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가 오는 5월19일 자정(현지 시각)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최초 공개된다. <헌트>는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인 미드나잇스크리닝 섹션에 공식 초청을 받았다. 2021년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올해 초 미국배우조합상, 크리틱스 초이스,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정재는 칸에서 연출자로서 능력을 선보이게 됐다. 영화가 칸에서 공개되기 전, <헌트>에 대해 알려진 몇 가지 사실들을 정리했다. 길잡이가 되어준 건 지난해 4월 <씨네21> 유튜브에 공개된, <헌트>의 감독이자 주연배우 이정재와 또 다른 주연배우 정우성의 줌터뷰다. <헌트> 크랭크인 목전이자 정우성의 리허설 하루 전날, 두 사람은 <씨네21> 창간 26주년을 축하하는 줌터뷰에 참석해 영화인으로서의 경험에 대해 공유했다. 당시 이정재가 공개한 <헌트>에 대한 힌트들을 살펴보자.
이정재X정우성 줌터뷰 URL : https://www.youtube.com/watch?v=PwTxQQyTSNA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 다룬 첩보액션드라마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첩보 액션 드라마 장르다. <헌트>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는 이야기다. 영화 20여년 전 <태양은 없다>로 만나 절친한 친구 사이인 이정재와 정우성은 <헌트>에서 대립 구도에 놓인다. 이정재가 연기하는 박평호는 남다른 촉과 정보력을 가진 13년 경력의 안기부 1팀 차장, 정우성이 연기하는 김정도는 안기부 2팀 차장. 두 캐릭터는 ‘동림’이라 알려진 남파간첩 총책임자를 쫓는 과정에서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게 된다. <헌트> 예고편에는 박평호가 김정도를 향해 “날 도청해 어디서 감히!”라고 분노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반대로 김정도는 “난 네가 반드시 동림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하며 박평호를 의심하면서, <헌트> 속 두 캐릭터는 도청까지 동원해 서로를 불신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재 VS 정우성
박평호가 이끄는 안기부 1팀과 김정도의 안기부 2팀은 여러 요원으로, 즉 여러 배우들로 꾸려질 예정이다. 우선 <오징어 게임>에서 이정재와 맞춘 허성태는 안기부 2팀 요원 ‘장철성’으로 분해 이정재와 반대편에 선다. 전혜진은 안기부 1팀 요원 ‘방주경’을 맡아 이정재와 같은 팀에서 활약한다. 신예 고윤정은 과거 사건으로 인해 '박평호'의 보살핌을 받던 중 스파이 색출 작전에 휘말리는 대학생 '조유정' 역을 맡았다.
각본, 연출, 연기 이정재의 1인 3역
이정재는 <헌트>의 감독 역할 뿐 아니라 배우로서 박평호를 연기했고, 그에 앞서 4년간 시나리오 작업을 거쳤다. 줌터뷰 당시 이정재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친구인 정우성을 떠올렸다고 털어놓았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우성씨를 가장 많이 생각했어요. 우성씨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려나, 어떤 대사를 하는 게 좋을까 상상했죠. 정우성이라는 사람과 우성씨가 연기할 안기부 요원 캐릭터를 최대한 매치하려고 노력했어요.”
감독에 도전하는 계기가 된 <도둑들>
이정재가 영화감독으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2012년 개봉한 <도둑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둑들>에 출연한 동료배우 임달화와의 대화가 그에게 어떤 전환점이 됐다. “홍콩에서 임달화 배우와 촬영을 하다가 식사 자리가 있었거든요. 옆에서 보니 스케줄이 어마어마한 것 같기에, 왜 그리 바쁘시냐 물었더니 저번달엔 본인이 시나리오를 하나 끝냈고 이번달엔 <도둑들> 촬영 중에 친구의 영화 프로듀싱을 맡고 있으며 또 두어달 있다가는 본인 연출작이 기다리고 있대요. 그런 일들이 한해에 다 몰려 있다는 거예요. 어떻게 연기하면서 연출, 각본, 제작까지 다 하는 게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거예요. “내 정체성이 ‘영화인’인데 그게 어색할 게 무엇이냐”고요. 그때 머리가 확 트이는 경험을 했어요.” 이때의 경험은 또한 이정재에게 먼저 감독으로 데뷔한 정우성을 떠올리게 했다. “이 생각은 <태양은 없다> 촬영을 할 때 우성씨를 보면서도 느꼈던 거예요. 본인이 시나리오를 분석해 직접 상황도 만들고, 자기 것은 물론 상대 배역의 대사도 맞춰서 써오는 걸 보고 아주 많이 놀랐어요. 임달화 배우의 이야기를 들으며 1998년에 우성씨에게서 보았던 열정과 노력을 다시 떠올렸어요.” 정우성은 2013년 단편영화 <나와 S4 이야기 첫번째> <나와 S4 이야기 두 번째>를, 2014년에 <킬러 앞에 노인>를 연출했다. 그리고 장편 연출 데뷔작인 <보호자>(가제)가 후반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이정재의 변신이자 정우성의 변신이 될 <헌트>
이정재는 줌터뷰 당시, 정우성의 과거 필모그래피를 보면서 감독으로서 배우 정우성을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실제 정우성과 캐릭터를 밀접하게 연관시킬지, 혹은 굉장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변신시킬지 그런 고민을 많이 하는 중이에요. 우성씨가 근래에 작업한 영화들을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보고 공부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 두 영화인 사이에 오래 다져진 신뢰는 자연스레 <헌트>에 녹아들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 배우 정우성의 작품을 보면 <아수라> <증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강철비2: 정상회담> 등 캐릭터의 폭이 굉장히 넓어요. 이렇게나 다양한 캐릭터의 폭을 가진 배우인데, 굳이 미리 오래 상의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있고 혹시 너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그런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고요.”
<태양은 없다> 이후 20여년만의 재회
<헌트> 이전에 이정재와 정우성을 한 데 모으겠다는 기획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두 사람이 <태양은 없다> 이후 의식적으로 같은 작품에 캐스팅되는 걸 저어했다. “사실 <태양은 없다> 이후에 ‘제2의 <태양은 없다>’처럼 이정재-정우성을 모아서 무언가 하겠다는 기획들이 꽤 있었어요. 그런데 이미 <태양은 없다>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걸 해야 하는 우리에게 <태양은 없다>의 반짝거림을 다시 만들자고 하니까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두 사람은 <헌트>의 주연배우로 나란히 스크린에 섰다. 그리고 감독과 배우로 19일 칸 레드카펫에 서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