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고고학>
이완민/한국/2022년/168분/한국경쟁<사랑의 고고학>이 관계가 빚은 마음의 유물을 출토하는 방식은 조심스럽고 면밀하다. 영화의 초반부, 주인공 영실은 주로 홀로 있다. 혼자 깨어나고 밥을 먹고 일하는 일상이 그에겐 본성과도 같다. 동시에 영실은 우도라는 남자를 생각하고 있는데, 마음은 아직 과거의 기억에 묶여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그로부터 8년 전으로 돌아간 영화는, 영실이 만난 지 8시간 만에 사랑에 빠졌던 남자 인식과의 8년을 둘러본다. 카메라는 어느날 닥쳐온 사랑의 흥분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후로는 독점적 관계가 남기는 은밀한 폭력과 지배의 순간에 훨씬 더 오래 머무른다. 연인에게서 헤픈 여자라는 비난을 받거나 짧은 원피스를 입었다는 이유로 모욕적인 시선을 견뎌야했던 관계는 이별 이후에도 남성의 주도 아래 모종의 만남을 지속하는 기이한 (하지만 그리 드물지도 않은) 형태로 유지되기에 이른다.
타인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던질 수 있는 상태가 한 인간의 생애 주기에서 그리 길지 않다는 가정하에, 청춘의 남녀가 긴 시간 관계를 맺는 일은 인생에서 너무도 중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건일 것이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간에. 이완민 감독은 천천히 땅을 골라내 역사가 묻힌 곳을 살피는 고고학자의 손길처럼 기억을 복구한다. 그런 다음 그 자리를 유유히 빠져나온다. 상대가 사라지고 확장된 ‘나’가 남은 자리에는 아프면서도 묘하게 쾌적한 기운마저 감돈다. 관계의 여파 속에서 자아를 회복하는 한 여성의 드라마인 <사랑의 고고학>에는 조용한 끈기와 생명력, 자기 자신의 본질에 대한 기민한 감각이 서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