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전주국제영화제]
JeonjuIFF #8호 [인터뷰] <윤시내가 사라졌다> 김진화 감독, 엉망이어도 좋은 자기만의 삶
2022-05-05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윤시내가 사라졌다>의 세계에선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용하다. 헤어진 남자친구, 밥줄이 끊긴 엄마를 도둑 촬영해 유튜버로 재기하려는 장하다(이주영)의 삶도, 콘서트를 앞두고 잠적한 전설의 가수 윤시내를 찾기 위해 전국 순회에 나선 이미테이션 가수 순이(오민애)도, 다 자기만의 진심과 이유, 그리고 슬픔 속에서 산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첫 장편영화를 만든 김진화 감독은 자타가 공인하는 열렬한 유튜브 사용자다. 그곳에서 취향과 관심사를 그러모을 뿐 아니라 캐스팅에 필요한 정보도 얻는다. 1970~90년대를 모두 아우르는 방만한 대중문화 코드의 소유자인 그는 모든 것이 복잡하게 뒤섞이고 또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 미디어의 혼돈 속에서 묘한 공존의 감각에 주목했다. 김진화 감독의 영화는 배우 이주영, 오민애, 노재원의 앙상블을 필두로 이상하고 엉망진창이어서 비로소 절묘한 조화를 보여준다. 전주국제영화제 시상식이 열린 5월4일 밤, ‘연시내’가 되어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를 외치던 배우 오민애는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유튜버인 딸과 이미테이션 가수인 엄마의 로드무비다. 구상 과정에서 최초의 아이디어는 어떤 것이었나.

이미테이션 가수로서 하나의 대상에 엄청나게 집착해 온 사람, 혼자 힘으로는 살 수가 없어서 무언가에 지탱해 온 여성이 우여곡절 끝에 이 땅에 자기 두 발을 딛고 서는 이야기, 그걸 하고 싶었다. 그 캐릭터를 시작점 삼아 발전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이미테이션 가수의 이야기로만 풀어가려 했을 때는 어느 시점부터 아주 막막했는데, 장하다라는 유튜버이자 순이의 딸이 극 속에 뿌리를 내리면서부터 작품이 비로소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왜 실존하는 여러 가수 중 윤시내를 택했나.

이전부터 유튜브에서 1970~80년대의 한국 노래를 자주 들어온 편이다. 그 시대의 가수들에게 원래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윤시내 선생님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쓸 때 처음부터 가수를 특정해둔 건 아니다. 전설의 가수 역할로 진짜 가수를 섭외할지 아니면 배우를 섭외할지부터가 고민이었다. 결국 무대에서의 아우라가 가장 중요할 것으로 판단해 실제 가수를 섭외하기로 결정했고, 윤시내 선생님을 찾아가게 됐다. 미사리에 있는 윤시내 열애라는 카페였다. 우선 공연부터 보고 가라고 하셔서, 카페에 앉아 공연을 봤다. 손끝 하나만 까딱여도 엄청난 아우라를 발생하는 분이었다. 그 압도적인 느낌에 대해서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침 윤시내 선생님도 매우 수줍게 연기에 관심을 가지던 차라고 말씀해주셨고, 평생 스타로 살아온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들려주셨다. 공연을 코앞에 두고 잠적한다면 아마 가장 친했던 친구를 찾아갈 것이란 아이디어를 주신 것도 윤시내 선생님이다.

1980년대 음악, 중년 가수들 등 레트로한 감각이 눈에 띈다. 개인적인 취향일까.

가만 생각해보면 한창 시나리오를 쓸 때가 가수 양준일이 급부상한 시기였다. (웃음) 잊혀졌다가 20~30년만에 역주행을 하게 된 남자, 갑자기 온갖 드라마틱한 기회 속에 놓이게 된 사람의 상태에 관심이 갔다. 그리고 유튜브라는 플랫폼 때문에 이제는 세대를 하나로 관통하는 키워드가 생겨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나만해도 서태지 세대가 아니지만 유튜브에서 이런 저런 공연 영상과 음악을 접하면서 서태지의 열렬한 팬이 됐다.

자기 사생활까지 팔아서 유튜브에서 관심받고 싶은 청년 장하다도 매우 동시대적인 캐릭터다. 이주영 배우가 짐짓 무심한 얼굴로 결핍을 감추고 있는 인물을 소화했는데.

개인적으로 이주영 배우의 엄청난 팬이었다. 늘 궁금한 사람이기도 했고. 특히 장하다 역의 캐스팅이 어려웠기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이주영 배우와 처음 만나는 날 저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만 보고도 ‘저 사람이 하다다!’라고 확신했다.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하다. 복도에서 키가 아주 큰 여자가 뽀글거리는 천연 곱슬머리를 질끈 묶고서 흐느적 흐느적 거리며 걸어왔다. (웃음) 나를 향해 따뜻하게 웃는 얼굴 아래로 긴 팔다리를 약간은 무기력하게 휘적거리며 걸어오는 느낌이었는데, 그 대조가 너무나 재미있었다. 내 머릿속의 하다는 좀 더 빠르고 급한 느낌이었는데 이주영 배우를 보고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그 날 몸이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 영화를 한 편 같이 찍고난 지금 돌이켜보면 이주영 배우는 그 날 아픈데도 나를 위해 무진장 애쓴 것이 틀림없다. 주변 사람에게 친절하고 고운 마음을 쓰려고 굉장히 애쓰는 사람이어서, 어쩌면 그 애쓰는 마음이 하다와 닮아있는 것도 같다.

지금 한국 독립영화판에서 가장 매력적인 중년 배우를 꼽으라면 오민애의 이름을 말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어떤 경로로 만났나.

이전부터 단편영화 등에서 봐왔기 때문에 <윤시내가 사라졌다> 캐스팅을 준비할 때 오민애 선배님이 궁금해져서 아무 생각없이 유튜브에 오민애라는 이름 세 글자를 쳤다. 나는 그냥 자료들을 좀 찾아보고 싶어서였는데, 실제 본인이 운영하는 채널이 나오는 거다. (웃음) 본인이 직접 기획, 편집, 자막, 출연 등을 혼자 하는 그런 채널인데 정말로 재미있고, 그 1인 방송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이 분이 정말로 독특하고 특이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될 것이다. 영상 속에서 혼자 기타를 치면서 조성모의 <가시나무>를 부르는데, 한 소절만 듣고 바로 캐스팅을 결심했다.

젊은 이미테이션 가수 ‘운시내’를 연기한 노재원 배우는 2021년 서울독립영화제 배우프로젝트 60초 독백 페스티벌 1등을 차지한 배우로 <윤시내가 사라졌다> 이후 다른 장편영화에서도 많이 볼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든다.

그렇게 되길 고대한다. 노재원 배우와 만난 건 페스티벌 1등을 하기 전인 2020년 가을이었다. 그때는 단편영화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였기에 나만 아는 보석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캐스팅했다. 모 잡지사의 프로젝트성 영상에서 <버닝>의 유아인을 연기하는데, 평범한 분위기로 너무나 희한한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자기만의 박자를 갖고 있는 배우를 좋아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노재원은 매우 독특한 박자감의 배우다.

극 중 인물을 설명할 때, 그리고 그들을 연기한 배우들에 관해 말할 때 ‘이상한’, ‘독특한’, ‘희한한’ 같은 수식을 자주 쓴다. (웃음)

이런 말 써도 되나? 골때리는 배우들과 골때리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미테이션 가수와 자기 사생활을 녹화, 전시해 돈을 버는 유튜버의 이야기 속에는 재연된 정체성이라는 테마가 있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서 어떤 주제를 전하고 싶었나.

20대 때, 내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오랜 시간 혼자 고민하고 힘들었다. 사회적인 자아와 숨겨진 나 사이의 혼란들을 많이 겪지 않나. 내가 쓴 가면이 내게는 중요한 이슈였다. 그러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분인이라는 개념을 접했다. 자아는 나뉘고 분열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고 그 중 무엇 하나가 진짜이며 나머지는 가짜라는 개념이 적용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에 굉장히 공감하면서, 자기 자신을 쉽사리 긍정하지 못하고 내면에서 스스로 자꾸만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했다. 이미테이션 가수든, 유튜버든, 누구의 삶도 가짜는 없고 그저 다 다양한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가짜와 진짜, 평범함과 특별함, 그 모든 것들을 다양함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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