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에 관해 생각해볼 때가 있다. 창작자로서 20년째 살아가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그런 순간은 분명히 찾아온다. 책상 앞에서 빈 메모장을 켜놓고 진척 없이 몇 시간째 멍때리는 날이 될 수도 있고 인터뷰에서 기습적으로 받은 질문에 괜히 진지하게 대답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그렇다. 인터뷰어의 ‘힙합이 무엇인가요?’ 같은 질문은 대개 상투적이고 가벼운 의도를 품지만 같은 온도로 응한다면 나는 집에 돌아와서 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을 자책하고 말 것이다. 왠지 모르게 초심을 외면해버리는 징그러운 기분이 들어서일 수도 있다.
사실 나는 꽤 자주 초심을 생각한다. 거울 앞에서 물리적인 변화를 마주할 때가 그렇고 십수년 전 레코딩된 앳된 목소리에서, 만원짜리 한장 들고 홍대 공연장으로 향하던 시절의 내 가사 속에서도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때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다른지 저울질해보는 시간은 어쨌든 마음속에 묘한 균형을 찾아준다. 우리는 최근 재오픈한 싸이월드 사진첩을 들춰보며 전 국민 초심찾기를 체험하고 있다. 초심이란 건 그렇게나마 강제적인 에너지로 당겨오거나 자주 열어보고 문안 인사를 드리지 않으면 일상 저 너머로 흩어져 날아가는 법이다.
갓 도래한 밀레니엄, 등굣길 버스 뒷자리, 주머니 속에 엉켜 있는 이어폰 줄과 한손에 들기 묵직한 휴대용 CDP 속에서 지난밤 소리바다에서 엄선해 다운받아 공시디에 따끈하게 구워진 최애곡들이 돌아가던 시절. 지금은 단 5초 만에 새로 나온 신보를 검색하고 알고리즘을 통해 AI가 제공한 플레이리스트가 제목도 모른 채 흘러가지만 어린 시절 난 좀더 경건하고 소중하게 한곡, 단 한장의 앨범을 집요하게 돌려 듣고, 또 듣고, 끝내 사랑하게 되는 경험을 했었다. 그것이 그 시절만의 아날로그적 산물일지언정 난 분명 그런 방식으로 힙합과 동기화됐다. 그 아련한 기억에 갈증이 날 때마다 내겐 나름의 몇 가지 처방전이 있는데 나를 처음 힙합의 열렬한 팬이 되게 해준 나스와 맙딥의 음반을 정주행한다거나 때때로 영화 <브라운 슈가>(2002)를 틀어 보는 것이다. <브라운 슈가>는 흔한 멜로 장르로 위장한, 굉장히 노골적인 방법으로 나를 ‘초심모드’하게 만들어주는 힙합영화다. 거친 거리의 삶이 담겨 있지 않은 거의 유일한 장르영화면서 가장 따뜻하고 로맨틱한 농도로 힙합에 대한 사랑을 담아낸다.
<브라운 슈가>의 두 주인공 시드와 드레는 어린 시절 힙합의 태동기(80년대 초반 뉴욕 브롱스)에 만나 같은 역사와 문화 테두리 안에서 자라온 20년 지기 소꿉친구다. 시드는 유명 힙합 매거진의 편집장으로, 드레는 대형 힙합 음반회사의 중역으로 성장했고, 여전히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음악 취향도 찰떡궁합인 절친인 건 변함없지만 그 우정이 결코 연인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다. 이제는 각자가 어른의 사정이 존재하기에, 급기야 서로의 결혼 소식을 축하해줘야 할 때가 됐지만 둘의 표정에는 왠지 모를 여운이 감돈다. 둘은 비로소 진정한 초심을 떠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드는 매번 ‘당신은 언제 힙합과 사랑에 빠졌나요?’라는 질문으로 래퍼들과 인터뷰를 시작한다. 영화의 가장 원론적인 메시지면서 지금 시드가 삶에서 가장 찾고 싶은 해답이기도 하다.
팔리는 음악 제작에만 혈안이 된 회사에 염증을 느낀 드레는 퇴사 후 독립 레이블을 만들어 진정으로 원했던 가치를 찾아나선다. 일도 사랑도 애써 외면하며 멀리 돌아왔지만 이제 비로소 둘의 초심이 같은 목적지에 맞닿아 있는 것을 확인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랩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거라면 힙합은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다.”- <브라운 슈가> 중 시드의 대사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방식의 랩은 어떤 음악 장르보다 작자의 작가 정신이 부각된다. 랩은 운율(규칙)에 맞춰 은유하는 시청각 아트 폼이다. 다소 오글거릴 수 있지만 혹자는 랩을 ‘거리의 시’라고도 표현한다. 근데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보다 잘 어울리는 비유도 없어 보인다. 가리온은 언더그라운드 랩 신을 상징하던 마스터플랜 공연장의 검정과 흰색 바닥 바둑무늬 타일을 ‘체스판’에 비유했고, 빈지노는 ‘비가 내려 목욕한 거리 위에 얼룩말 같은 횡단보도를 지나’ 같은 기막힌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써내는, 말 그대로 현대판 음유시인이다.
시카고 출신의 전설적인 래퍼 커먼이 1994년에 발표한 노래 는 힙합 역사에서 커다란 상징성을 갖는다. 곡의 내용은 한 여인에게 사랑에 빠진 남자가 점차 세속적으로 변해가는 그녀에 대한 걱정과 애증을 담담하게 노래하며 흘러간다. 러닝타임 4분30초 동안 청자는 이 노래를 단순한 러브 스토리로 착각하지만 마지막 가사 한줄이 감상을 반전시킨다.
“But I’ma take her back hopin that the shit stop/ Cause who I’m talkin bout y’all is hip-hop” (난 모든 걸 멈추고 그녀를 예전으로 되돌릴 거야/ 내가 이야기하는 그녀는 사실 힙합이니까)
이 곡은 당시에 랩 가사 스토리텔링의 방법론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곡 전체가 세심하게 계획된 하나의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브라운 슈가>는 노래 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 영화 역시 커먼의 노래처럼 두 시간짜리 커다란 은유다. 그것을 일반적인 영화언어보다 더 노골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도, 커먼의 노래도 지금의 관점에서는 다소 진부해 보일 수 있으나 그 또한 그 시절의 순수함과 초심을 역설적으로 상기시켜주는 기능으로서 다가온다.
‘랩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라는 시드의 말대로라면 이 영화는 그 어떤 것보다 랩적인 문법으로 만들어낸 힙합에 대한 헌사다. 생각해보니 ‘힙합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내가 좀처럼 쉽게 대답하기 힘든 이유는 ‘사랑’, ‘인생’만큼이나 거창하고 뜨거운 단어로 내 초심을 비유하고 싶은 진지한 속내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브라운 슈가>만큼이나 진심으로 표현해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