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4년, 한 고등학교 3학년생이 밤하늘의 달님을 보며 “아~ 진짜 죽고 싶다. 진짜 진짜 죽고 싶다”라고 말한다. 옆의 친구는 죽는 것 말고 다른 소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돌아오는 답변은 “아~ 진짜 야자(야간자율학습) 째고 싶다”이다. 다큐멘터리 <잠자리 구하기>가 담은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게 대학입시의 압박은 죽음의 충동과 웃기지만 무겁게 비견된다. 감독 자신을 포함한 고등학생 친구들의 입시 지옥과 그 악영향을 찍은 약 10년의 기간, 이 상황에 대한 인물들의 진솔하고 응축된 감정은 <잠자리 구하기>의 무게감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2024년 지금은 어떨까. 홍다예 감독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라고 말한다. 여전히 아이들은 험난한 사회의 풍경을 버티고 있다. 날아가다 유리 벽에 몸을 부딪치거나 물에 빠져 날개를 펼치지 못하는 잠자리들처럼 말이다. 2년 전 인터뷰에서 <잠자리 구하기>를 ‘인류학적 반(反)성장 보고서’라고 함축했던 홍다예 감독은 비록 성장할 순 없대도 사라지지 말아야 할 어떠한 가치를 찾으며 아직도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제작 피칭도, 개봉 지원도 없이 홀로 우뚝 서서 극장 개봉한 <잠자리 구하기> 역시 한국영화의 토대에서 사라지지 말아야 할 가치 중 하나일 것이다.
- 2년 전 전주국제영화제 상영 이후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만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서 영화를 선보였다. 어떤 소회가 드나.
<잠자리 구하기>는 이걸 안 찍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만들었던 영화다. 그런데 만들고 나서 여러 사람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감상을 나누다 보니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놓은 것보다 훨씬 많은 층위가 영화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작업의 한계와 내 영화 스타일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 어떤 한계를 느꼈나.아시아 입시 문화가 없는 다른 문화권에 사는 분들에겐 영화의 소재가 한번에 확 가닿지 않는 것 같더라. 그래서 차후 작업에선 특정 문화권에 국한하지 않고 조금 더 보편적인 맥락에서 소구할 수 있는 주제와 표현 방식을 취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기술적인 면에서도 다시 살피게 됐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잠자리 구하기>는 사운드 믹싱도 안 한 거의 유일무이한 개봉작이지 않을까 싶다. (웃음)
- 또 인상적이었던 감상 공유의 경험이 있다면.자신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감독이고 고등학생 때 찍어놓은 것들을 어떻게 갈무리할지 난관에 봉착해 있다며 대화를 건넸던 분이 떠오른다. 딱히 도움이 될 만한 답변을 드리진 못했는데 어쨌든 “이것을 어떻게 편집하면 좋을지”라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최대한 내 경험을 전하려 했던 기억이 있다.
- <잠자리 구하기>는 전주국제영화제 이후 재편집한 부분이 있나.
없다. 지난 2년 동안 몇번씩 영화를 보면서 ‘그냥 이게 최선이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개봉한다고 해서 다시 보니 편집에도 빵꾸(구멍)가 너무 많더라…. (웃음) 그래도 다시 고치진 않았다. 처음 이 영화를 봐준 관객들에게도 ‘이걸 그러면 다시 봐야 해 말아야 해?’ 같은 쓸데없는 고민을 안겨드릴 거 같았다. 만약 여기서 못다 한 얘기가 있다면 다음 작업에서 이어가면 되니까, <잠자리 구하기>를 만들었을 때의 그 감정은 영화 속 순간에 그대로 보존하고 싶었다.
- 영화 속에 각인된 감정이야 그대로겠지만, 그것을 다시 볼 때 감독의 감정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2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어떤가.
극장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본 게 10월4일 히로시마의 한 상영회에서였다. 그런데 이걸 찍은 지 10년이 지났단 게 사실 좀 믿기지 않더라. 오히려 2년 전에 영화를 완성했던 때가 훨씬 먼 일처럼 느껴진다. 2년 전보다 10년 전의 기억이 더 생생해서 신기했다.
-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입시 지옥의 현실이 크게 변하지 않아서일까.
내 친구들과 내가 느끼기에도 여전히 똑같다. 최근 청소년 도서관 ‘스토리라이브러리’에서 작품을 상영한 적이 있다. <잠자리 구하기>는 아니고 단편인 <18>과 <시발.>을 틀었는데 영화를 본 청소년들이 많은 얘기를 전해줬다. 영화 속과 지금 상황이 그냥 똑같단 감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했는데, 지난해 한 고등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일할 때 학생들에게 <18>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근데 첫 장면을 보자마자 “와 이거 진짜 옛날 영화 같다”라고 하는 거다. (웃음) 지금 청소년들에게 HD 화면이란 뉴진스의 <Ditto>에서만 보는 로-파이 감성이 되어버렸단 게 느껴지더라.
- 요즘도 대학입시 체제에 관심을 가지는 편인지.그렇다. 그쪽으로 내가 좀 오지랖이 넓은 것 같다. 계속 관심이 있다. 특히 이번에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 땐 후보 단일화 전 9명 후보의 공보물을 비롯해서 그들의 모든 정보를 직접 다 뒤져보기도 했다. 결론은 ‘왜 이렇게 안 바뀔까?’라는 고민으로 귀결됐다. 최근 서울시에서 하는 예술인 파견 사업을 통해 중학교에서 영화제작 강의를 하고 있다. 그런데 중학생들인데도 수업 시간에 거의 문제집만 풀고 있다. 그걸 보면서 ‘어? 이것들이 수업을 안 듣네?’라는 생각이 아니라 거꾸로 나까지 ‘어? 이런 수업이 무슨 의미가 있지… 쟤들 대학 가는 데 하나도 도움이 안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라. (웃음) 정말 <잠자리 구하기> 당시의 상황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단 사실에 다시 안타까웠던 순간이었다.
- 입시 문제도 그렇고, <잠자리 구하기>엔 “나 이외의 거대한 무언가를 찾고 싶다”라는 감독의 독백이 등장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인가.
그렇다. 나 외에 거대한 것을 찾는다는 말은 내가 기본적으로 이 사회에서 고립감을 느끼기에 하는 일이다. 사회랑 더 연결되고 싶단 맘이 있다. 고등학생 때야 내 주위를 무언가가 겹겹이 쌓고 있단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그런 껍데기가 다 까진 생양파가 된 기분이다. 나 혼자 이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데 사회와 단절된다면 정말 안되겠단 위기감이 드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웃음) 그래서 최근엔 방금 말한 교육감 선거 과정을 기록할지 고민하기도 했고, 계속해서 나와 사회의 연결고리를 찾아서 두 요소의 이야기를 다 담고 싶단 생각에 빠져 있다.
- <잠자리 구하기>에서 기타 치는 친구가 감독에게 건넨 아찔한 대사가 떠오른다. “넌 사회화가 덜됐어. 자신과 세상을 연결 짓는 방식이 잘못됐어.” 지금은 좀 어떤가.
그때보단 좀 된 것 같은데? (웃음) <잠자리 구하기> 끝나고서 1년 정도 영화제도 많이 돌아다녔고, 지난해부턴 룸메이트들도 생겼고, 작업실을 같이 쓰는 동료들도 생겼으니까.
텅 빈 학교의 차가운 포용력
- 영화의 첫 장면은 학생들이 없는 학교의 빈 정경을 담은 숏이다. 그 컷을 영화제 대표 스틸컷으로 썼던 기억이 난다.
모든 게 다 그 교실에서 시작된다. 친구들이 없는 빈 교실을 자주 찍었다. 수업 시간에 찍으면 주위에서 자꾸 뭐라고 하니까. (웃음) 그래서 애들이 저녁 먹으러 갔을 때나 늦은 시간 혼자 자습하며 너무 외로울 때면 교실을 찍었다. 그 신의 맥락은 친구 민지와 함께 이야기하며 이곳을 얼른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의 발로였다. 그런데 졸업 후 재수생이 됐을 땐 그 공간에 제 발로 돌아가고 싶었다. 뭐랄까 학교가 주는 차가운 포용력이 있다.
- 차가운 포용력. 처음 듣는 흥미로운 표현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청소년들에게 가해지는 보호라는 이름의 시스템이 청소년 시기엔 너무 폭력적이고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성인이 되면 반대로 갑자기 아무 지지대도 없는 절벽 앞에 내던져진 느낌이 든다. 그러면 다시 그 폭력의 시스템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런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혀서 그런 텅 빈 정경 숏을 썼던 것 같다.
- 마지막쯤 친구 민지, 윤지와 각 잡고 찍은 인터뷰 장면은 영화에서 유독 튀는 부분이다. 핸디캠으로 찍은 푸티지가 아니라 정적인 인터뷰 컷이다.
영화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고등학교 친구들의 현재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와 달라진 상황에서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자랐다는 게 중요하다. 그런 현재의 모습을 이전 촬영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덜 흔들리는 카메라로 찍고 싶었다.
- 다만 영화는 선형적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1, 2부로 나뉘는 인상이다. 입시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한 전반부, 그리고 감독 개인의 내밀한 개인사를 더 깊게 담아낸 2부다.
그 분기점은 내가 왜 다리에 가서 죽음의 충동에 휩싸였는지 설명하려는 지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에 대한 근거, 즉 자기혐오의 역사를 마치 주마등처럼 뒤에 배치하는 구조가 됐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찍은 푸티지는 연도별로 색깔도 느낌도 다른데, 대학교 2학년부터 졸업 때까지의 영상은 이상할 정도로 다 비슷했다. 4~5년 동안 내가 계속 비슷하게 우울과 불안의 감정을 품고 살았던 거다. 그래서 이 우울과 불안의 진원을 찾기 위해 다시 고등학생 때의 기억으로 돌아간 셈이다. 그렇게 친구들과의 미진한 감정과 관계성을 플래시백으로 복기하는 구성이 됐다.
- 여타 다큐멘터리와 비교했을 때 <잠자리 구하기>만의 특장점이다. 시간, 시대, 상황을 뛰어넘더라도 그것을 무리 없이 연결 짓는 순수한 감정이 돋보인다.
다른 영화와 이 부분이 꼭 달라야 한다, 새로워야 한다 하며 찍진 않았다. 다만 그때 당시 나에게 재난처럼 닥친 가장 무겁고 우울한 감정과 상황을 내 몸에 카메라를 가까이 붙이고 찍자는 마음이 있었다. 완전한 ‘생독립영화’인 점도 작용했겠다. (웃음) 피칭 작업도 없었고 개봉 지원 사업 선정도 없이 트는 신기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