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2002), <엔터 더 보이드>(2009), <러브>(2015), <클라이맥스>(2018) 등 가스파 노에 감독의 영화를 아방가르드, 컬트라는 단어로 수식하기엔 뭔가가 허전하다. 마약, 섹스, 죽음, 폭력, 엽기, 사이키델릭 이미지를 더한다면? 혹자는 이 리스트에 구토, 실신, 악마, 트라우마 같은 좀더 극단적인 단어를 더하려 할지도 모르겠다.
2022년 4월, 노에 감독의 신작 <소용돌이>의 시사회가 진행된 파리의 한 영화관. 새 작품을 한 문장으로 소개해 달라는 진행자의 요청에, 감독은 이번 영화는 손자, 손녀 그리고 조부모가 함께 손잡고 와서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분명하게 해두자면 그렇다고 어린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놀랍게도 그의 여섯 번째 장편은 한 80대 부부의 생의 마지막 날들을 담담히 기록하는 네오리얼리즘에 가까운 영화다. 정신과 의사였던 부인과 영화평론가였던 남편, 이들은 파리 북부 게토 구역의 유난히 천장이 낮은 U자형 아파트에 살고 있다(참고로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 아파트를 고른 이유를 ‘거대한 창자’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라 밝혔다). 이 기이한 안식처에는 프랑스 68세대의 자유로운 중산층 인텔리로 살아온 그들의 과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부인은 오랫동안 알츠하이머를, 남편은 심장질환을 앓고 있으며, 근처에 사는 외아들은 마약중독으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살짝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2012)의 자유로운 영혼 버전 정도로 상상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매번 비슷한 테마를 다루지만 이를 표현하기 위해 단 한번도 같은 시도를 한 적이 없는 노에 감독은 이번에도 또 다른 테크닉을 시도한다. 영화의 초반, 아파트의 미니 테라스에서 노부부가 아페리티프를 함께 마시는 장면을 제외하곤 영화 내내 화면을 두개로 나누어 촬영한 스플릿 스크린 기법을 쓴다. 이 기법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함께하는 순간이 별로 없는 노부부의 마지막 순간을 지극히 현실적이고 느린 템포의 플랑 세캉스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이들이 죽음으로 다가가는 지난하고 숨 막히는 과정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프랑스 문화잡지 <레쟁록>은 “기대 이상으로 우아하게 연출된 잉마르 베리만식 출구 없는 방”이라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