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봉명주공' 김기성 감독 인터뷰
2022-06-23
글 : 김소미
사진 : 백종헌
무너져버린 상징을 기록하다

- 1세대 주공아파트인 봉명주공이 사라지는 과정을 담았다. 계기는 무엇이었나.

= 학부는 서울, 대학원은 독일로 유학을 가면서 고향 청주를 15년 정도 떠나 있었다.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뒤 크게 받았던 인상은 주거 형태가 너무나 획일적이라는 점이었다. 청주의 1세대 주공아파트인 봉명주공은 그나마 여전히 마을 단위로 교류하고 자연 친화적으로 살던 때의 풍경과 관계 맺음을 품고 있는 것 같아 관심이 갔다.

- 철거 예정인 아파트의 나무가 베이고 잘려나가는 풍경을 주로 응시했다. 세월만큼 무성하게 자란 식물을 통해 거주민들의 삶도 자연스레 엿볼 수 있었다.

= 언제 나무를 심었고 그게 얼마나 자랐으며 그사이 가족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화가 주로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감나무 아저씨는 어차피 이제 곧 베일 나무라 사람들이 가지를 막 부러뜨려가면서 감을 따는 모습에 가슴 아파했다. 평생 자식처럼 정성들여 키운 나무가 꺾여 나갈 때 그분의 심정은 어땠을까. 촬영하면서 나 역시 자연스레 나무들에 애정을 가지게 되었고 여름에는 봉명주공의 수호신이나 다름없는 버드나무 아래가 좋은 쉼터가 돼줬다.

- 고령의 주민들은 겉으론 내색을 안 해도 매우 큰 상실감을 안고 있는데 카메라를 어색해하는 주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갔나.

= 봉명주공을 부동산으로서 논의하기보다 그곳의 정서와 기억을 기록한다는 사실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주셨다. 말씀을 잘하시다가도 카메라가 보이면 한 발짝 물러나거나 과묵해지는 분들도 많았는데, 어떤 의미로는 나와 주민들, 카메라와 주민들 사이의 거리감을 일부러 좁히지 않고 어느 정도 유지하려 했다. 그분들의 감정을 계속 유도하고 이끌어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너무 슬프지 않게 어떤 순간에는 오히려 질문을 멈추는 경우가 많았다.

- 라이프 가드닝 모임 ‘모두의 정원’을 이끌며 아파트 식물의 이주를 고민하는 홍덕은 소장, 단지 곳곳을 촬영해 봉명주공 사진전을 개최한 지은숙, 지명환 사진작가들의 존재가 <봉명주공>에 뜻밖의 활기를 불어넣는다.

= 재개발에 얽힌 첨예한 이해관계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걸 다루다보면 결국 뻔한 구도가 나올 수밖에 없겠더라. 그분들이 영화에 들어오면서 작품의 방향성이 결정된 것 같다. 봉명주공 주민들만큼이나 다큐멘터리 카메라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일 것 같아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웃음) 촬영 내내 오디오가 비는 적이 드물 정도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그분들을 보니 안심이 됐다.

- 아파트의 사계절을 따라가는 동안 비선형적인 내러티브 장치를 마련했다. <봉명주공>은 오프닝에서 쓰러졌던 버드나무가 엔딩에 이르러 다시 살아나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 처음에는 시간순대로 후반부에 배치해서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되게끔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무들이 쓰러질 때마다 정말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고 그게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결국 영화의 맨 앞에 넣어봤다. 이후부터 편집이 자연스럽게 풀리기 시작하더라. 봉명주공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갖고 있던 어떤 상징성이 무너져내리는 지점에서 영화를 출발시켜서, 그 상징을 다시 복기하고 환기하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 한국영상위원회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을 통해 제작비가 꾸려졌다. 첫 독립 장편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예산 마련이 쉽지 않았을 텐데.

= 청주영상위원회 ‘씨네마틱#청주’의 2019년 지원작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매칭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영상위원회로부터 지역영화 제작지원을 받았다. 처음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부담감이 컸는데 지원 사업과 투자 전반에 대한 프로세스를 배움과 동시에 지역에 대한 내 관심사를 잘 녹여내고 싶다는 생각도 더욱 강해졌다.

- 독일 쾰른에서 미디어아트를 공부하고 돌아와 헌책방 프로젝트 <침묵의 서책들> 등을 전시했다. 다큐멘터리영화에 흥미를 느낀 계기가 있나.

= 어릴 때부터 미술에 대한 관심은 확고했는데, 그게 무엇이든 어떻게 이미지로 표현할 것인가가 나의 화두였다. 이후부터는 그림, 조각, 시, 미디어아트 등 어떤 매체가 내게 가장 적합한지를 찾아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다 나는 내러티브가 필요한 사람임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왔다. (웃음) 조각을 만들어놓고선 그 옆에서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미디어아트를 공부하기 위해 독일에 간 것이다. 지금도 나를 자극하는 어떤 감정이나 시각적인 요소를 시와 에세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 요즘엔 어떤 시각적인 요소에 꽂혀 있나. 구상 중인 새로운 내러티브가 있다면.

= 봄이 되면 가로수 정비 사업이 시작되어 도시의 가로수들이 앙상해진다. <봉명주공> 이후 그 모습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가지가 다 잘려나가고 몸뚱이만 남은 모습이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무의 입장에서 폭력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형식 면에서는 극영화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무와 빗댈 수 있는 인간형을 주인공 삼아 이들의 연결성을 이야기로 풀어보고 싶다. 지역 다큐멘터리 소재도 계속해서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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