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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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게츠 이야기 (1953)
94분 드라마, 범죄
미조구치 겐지는 오즈 야스지로와 더불어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이었다. 구로사와가 베니스에서 <라쇼몽>으로 상을 받았을 때 미조구치는 일본영화계에서 무소불위의 권위로 영화를 만드는 막강한 위치에 있었다. 구로사와의 수상은 미조구치를 자극했다. 오즈는 자신의 영화가 서구인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미조구치는 달랐다. 미조구치는 일본의 설화적인 분위기와 유미주의를 깐 <우게츠 이야기> <오하루의 일생>을 베니스에 출품해 구로사와가 누린 것에 버금가는 명예를 얻고자 했다. 영화제작의 뒷배경에 얽힌 다소 속된 의도와 달리 <우게츠 이야기>는 훗날 미조구치 영화의 대표작으로 남았다. 16세기의 슬픈 귀신 이야기를 소재로 취한 <우게츠 이야기>는 형식의 치장에 공을 많이 들임으로써 더욱 탐미주의에 빠진 미조구치 후기작의 특징을 보여주지만 그 공들인 형식은 여하튼 미조구치 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부자가 되기를 꿈꾸는 농부와 사무라이가 되려고 하는 농부의 대조적인 삶을 따라가면서 영화는 이들의 욕망과 혼란스런 사회를 병렬시키는 그 유명한 원신 원컷 기법(한 화면이 한 장면을 이루는 길게 찍기)으로 일관한다. 미조구치의 카메라는 좀처럼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관조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는 미조구치의 카메라는 장 르누아르나 오슨 웰스 영화가 보여준 길게 찍기 스타일의 기하학적인 설계도면 같은 정교함보다는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관조의 태도를 이뤄낸다. 영화 내용이 담고 있는 가혹한 삶의 질서와 맞물려 미조구치의 관조적이고 유미적인 스타일은 화면과 대상 사이에 엄정한 거리를 만들어내며 그만큼 슬픔도 자아낸다. 구로사와의 역동적인 스타일이 전후 일본영화의 새로운 기운을 담는 것이었다면 미조구치의 관조적인 스타일은 일본인들에게 근대 이전까지 체화돼 있던 미의식과 삶의 방식을 현대적인 매체인 영화로 재구성해 보여줬다. - 씨네21 2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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