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이주현 편집장] 여성, 그리고 배우라는 이름으로
2022-06-10
글 : 이주현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상영작이었던 <정순> <윤시내가 사라졌다> <경아의 딸>은 모두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이다. 세 영화의 공통점은 또 있다. 세 영화는 제목에 캐릭터의 이름을 사용했고, 모두 영화제에서 의미 있는 상을 받았으며, 세 영화의 감독- <정순>의 정지혜 감독, <윤시내가 사라졌다>의 김진화 감독, <경아의 딸>의 김정은 감독- 은 모두 1990년대생 여성이다. 누구 엄마, 옆집 아줌마, 큰이모, 둘째 고모 등으로 불리기 일쑤던 중년 여성들이 영화에서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이야기를 주도하고, 제목에까지 그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경우(<윤시내가 사라졌다>의 주인공은 가수 윤시내를 흠모해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로 활동하는 순이지만)를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목격한 적이 전에 또 있었던가 싶어, 전주국제영화제가 끝나자마자 영화의 주역들을 만나보자는 이야기를 기자들과 나누었다. <정순>의 김금순, <윤시내가 사라졌다>의 오민애, <경아의 딸>의 김정영 배우는 독립영화를 즐기는 관객에겐 이미 익숙한 얼굴들이다. 김소미 기자의 표현처럼 “언제부턴가 영화제의 단편 섹션을 찾으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배우들”인데, 그렇기에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의 주목은 앞으로 이들의 활약을 확신하게 만드는 예고편처럼 느껴졌다.

이들을 중년 여성으로 호명하는 것이 배우로서의 반경을 좁히는 일로 보일까 조심스러우면서도 세 배우의 인터뷰에선 여성으로서, 경력 단절을 경험한 엄마로서, 꿈을 접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배우로서의 공통된 경험이 보인다. 오민애 배우는 경제적으로 곤궁하던 시절엔 카드 영업을 했고 연기를 쉴 수밖에 없었던 아득한 시기 또한 지나왔다고 고백했으며, 김금순 배우는 결혼 후 10년 동안 연기를 쉬었고, 김정영 배우도 30대 땐 육아에 힘쓰느라 작품 활동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애를 보면서도 ‘나는 배우야. 애 키우고 나서 다시 배우 할 거야’라는 생각은 놓지 않았다”거나 “한식집, 일식집, 스파게티집, 다방, 호프집 서빙까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일화는 비단 세 배우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님을 안다. 이건 <기생충>에 출연했던 이정은과 장혜진 배우에게서도 비슷하게 들었던 얘기니까.

오민애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수상했을 때 “‘넌 언젠가 제대로 된 배우가 될 거야’ 하고 메아리쳤던 내 안의 소리가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감격과 감사함이 컸다”고 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고이 품고, 스스로를 믿으며 그저 버텨온 시간. 그 시기를 끝내 버텨 새로운 전성기 혹은 전환기를 맞은 배우들. 이들의 현재를 마음껏 박수치며 축하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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