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스페이스]
[트위터 스페이스] 김혜리의 랑데부: Apple TV+ 시리즈 '파친코'
2022-05-06
글 : 김혜리
정리 : 남선우
글 : 배동미
역사 속에서 자존심과 품위를 지킨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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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imagolog 오늘 우리가 다룰 작품은 이민진 작가가 쓴 동명의 영문 소설을 시리즈화한 <파친코>입니다. 프로듀서이자 쇼러너 수 휴는 두명의 한국계 미국인 감독에게 연출을 맡겼는데요, 이들은 대조적인 스타일을 가졌지만 하나의 시리즈 안에서 잘 어우러집니다. 1, 2, 3, 7화는 <콜럼버스> 코고나다 감독이, 4, 5, 6, 8화는 <푸른 호수> 주연 겸 감독 저스틴 전이 연출했습니다. 저스틴 전이 좀더 정념이 살아 있는, 감정에 초점을 두는 연출자라면 코고나다 감독은 전체적인 세계를 아름다운 균형 감각으로 보여주는 프레이밍의 달인이에요.

김혜리 @imagolog <파친코>는 선자라는 한국인 여성을 중심으로 한 4대의 이야기인데, 중요한 것은 이 가족이 케네디 집안이나 <대부>의 마피아들처럼 대단한 자수성가를 이룬 영웅적인 가계가 아니라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의 고통을 굉장히 품위 있게 재현한 대하 서사라는 점이 <파친코>의 차별점입니다. 슈퍼히어로도, 액션도 없는 작품에 큰 제작비를 쏟아부을 필요가 있는가. 이런 질문에 쇼러너이자 프로듀서 수 휴는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그들이 우리가 보는 히어로다.” 선자와 같이 고통을 하나도 피해가지 못하고 흡수했던, 폐허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남은 이들이 역사적으로 승자는 아닐지언정 진정한 영웅들이라는 거죠.

김혜리 @imagolog 그중 우리의 호감을 살 만한 인물 하나가 바로 선자의 아버지 훈입니다. 입술이 갈라져 태어났으며 한쪽 다리를 저는 그는 한국 시대극에 주로 표현되던 ‘독소적인 남성성’과는 거리가 멀어요. 딸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그는 인생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남자죠. 강의 수원지처럼, 이런 사람이 상류에 있었기 때문에 4대에 걸쳐 사람들이 고난 속에서도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김혜리 @imagolog 여러분이 두근거리며 보셨을 선자와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죠. 고한수와의 열정적이고 에로틱한 사랑이 있는 한편 백이삭과의 아가페적이고 박애적인 사랑도 있습니다. 두 남자 사이에서 선자는 판단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면서도 감정을 싹틔우고 육체적인 이끌림을 경험합니다. 저는 최근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러브신보다 <파친코>의 베드신에서 어떤 관능성을 느꼈습니다.

김혜리 @imagolog 형식적으로 <파친코>에 대한 호오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은 바로 편집입니다. 소설은 4대에 걸친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쭉 썼어요. 그런데 수 휴의 각색은 바로크음악의 대위법처럼, 증조할머니 시대부터 손자의 시대를 왔다 갔다 하며 시작하죠. 플래시백이 과하면 ‘설명지옥’처럼 느껴져 힘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데 <파친코>는 그렇지 않아요. 좀더 은유적이랄까요. 시간을 오가는 편집이 인과관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각기 다른 세대에 속한 선자 집안 사람들에게 찾아온 유사한 깨달음 내지는 아름다움의 순간들을 대비하기 위함인 거죠. 호의를 갖고 해석하자면, 이런 편집이야말로 E. 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영화적으로 흉내낸 것 같아요. 반면에 이런 편집이 어수선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지요.

김혜리 @imagolog 연기에 대해서는, 선자의 유년기부터 말년까지 세명의 배우(유나, 김민하, 윤여정)가 보이는 리액션을 말하고 싶습니다. <파친코>를 곧 울음을 참는 세 선자의 표정이 끌고 가는 시리즈라고 정의하고 싶고요. <파친코>가 자존심과 품위를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로 완성된 데에는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은 바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파친코>와 함께 보면 좋을 작품

남선우 @pasunedame <계몽영화> 또한 일제강점기 이후의 4대를 아우릅니다. 그 모든 시간을 연결하기 위한 중심 사건은 2대 정학송의 죽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친일파였고, 그의 딸은 아들의 영어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가 있죠. <파친코>에 일본, 미국에서 주변부 생활을 해야 했던 선자 가족이 있다면 <계몽영화>에는 중심에 서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던 정씨 집안이 있습니다. 민족을 배신하고, 폭력적인 가부장이 되고, 자식을 위해 해외로 가면서 그들만의 생존법을 개발해왔달까요. <파친코>와 다른 측면에서 한국의 각 세대를 관통하는 영화로, 제목에서부터 건조하고 차가운 뉘앙스가 느껴지지만 웃으며 볼 수 있는 장면들도 있답니다.

배동미 @somethin_fishy_ <파친코>가 한국, 미국, 일본을 오간다면 시리즈 <스몰 아일랜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48년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영국과 자메이카를 끊임없이 오갑니다. 자메이카는 17세기부터 300여년간 영국의 식민지였거든요. 영국을 ‘마더랜드’라 부르고 학교에서 영국의 헌법과 왕실에 대해 배웠던 자메이카 출신 여성 호텐스가 런던에 와서 결국 영국도 ‘작은 섬’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아가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자메이카와 영국 역사를 몰라도 작품이 와닿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한국인이라서 <파친코>를 재밌게 본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거둘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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