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3일 샘 레이미 감독은 <스파이더맨>으로 슈퍼히어로 장르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20년 뒤인 2022년 5월4일, 샘 레이미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복귀작인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했다. 새로운 영화가 나올 때마다 기대감과 성취는 높아지지만 그 완성도마저도 당연해져가는 슈퍼히어로 장르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 수 있을지 전세계의 기대가 모아진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샘 레이미 감독과 마이클 월드론 각본가를 일대일 인터뷰와 기자회견으로 만났다.
- <스파이더맨> 삼부작 이후 MCU로 돌아온 건 15년 만이다. 어떤 이유에서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감독 자리를 수락했나.
샘 레이미 보스턴에서 영화를 제작하던 중에 에이전트로부터 케빈 파이기 마블 스튜디오 사장과 마블이 <닥터 스트레인지> 속편 감독을 찾는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스콧 데릭슨이 연출한 첫 번째 영화를 좋아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도 훌륭했고 동양 사상을 슈퍼히어로 장르와 접목한 취향 면에서도 영리하고 흥미로운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속편의 감독 제의가 왔을 때 멋진 도전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슈퍼히어로 장르를 만든 지도 시간이 꽤 흘렀고, 지금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수락의 이유로 충분했다.
- ‘멀티버스’ 컨셉은 감독으로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어떤 영향이나 도움을 주었나.
샘 레이미 멀티버스를 정의하는 것은, 각본을 쓴 마이클 월드론부터 시작해서 나, 그리고 영화의 모든 스탭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였다. 이 영화는 하나의 유니버스에서 다른 유니버스로의 이동이 아니라 여러 개의 유니버스, 즉 멀티버스로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마이클은 각본에서 멀티버스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는 일을 해냈다. 그 묘사는 단순히 건축물이나 배경이 되는 장소뿐 아니라 멀티버스 안에서의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런 모든 세부사항들이 가장 먼저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면 미술팀과 프로덕션 디자이너 찰스 우드와 존 매시슨 촬영감독, 그리고 그 어떤 영화보다 많았을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들과 컨셉 아티스트, 코스튬 디자이너들이 마이클의 각본에서 묘사된 멀티버스를 각자의 파트에서 시각화했다. 그러니 이 영화의 멀티버스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수천명의 아티스트들의 상상력을 펼친 결과로 봐야 한다.
- 멀티버스가 캐릭터들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나.
샘 레이미 멀티버스 안에는 모든 것의 다른 버전이 존재한다. 이 사실은 캐릭터들이 스스로를 여러 가지 세팅의 원인과 결과에서 바라볼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 각자에게 내재되어 있던, 그동안 보지 못했던 능력과 자질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캐릭터들은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 잘못한 일도 알게 되고, 옳고 그름에 새로운 결정을 내리게 된다. 캐릭터들은 멀티버스에서 자신들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결과를 보기도 한다. 사실 이들이 멀티버스를 통해 보는 것은, 우리가 슈퍼히어로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다. 가능성을 보는 것, 더 좋아질 수 있는 미래를 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멀티버스 컨셉이 흥미로웠다.
-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전편으로부터 6년 뒤가 시간적 배경이다. 그사이 어떤 일이 있었다고 설정했나.
마이클 월드론 첫편으로부터 6년이 지난 뒤이기는 하나 그사이 닥터 스트레인지는 여러 편의 MCU 영화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토르: 라그나로크> <어벤져스: 인피티니 워> <어벤져스: 엔드게임> 그리고 가장 최근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등장했다. 그 덕분에 관객과 영화를 만드는 우리도 닥터 스트레인지의 여정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 영화는 스티븐 스트레인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일어난 일들, 이를테면 타노스를 상대로 싸우는 일, 결국에는 어벤져스들이 승리하지만 타노스에게 패배했던 일들로부터 그가 잃은 게 무엇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 목표였다. 최고의 외과의에서 마법사가 된 그의 어깨에 놓인 부담감이 얼마나 무거운지 들여다보려고 했다.
- 이번 영화에서 닥터 스트레인지와 스칼렛 위치, 두 마법사의 재회가 이루어진다. MCU의 거대한 세계관 안에서 스토리와 캐릭터가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작가의 비결이 있다면.
마이클 월드론 캐릭터들이 거대한 코믹스 유니버스 안의 슈퍼히어로가 아닌 ‘사람’이라고 접근하는 것이 핵심이다. 마치 휴먼드라마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장면을 진실되게,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면이 관객에게 더 다가간다는 사실을 안다. 닥터 스트레인지와 완다가 만났을 때 어떻게 대화가 이어질 것인가. 작가가 원하는 방향이나 팬들이 좋아할 만한 방향으로 쓸 필요는 없다. 캐릭터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거대한 여정의 어디에 그 둘이 놓여 있는지 이해하고 가장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대로 써내려가면 된다. 인간성이야말로, 마블의 슈퍼히어로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일면이기 때문이다.
- 팬들은 영화에서 샘 레이미 감독의 호러 스타일을 찾으려 할 것이다. 마법사들의 이야기와 호러 장르를 어떻게 융합시키려고 했나.
샘 레이미 케빈 파이기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호러 장르의 요소를 지닌 마블의 첫 영화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을 때, 이보다 더 적격인 이야기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초현실적인 힘을 다루고, 완다 안에는 스칼렛 위치가 있다. 이 캐릭터들만으로 으스스한 분위기는 저절로 만들어진다. 과거에 저예산으로 호러영화를 만들면서 배운 기술이 있다. 서스펜스를 쌓아올리고, 관객을 두렵게 만드는 방법들인데, 그때의 경험이 이번 영화에서 큰 도움이 됐다. (마블의 적지 않은 예산도 도움이 됐나?) 물론이다. 무엇보다 나의 방법을 최신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점, 전문적인 인적자원으로의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최고의 오케스트라 단원을 지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 같았다.
- 엘리자베스 올슨과의 인터뷰에서 들었는데, 친절하게도 전세계 팬들의 트레일러 리액션 비디오를 찾아서 보내줬다고 하더라. 가끔씩 온라인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찾아보기도 하나.
마이클 월드론 맞다. 가끔 그런 반응을 보면서 정신 차리는 기회로 삼으려고 한다. (웃음) 하지만 MCU라는 거대한 샌드박스에서 노닐 수 있는 사람이 가지는 즐거움이라고도 생각한다. 전세계 팬들이 예고편에서 특정 캐릭터가 등장해 대사 한마디하는 데에 환호하는 걸 보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온라인에서 찾아볼 것이다. 물론 그토록 큰 사랑을 받는 작품에 관여한다는 부담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MCU 영화들이 차별화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