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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드라마톡] '우리는 오늘부터'
2022-06-10
글 : 유선주 (칼럼니스트)

막장 드라마를 만나면 꼭 공식 홈페이지의 기획 의도를 읽으러 간다. 거창한 목표와 조잡한 결과물간의 괴리가 클수록 얄궂은 재미도 커진다. 그래도 말한 대로 책임지길 바라는 기획 의도를 만날 때도 있다. 의료사고로 임신한 드라마 보조작가 오우리(임수향)가 주인공인 SBS <우리는 오늘부터>는 베네수엘라 텔레노벨라를 리메이크한 미국 <The CW>의 <제인 더 버진>(넷플릭스)을 다시 한국판으로 옮겨왔다. 원작의 중요한 성취에 한국식 양념을 치는 드라마에 자주 실망했던 터라, 2년 사귄 연인과 냉동 정자의 주인을 오가는 우리의 로맨스는 남편 찾기로, 임신을 유지하는 결정은 생명의 가치 등으로 재포장한다 해도 그리 놀라지 않았을 테다(불은 뿜었겠지만). 해서, ‘사랑 없이! 남자 없이! 여자 혼자! 임신한다면? 이건 여성이 중심인 가족을 만들 기회 아닌가요?’라는 기획 의도가 뜻밖이었다.

임신을 소재로 죄책감을 심는 드라마에 바짝 긴장하는 입장으로 <우리는 오늘부터>를 편하게 즐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가치관이 다른 모녀 삼대를 비롯해 각자의 이해관계로 반목하던 여성들이 연대하며 요란한 사건 사고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원작의 핵심으로 파악하고 한국판에 적용하려는 기획 의도를 붙들고 지켜본다. 16살에 우리를 낳은 엄마 오은란(홍은희)은 딸이 자신을 부끄러워한다고, 우리는 자기가 엄마의 꿈을 꺾은 존재라고 여기다 앙금을 털어낸다. 혈연이니까 화해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원작은 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다른 여성과 갈등을 푸는 과정으로 확장된다. 한국판이 여기까지 닿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망한 드라마라고 비웃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CHECK POINT

29살 오우리는 혼전순결 서약을 지키다 날벼락 같은 임신을 했고 영화 <십개월의 미래>의 또 다른 29살 최미래(최성은) 역시 기억에 없는 임신이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닌가 의심한다. 임신의 중단과 유지가 온전히 여성의 선택과 결정이 되려면, 그 선택의 근거가 되는 정보가 투명해야 하는데 실상은 임신 중단의 의료적 과정이 불투명하고, 임신한 여성이 겪는 변화와 일터와 사회에서의 취급도 말해지지 않는다. 암묵적으로 임신부를 지우는 세상에서 미래는 자신이 사라져도 모를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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