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야 하는데 하며 누운 지 어느덧 한 시간 반이 되어갑니다. 부드러운 침대 속에 누워 있는 주제에 몸은 그 어느 때보다 뻐근하게 느껴지네요. 어떻게 돌아누워도 영 불편하기만 합니다. 이번 겨울은 절대 가지 않을 것 같더니만 그래도 봄이 오고 있긴 합니다. 예술가 놈들은 겨울잠에서 깨어 크고 작은 공연과 이벤트를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무대에 오르는 건 몇번을 반복해도 긴장되는 일이지요. 게다가 요즘 뉴스에서 들리는 소식들은 가뜩이나 저같이 예민한 사람들을 자극시켰고요.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온몸이 각성된 듯한 밤이 있습니다. 수면제 대신 복용하는 저만의 비밀 영상을 뒤적거립니다.
첫 번째는 정말 죄송하지만 샹탈 아커만의 영화 <잔느 딜망>입니다. 볼 때마다 졸지만 정말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대사도 음악도 없다시피 한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10분을 견디지 못하고 까무룩 잠이 들게 됩니다. 다음날이면 졸았던 부분부터 다시 보게 되니 3시간20분짜리 영화를 저는 평생 동안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는 유튜브 채널 <브레이너 제이의 숙면 여행>, 수면 명상 가이드를 업로드하는 채널입니다. 그중 제가 좋아하는 콘텐츠는 ‘임산부를 위한 최적의 8시간 수면 관리’입니다. 임산부도 아닌 주제에 이 영상을 찾는 이유를 베스트 댓글을 소개함으로써 대신하겠습니다. “임신은 안 했고 뱃살만 있지만 여태 본 영상 중 제일 잠이 잘 들어 자주 옵니다… 항상 감사해요.” 그러나 잔느 딜망도 브레이너 제이도 저를 재울 수 없는 밤이 있습니다. 새벽부터 창밖에는 빗소리가 처벅처벅 들려오고 있네요. 눈과 비가 섞인 봄의 물기 같은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저는 요 몇년 사이 가장 달콤했던 잠을 떠올려봅니다.
그날도 지금처럼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습니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나들이를 즐기고 있었지요. 원래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궁금했던 영화를 한편 보겠다는 일정이었지만 그날은 왠지 좀 방탕해지고 싶었습니다. 저는 영화 상영 3시간을 남겨놓고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비 오는 날의 생맥주라니 생각만 해도 춥다고 느끼시겠지만 의외로 비와 맥주의 조합은 괜찮습니다. 습기를 습기로 다스리는 이치인 것이지요. 아직까지는 맥주 광장 스타일 같은 호프집에 혼자 들어갈 정도의 레벨은 안돼 포기하려던 찰나, 맥주와 타코 등을 파는 프랜차이즈 가게를 생각해냅니다. 그렇게 통유리 창가 자리에 앉아 축축하게 젖은 광화문 거리를 바라보며 타코와 맥주를 먹고 있습니다. 이것이 서울 도시 여자의 낭만인가 싶습니다.
이제 저는 도파민과 민폐 지수를 가득 채운 상태로 영화관에 들어갑니다. 아무래도 차가운 밖에서 맥주를 한잔하고 포근한 극장 의자에 앉는다면 노곤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지고 고개가 자꾸만 떨어집니다. 강력한 졸음에 못 이기는 척 저는 달콤한 숙면을 취하고 말았습니다. 약간 계획된 범죄였다면 죄질이 좀 나쁜가요? ‘오늘 졸아도 좋고, 안 졸아도 좋고’ 하는 마음으로 생맥주를 마셨거든요…. 이날 본 영화는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감독님의 <미래의 범죄들>이었습니다(죄송합니다). 졸릴 만한 영화는 전혀 아닙니다. 자극적인 장면들도 제법 있어서 ‘이 녀석, 대체 어떻게 졸았던 거지?’ 싶으실 겁니다.
그 사치스러운 숙면을 그리워하며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누군가의 감각을 깨우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나를 지나치게 깨어 있게 하는 밤을 만듭니다. 누군가 열심히 만들었던 영화를 수면 유도 영상쯤으로 사용했던 벌이었는지 그때는 그렇게 무겁던 눈꺼풀이 지금은 닫히지 않습니다. ‘뭔가 놓치고 있는 걸까?’ 생각해봐도 각성된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기 공연이 열리는 4월 즈음이 오면 자주 이런 상태가 됩니다. 거의 10년째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으니 언젠가 무대에 오르지 않으면, 관객들을 만나지 않으면 스스로의 상태가 좀 편안해질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이내 상상을 멈춥니다. 그건 아마 내가 가장 슬퍼할 편안함이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한 오래 이 불안을 겪고 싶습니다.
이따금씩 가수나 배우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있습니다. 관리 차원에서의 매끈함까지 포함해서 그들의 얼굴과 몸은 약간 마모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자신의 무언가를 최대한 증폭시키기 위해 어떤 부분의 기능을 포기한 모습이기도 하고요, 카메라와 관객의 눈빛을 사포 삼아 연마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 가다듬은 얼굴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그리고 이내 나 같은 사람이 겁도 없이 그 냉정한 무대 위를 얼쩡거리고 있었구나 실감하게 됩니다. 그렇게 압도되려다가 잠깐 상상해보는 거죠. 맥주 한잔 걸치고 즐기다 졸았다 하는 저 같은 사람이 관객석에 한명 정도 있다면요, 그건 왠지 좋을 것 같은데요? 집중한다고 모든 것을 흡수하는 건 아니듯 느긋하다고 덜 느끼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 생각으로 약간 긴장을 풉니다. 어리석고 불쌍한 몸이 숨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밤과 낮을 보내며 서서히 관객을 만날 몸이 되어갑니다. 그렇게 서서히 깊은 잠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