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그래픽디자이너 리카르도 젤리는 해마다 한국영화제를 피렌체에 유치하고 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으로 한국을 처음 알게 된 젤리는 휴대폰과 자동차 외에는 한국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피렌체에서 이탈리아와 한국의 문화교류단체인 ‘태극기’를 만들었다. 한국영화제를 4회 유치하기까지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왜 한국영화제인가. =피렌체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한국 음식을 먹을 기회가 잦았다. 그렇지만 한국 문화를 알 길이 없었고, 그래서 평소에 알고 지내던 토스카나주의 해외문화교류 담당자를 꼬여 일을 벌였다. 이탈리아에 크고 작은 아시아영화제는 많다. 아시아영화제에서 한국영화를 보여주는 것은 유행처럼 됐다. 하지만 짬뽕이 아닌 하나만 가지고 영화제를 하면 훨씬 즐거울 것 같았다. 피렌체에는 인도영화제가 있었지만, 굳이 한국영화제를 하고 싶었던 것은, 지형과 유머가 비슷한 한국이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 마니아다.
-영화제 반응은 어떤가. =1, 2회는 아는 사람 불러다 한국영화제를 한 거나 다름없다. 살풀이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고 사진전이나 짧은 한국영화 세미나도 해보았다. 지난해에는 김기덕 감독의 주요 영화들을 소개해 이탈리아 4개 도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해 영화제는 다양성에 중점을 두고 박찬욱, 김지운, 송일곤 감독의 주요 영화와 단편까지 30편을 소개했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은 5월12일 이탈리아 개봉을 앞두고 선보인 영화라서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았고, 송일곤 감독의 <마법사들>은 그의 마니아들에게 좋은 시간이 되었다. 한국영화제를 하면 이젠 눈감고 오는 사람도 있다. 시간이 맞는 영화를 아무거나 보는 거다. 뿌듯하다. 젊은이들 중에는 자신의 방에 한국 배우 사진과 포스터를 걸어놓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한국영화 마니아들이 생기고 있다는 증거다.
-영화 선택의 기준이 있나. =이탈리아에서 조금이라도 알려진 영화와 감독을 중심으로 선택하고 있다. 한국영화제를 찾은 관객은 영화관에서 상영한 영화들을 트는데도 다시 보러 온다. 영화관에서 상영했던 영화들이 오히려 더 큰 인기가 있다. 이탈리아인들이 모험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질 나쁜 더빙보다는 오리지널 대사와 표정을 보기 위해서이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은. =한국영화 세미나, 50대년부터 70년대까지 영화들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제, 북한영화제를 해보고 싶다. 4번을 하고 나니 더 욕심이 생긴다. 올해 9월에는 평양을 다녀올 계획이다. 남북한영화제를 해보고 싶었는데 영진위와 로마 북한대사관에서 똑같은 대답을 하더라. 안 돼! 같은 영화제로 묶으면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을 거라고 하더라.
-한국영화, 무엇이 좋은가. =각본과 한국 배우의 연기는 한국영화의 빛이다. 그렇지만 비즈니스를 더 잘하면 좋겠다. 이탈리아에서 한국영화를 수입하는 배급사들은 홍보나 마케팅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 스크린쿼터 축소라는 태풍이 오고 있긴 하지만 한국 감독들이 멈추지 않는다면 한국영화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