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동안 영화는 인간과 자연을 분리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바라보는 자와 바라보는 대상의 관계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성영화 시절의 미국영화는 드넓은 평원과 사막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개척 신화를 그렸다. 비슷한 시기 독일 영화감독들은 대자연 앞에서 초라하게 서 있는 인간의 모습에서 모종의 불안을 감지했고, 소비에트 영화감독들은 만물의 생사를 관장하는 자연을 예찬했다. 이후에 등장한 할리우드 재난영화에서 자연은 인류에 멸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위협적인 대상으로 묘사되었다. 영화사의 흐름 속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게 나타났지만 대체로 자연은 인간의 운명으로 다루어졌다. 인간은 자연을 멀리서 바라보았고, 자연은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저 멀리 어딘가에 배경처럼 우뚝 서 있었다.
이제 영화 속 세계에서 자연의 존재 양식은 유동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디지털 시각효과 기술은 자연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묘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고, 그 결과 자연은 단순히 바라보기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자율적인 존재로 다루어졌다. 스크린 속 세계에서 자연은 인간의 지각과 무관하게 존재하면서 고유의 위치, 속도, 크기, 움직임을 갖는다. 이처럼 물리적 법칙을 따르는 특정 자연현상을 묘사하기 위해 입자 효과라는 기법이 주요하게 쓰였다. 입자 시스템이라고도 불리는 이 기법을 활용하면 분수, 연기, 모래바람, 물보라, 군중 등 미세한 입자들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어떤 대상이 중력이나 바람의 영향을 받아서 움직이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그것은 물, 불, 먼지와 관련된 재난영화의 제작에 필수적으로 쓰였으며, <겨울왕국>(2014)의 눈보라 장면, <인터스텔라>(2014)에서 블랙홀 주변의 입자를 묘사한 장면,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에서 타노스의 핑거 스냅으로 인류의 절반이 가루화되는 장면에서도 쓰였다.
스티븐 프린스는 입자 효과의 주요 특징이 유동적인 것과 확률적인 것에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입자 시스템은 새로운 입자가 태어나고 오래된 입자가 죽어간다는 점에서 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다. 객체의 형태와 행위를 지배하는 법칙들은 고정적이거나 결정적이지 않다. 그것은 우연을 포함하는 확률적인 것이다.” 이 원리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투모로우>(2004)에서 인간의 예측 범위를 벗어나는 자연현상을 그릴 때 적용되었다.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 지구적으로 새로운 빙하기를 맞이하는 상황을 다루는 이 작품은 기후위기에 대해 경고하는 기후학자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세계 각국 정상들의 모습을 대비시키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두 부류의 인간 모두 자연의 움직임을 시의적절하게 예측하거나 그것을 통제하지 못한 채 대자연의 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것은 이성의 패배, 즉 자연을 길들이고 우연을 통제하려고 했던 인류의 기획이 실패했음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자연의 예측 불가능성이 초래하는 위험은 도쿄에 우박이 총알처럼 쏟아지는 장면, 뉴욕이 거대한 쓰나미에 침수되는 장면, 로스앤젤레스에 거대한 토네이도가 발생해 고층 빌딩의 외벽이 부서지는 장면 등을 통해서 생생하게 묘사된다. 그 자연현상들은 실제 물과 눈의 움직임을 토대로 시뮬레이션한 결과물이다. 물과 바람의 움직임의 역동성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세부의 물질성을 표현하기 위해 후디니나 마야와 같은 소프트웨어에서 객체를 생성한 다음에 입자, 유체, 시뮬레이션을 적용하여 하나의 결합체로서의 자연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작업의 성취는 거대 규모의 자연현상을 시뮬레이션했다는 점, 물리적 법칙을 따르는 자연현상에 대한 세부적 묘사를 시도했다는 점,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구현했다는 점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던 경계를 지우고, 자연이 인간을 포위하는 상황을 그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자연이 문명의 흔적을 집어삼킨 세계를 절망적으로 그린 영화들이 있다. 포스트-아포칼립스 영화로 분류되는 그 작품들에서 자연은 더이상 인간에게 유익하지 않으며, 인간은 기껏해야 자기의 죽음이 잠시 지연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살아간다. 인류를 포함한 생명체의 탄생을 부정하는 그런 척박한 환경은 모래, 먼지, 재와 같은 작은 입자들과 각각의 입자들이 결합해 만들어낸 하나의 거대한 자연현상을 통해 시각화된다. 종말 이후를 살아가는 인류는 세균, 바이러스, 미세먼지, 재, 연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유독성 물질과 그것을 이루는 작은 입자들이 위협적이라는 사실에 대해 분명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깨달음은 모래폭풍, 눈보라, 토네이도, 쓰레기 더미와 같은 자연환경이 본모습을 드러낸 직후, 즉 종말이 초읽기에 들어간 이후에 이루어진다. 이처럼 포스트-아포칼립스 영화에서 디지털로 구현된 자연환경은 인간의 지각 범위를 벗어나 자율적으로 존재하는 괴물과 같은 대상으로 그려진다.
자연의 보복이 시작된 것일까? 인간과의 공생을 거부하는 저 사나운 자연환경은 관객인 우리에게 다양한 영화적 경험을 제공한다. 동시대 영화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시각적, 서사적, 촉각적, 정보적인 차원을 총동원하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를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의 주인공 맥스는 퓨리오사 일행과 함께 독재자 임모탄 일행의 추격을 피해 거대한 모래폭풍을 뚫고 지나간다. 이 장면은 겹겹이 쌓인 모래폭풍을 하나의 장관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후 추격 장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모래 입자들이 흩날리면서 자동차의 표면과 인간의 피부를 때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래폭풍의 규모와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3D애니메이션, 입자 시스템, 매트페인팅 등의 기법이 쓰였고, 약 5억개의 모래 입자를 생성한 다음 그것을 시뮬레이션 알고리듬으로 처리하여 모래폭풍의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파괴적인 자연환경은 시각적으로 대상화되는 것, 비극과 종말의 서사를 상징하는 것, 촉각적인 수준에서 자연의 비밀스러운 정체가 감지되는 것, 데이터와 알고리듬에 의해 파국적 상황이 시뮬레이션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인간의 지각을 넘어 컴퓨터의 지각으로 생성되는 자연환경과 그것이 그리는 파국의 세계. 관객은 그런 영화를 매개로 흡사 자연의 파괴력을 무한정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관객인 우리는 파괴와 죽음의 무한반복 속에서 세계가 리셋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