국들도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있다. 미디어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관이 차별화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사운드 전공자들이 하는 걱정을 많이 접한다. 돌비 애트모스 기술, 공간감이 느껴지는 음향 디자인을 고려해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었는데 OTT로 가면 이게 하나의 트랙이 된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아쉬운데 관객도 분명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이미지와 사운드가 주는 감각적인 차이와 몰입감이 우리가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차이다.

박세훈 우리 집 TV는 아이맥스 비율과 돌비 사운드를 구현하지 못하고, 이웃이 신경 쓰여서 볼륨을 높일 수도 없다. 소파도 4DX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집에서 하지 못하는 경험을 영화관에서 할 수 있을 때 극장을 찾는다. 아이맥스 카메라로 찍어서 1.43:1 비율이 나오는 장면이 존재하면 아이맥스관을 찾고, 최근에는 <모비우스>와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재개봉을 4DX관에서, <더 배트맨>을 코엑스 돌비시네마관에서 봤다. 티켓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집에서 경험할 수 없는 요소를 하나라도 갖추고 있는 영화라면 극장을 계속 찾을 것 같다.

장혜령 앞으로 어떤 영화는 외면당하게 될 것인가를 고민해봤을 때, 오히려 서사가 중요해질 것 같다. 요즘 개연성이 없거나 결말이 흐지부지하게 용두사미로 끝나는 시나리오가 너무 많은데, 이렇게 가면 더이상 시장에서 먹히지 않을 것 같다. 요즘은 CGV 에그지수가 실시간으로 뜨니까 포장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완성도가 떨어지면 안 좋은 입소문이 빨리 돈다. 그리고 여러 이슈로 개봉하지 못했던 영화들이 창고 대방출처럼 공개될 때 유행이 지나서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특히 영화 <이웃사촌>을 봤을 때 그랬다. 천만 영화 감독이 연출하고 정우라는 배우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억지 설정과 억지 신파를 강요하는 서사라서 불편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도 트렌드를 읽지 못한 영화였다. 원작이 중국 소설인데 한국에서는 중국을 이슈로 하는 것이 별로 먹히지 않고, 북한 배경으로 각색했지만 이 역시 한국에서는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다. 에로라고도 역사소설이라고도 할 수 없고, 금지된 사랑이나 북한 사상에 대해서도 포인트 없이 퀼트 보자기처럼 만든 영화였다. 2차 시장으로 직행할 것 같은 영화가 개봉하는 것을 보면 1만5천원을 주고 보느니 OTT에 풀리면 봐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영화들이 점점 길어진다. 3시간 가까이 되는 <더 배트맨>을 보기 위해서는 작정하고 시간을 비우고 체력까지 준비가 되어야 한다. 점점 영화는 대중이 아니라 소수 시네필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역이 되어가는 것 같다. 대중과 더 멀어지지 않으려면 대기업이 만든 <영웅>과 같은 대작이 개봉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오늘 심심한데 영화나 볼까?” 하는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김태현 코로나19 시국에 흥행한 영화 중 가장 의외였던 것은 <듄>이었다. 예고편을 보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금 개봉하는 걸까? 사람들이 보기는 할까?”라고 생각했다. 개봉하자마자 봤을 때도 중간에 졸았고 흥행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듄>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 <듄>이 제공하는 감각의 스펙터클은 OTT가 제공할 수 없다. 숏폼이 유행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긴 서사를 가진 영상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러닝타임이 길더라도 제대로 된 스펙터클을 보여줄 수 있는 서사를 가진 영화들이 경쟁력을 가질 것 같다.

CGV 영화 티켓값 인상 소식이 떴을 때 관객의 거부감이 상당했다.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면 배달팁까지 포함해 1인당 2만원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 시대에, 왜 관객은 영화에 1만5천원을 지불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김한슬 대체물이 너무 많다. 무료로 볼 수 있는 영화도, 영화라고 느낄 수 있는 콘텐츠들도 많다. 넷플릭스 스탠더드 기준으로 한달에 1만3500원이면 많은 영화를 볼 수 있는데, 영화관에 한번 가는 데 비슷한 비용을 써야 한다면 그만큼의 가치를 극장이 계속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티켓값 인상을 위해 소비자들에게 책임을 나눈 것이다. 유튜브에서도 무료로 웰메이드 영상물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소비자들이 거기에 응할 필요가 없다. 유튜브에서 만들어지는 숏폼, 숏필름이 많이 있는데 굳이 그 이상의 비용을 주면서 단발적인 소비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회 비용이 너무 달라진 거다. 배달음식에 배달팁까지 지불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배달팁은 내가 직접 받는 편의를 위해 내는 비용이라면 극장 비용은 내게 그만큼의 편의를 주지는 않으니까.

장혜령 극장은 중장년층 관객이 지갑을 열어야 수익이 많이 나는 곳인데, 코로나19에 취약한 연령대다 보니 극장에 오는 것을 많이 꺼린다. 취식을 금지하고 좌석 거리두기를 해서 정작 청정구역이 된 극장을 찾지 않는 이유는 생계와 관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팬데믹 상황에도 사람들은 먹고 씻고 자는 것을 중요시한다. 때문에 식당에는 가지만 영화는 문화생활이기 때문에 가장 빨리 포기하는 선택지가 된다. 한국 극장 티켓값이 다른 나라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팬데믹에 두번이나 가격을 인상한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극장에서 큰 수익을 올렸던 대기업이 이렇게 가격을 올리는 것은 횡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한다. 뮤지컬은 10만원 넘는 티켓을 구입해야 볼 수 있지만 영화는 부담없이 볼 수 있는 대중문화였다고 생각해서 더더욱 그렇다.

김한슬 예전에 영화계가 멀티플렉스 극장을 반기지 않았던 걸로 안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영화 제작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는가, 수익 분배를 정당하게 했는가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 티켓값까지 인상하니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 외국에 비해 티켓값이 싸다고 하더라도 극장은 이미 많은 것을 취하고 있다. <옥자> 개봉 때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상영 거부를 하며 극장을 강력하게 지키려고 했던 만큼 지금 극장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제대로 마련했어야 했다. 지난 2년간 마케팅이라든지 다양한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었을 텐데 결국 나온 대책이 티켓값 인상이라면 이는 너무 1차원적인 방법이다.

박세훈 친구들이 “너는 영화를 왜 그렇게 많이 보냐?”라고 물었을 때 “가장 가성비가 좋은 문화생활”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연극을 보려면 2만원, 뮤지컬을 보려면 10만원 정도가 드는데 영화는 만원만 내면 2시간 동안 꽤 괜찮은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 주말에 영화를 보려면 1만5천원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내 머릿속에서 아직도 조조영화는 6천원, 일반 영화는 만원인데 말이다. 이제는 한달 동안 영화를 안 보고 참으면 가장 저렴한 뮤지컬 좌석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쿠팡플레이는 4천원대에 구독할 수 있다. 위로는 뮤지컬, 아래로는 OTT와 가격을 비교하다 보면 영화가 더이상 가성비가 좋은 문화생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학과에 다니고 있는 김한슬씨의 얘기를 듣고 싶다. 요즘 영화과 학생들이 영화감독이 아닌 OTT쪽 회사 취업을 알아본다든지 시리즈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어떤가. 장편영화 입봉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서 생기는 현상 같다.

김한슬 주야장천 시나리오를 쓰고 줄 서서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연출로 나가기 전에 스탭으로 일할 수 있는 곳도 많기 때문에 경험을 쌓는 경우도 많다. 연출뿐만 아니라 촬영, 녹음 같은 기술 파트에서도 감독이 되려면 거의 20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럼에도 자기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젊은 감독들도 있다. 또래 중에도 촬영감독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다 보니 다른 분야에서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것 같다.

김태현 주변에 영화하는 분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영화는 명문대생들의 무덤이다.” 이른바 고시낭인처럼 영화낭인이 된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신랄하게 얘기하자면 그나마 잘 풀리면 대학원에서 학위받고 강사라도 할 수 있는데 딱 그 정도다. 영화감독으로 입봉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데 영상산업 전체로 보면 오히려 기회가 굉장히 많다. 그러니 영화가 아닌 다른 분야로 가려고 하는 것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선정작을 발표하면서 문석 프로그래머가 “소재라는 측면에서 보다 다양해졌고 장르적인 시도 또한 많았던 것 같지만 전반적인 질적 수준이 낮아졌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고 선정의 변을 밝혔다. OTT 등 플랫폼의 확대와 코로나 팬데믹 장기화를 그 배경으로 들었는데, 관객 입장에서도 저예산 독립예술영화의 질적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고 느끼나.

장혜령 지금 개봉하는 작품들을 보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아진 건 맞다. 그리고 미국·유럽 영화보다 한국영화가 더 그렇다. <벌새>와 <남매의 여름밤>처럼 좋은 독립영화가 잘 나오지 않는다. 좋은 인력들이 다른 분야로 빠져나간 이유가 크지 않을까. 그럼에도 주변에는 아직 독립·예술영화를 보는 친구들이 많고 영화제는 계속 매진이라 수요층이 아예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은 들지 않지만, 업계가 어려운 만큼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김태현 지금 능력 있는 사람들은 영화판이 아니라 웹소설, 웹툰, 웹드라마, 뮤직비디오쪽으로 가고 있다. 사람들은 돈과 관심이 쏠리는 곳에 가고 싶어 하고, 영화가 더이상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게 된 것이다.

김한슬 저예산 독립영화의 질적 수준이 낮아졌다기보다는 수용자들의 수준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 영화제에 출품되는 작품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관객이 실망감을 느낀다면 그건 보는 이들의 눈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영상물에 특화된 MZ 세대는 시청각적인 안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관객은 이미 많은 자극을 받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단편·독립영화에 새로움이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독립영화계의 질적 수준이 올라가고 예술적인 성취를 이루어내길 바란다면 그만큼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독립영화는 그 안에서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시네마테크는 잘 유지될 것 같다. 한 차원 더 깊은 문화생활을 영위하고 예술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파생된 것이 시네마테크다. 관객의 질적 수준이 높아지면 시네마테크 역시 유지될 수 있다. 지금 대중문화는 MZ 세대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가격 인상 정책은 MZ 세대를 제외하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이미 많이 어긋나버렸다.

새로운 영화문법을 고민해야 할 때

'보수적’이라는 키워드로부터 질문을 이어가고 싶다. 타 분야에 비해 영화는 주요 직책을 맡거나 실제 현업에서 뛰는 플레이어들의 연령대가 높다. 관객 입장에서 영화가 상대적으로 올드한 매체로 느껴지나. 영화가 올드 미디어이기 때문에 재능 있는 신인들은 웹소설이나 웹툰 업계로 흡수되고 있는 것일까.

김한슬 올드함을 많이 느끼고 있다. (웃음) 오히려 영화 공부를 하면서 보는 옛날 영화들이 굉장히 새롭다. 지금 대중이 보는 상업영화에는 그만큼 새로운 시도가 있을까? 영화적인 새로운 문법을 제시하고 있는가? 이런 의문이 계속 들었다. 플레이어들의 연령대가 높아서 영화가 올드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제작자들이 나태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인과 관계자들의 에세이를 모은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 영화의 미래를 상상하는 62인의 생각들>이란 책을 낸 적이 있다. 그때 주진숙 영화연구가가 쓴 글이 생각난다. 관객은 영화가 주는 기존 문법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는데 지금 우리는 새로운 문법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극장영화의 새로운 문법의 도약 없이는 극장이 점점 쇠퇴할 수밖에 없다. 그게 관객이 생각하는 올드함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나이가 많은 감독도 얼마든지 참신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단순히 나이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영화가 만든 문법이 모든 매체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지금 새로운 영화문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장혜령 소위 거장이라고 하는 감독들도 자기 개발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상도 많이 받고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엄지 들고 인정해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모든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죽을 때까지 자기 개발을 해야 한다. 타성에 젖어 자신이 권위자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영화를 올드한 매체로 만드는 것 같다. 가령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마블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고 한 발언에도 답답함을 느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자신의 장점과 요즘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게임을 결합한 <레디 플레이어 원>을 만들고, 조지 밀러가 요즘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요소를 가미한 리메이크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만든 것처럼 기존 플레이어들의 변화가 필요하다. 젊은 친구들과도 컬래버레이션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김태현 영화는 올드한 매체로 느껴지고, 올드한 포맷이기 때문에 올드한 사람들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어쩔TV’라는 유행어의 유래를 듣고 충격받았다. 어린 친구들에게는 텔레비전이 굉장히 구닥다리로 느껴지는 무언가라서 ‘어쩔TV’라는 말을 하게 됐다고 하더라. 그래도 영화보다는 TV가 트렌디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TV가 구식으로 취급받는다면 영화는 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극장은 점점 더 프리미엄화된 공간으로 바뀌게 될까. 아이맥스나 4DX와 같은 특별관 상영이라든지 굿즈를 주는 회차가 아니라면 극장에 갈 마음이 잘 생기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게 될까.

박세훈 최근에 CGV연남에 갔다가 굿즈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CGV용산을 다시 찾았다. 굳이 교통비를 더 쓰고 수고로움을 감수해서 포스터를 받았다. 1인당 1만4천원의 가격을 지불하기로 결심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최대한 누리고 싶어서다. 4DX관에 가도 프라임 존에 앉지 못하면 100% 누리지 못한 것 같은, 아깝다는 마음이 든다. 예전에는 특별관을 잘 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엔 일반관보다 특별관을 더 많이 간다. 결국 ‘돈값’을 하는, 굿즈를 주거나 익스트림한 경험을 줄 수 있는 곳을 선호하게 된다. 차라리 요금을 일괄적으로 올리는 것보다는 관을 다양화하고 가격도 차등을 두는 게 좋지 않을까. 일반관은 좀더 저렴하게, 특별관은 거의 2만원 가까이 되는 비용으로 책정된다고 해도 개인적으로는 기꺼이 후자를 찾을 수 있다. 특별관도 먼 곳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될 만큼 좀더 다양한 극장에 배치됐으면 좋겠다. 사실 주차별로 다른 굿즈를 모으면서도 내가 굿즈 중심 마케팅에 기꺼이 빨려들어가버렸다는 생각도 든다. (웃음) 역으로 말하면 다른 방식의 마케팅으로도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을 텐데 다양한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굿즈 마케팅 아니면 선착순 무료 티켓 말고는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김한슬 다양성이 제일 중요하지만, 가장 좋은 건 기본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결국 기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했을 때 프리미엄관의 장점도 눈에 보일 수 있지 않나 싶다. 영화 굿즈를 모으는 관객의 심리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매 순간 자신의 선택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기가 본 영화가 휘발되어 잊어버리기보다는 기억하고 향수할 수 있는 순간으로 남길 바라는 게 아닐까. 좋은 영화가 있다면 포스터, 배지, 포토티켓을 갖고 싶은 거다. 관객에게 향수가 그만큼 중요하다면 기본적인 영화관의 형태가 사라져서는 안된다. 기존의 아트하우스관을 유지하면서 영화의 가장 기본을 잊지 말고 고수해야 다양한 프리미엄관과 가격 정책도 소비자에게 유효할 수 있다.

투자는 관객수 외 지표에 의해서도 고려되어야

희망적인 이야기도 비관적인 전망도 모두 나온 것 같은데 앞으로 영화계, 특히 극장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에 대해 각자 생각도 정리됐을 것 같다.

장혜령 지난 3년 동안 가장 직격탄을 맞은 업계 중 하나가 극장이었다. 봉준호 감독님 같은 분이 빨리 차기작을 선보여야 사람들이 극장에 올 것 같다. (웃음) 혹은 천만 감독들의 신작이 개봉해야 사람들이 극장을 찾지 않을까. 기대작들이 개봉을 미루면서 관객의 실망이 누적됐고 점점 더 극장에 가지 않게 됐다. 그사이 OTT에서는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많이 나와서 OTT로 영상을 보는 것이 새로운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10년 정도는 천만 영화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젠 관객수로 평가할 게 아니라 스트리밍 지수를 따지는 등 흥행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투자는 관객수가 아닌 다른 지표에 의해서도 재고되어야 한다.

김태현 일단 영화의 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극장의 위기일 뿐이다. 영화는 변화하는 생태계에서 더 많은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고, 다만 그 과정에서 극장 중심의 문화는 필연적으로 도태될 것이다. 독립영화가 어떻게 관객과 만날 것인지 그 기회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좀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세이브 아워 시네마’(#SaveOurCinema) 캠페인을 벌였지만 문제의 본질엔 가지도 못했다. 새로운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소비자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극장 그리고 독립영화 상영관이 다시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마케팅에 대한 고민이 좀더 필요하다.

김한슬 오늘날 모두가 일상의 회복을 소원하고 있듯이, 그 누구보다 극장의 회복을 고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관객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와 함께,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고 느낄 수 있던 극장의 경험을 기다리고 있는 관객에게 극장이 다시금 소중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더 다양한 영화와 공간의 경험을 극장이 제공할 수 있기를 함께 고민하고 기대하며 응원하겠다.

박세훈 OTT 덕분에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영화를 많이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극장에서 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승리호>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때 보지 않았다가 CGV에서 특별 상영을 했을 때 관람했다. 그때 “극장에서 보니까 괜찮은데?”라고 생각하며 봤다. 아마 이 작품을 스마트폰으로 봤다면 서사가 별로라 재미가 없었을 텐데, 그래픽이 좋다보니 극장 관람이 훨씬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줬다. 분명 극장과 OTT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영화들이 있고 영화 경험을 확장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메기>를 재미있게 봤는데 이 작품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했다는 것을 알고 다른 작품도 몇편 찾아봤다. 마블 영화와 특별관 상영을 좋아하지만 한편으로 내게는 <메기> 같은 영화를 원하는 자아도 있다. 이런 다양성을 보장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본의 논리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시장이라면. 대기업의 선의를 기대할 수 없다면 결국 정부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블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도 독립예술영화를 만나는 그런 영화적 경험들을 계속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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