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이주현 편집장] '헤어질 결심'의 엔딩, 그 후
2022-07-01
글 : 이주현

박찬욱 감독은 데이비드 린의 영화 <밀회>(1945)가 사랑 이야기의 원형으로서 <헤어질 결심>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밀회>는 가정이 있는 중년의 남녀가 사랑에 빠졌다가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기차를 타고 사랑의 도주를 꾀하는 격정 대신 기차를 타고 귀가해야만 하는 혼란한 마음이 영화 속을 내내 부유한다. <밀회>도 일종의 체험 영화라 할 수 있는데, 귀갓길을 재촉하는 기차 소리가 들려오면 주인공의 심리에 동기화되어 덩달아 마음이 초조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저 기차를 놓쳤으면, 저 기차를 타지 않았으면.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헤어질 결심>의 엔딩에선 애타게 ‘서래씨’를 부르는 해준을 스크린 너머에서 애타게 바라보다 심장이 아려오는 경험을 했다. 결말이 너무나 압도적이라 영화관을 빠져나와서도 얼마간 손발이 저릿하고 머리가 멍했다(오메가3를 챙겨 먹자!).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나면 이 엔딩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릴 것이다. 그런데 기사를 쓰는 사람 입장에선 이것이 스포일러라 상당히 조심스럽고 난감하다. 이번주 <씨네21>은 <헤어질 결심>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는데, 주요 스탭들의 제작기를 담다보니 본의 아니게 영화의 구체적 장면과 상세한 내용이 포함될 수밖에 없었음을 미리 알린다. <헤어질 결심>에 참여한 정서경 작가, 김상범 편집감독, 김지용 촬영감독, 류성희 미술감독, 조영욱 음악감독의 인터뷰는 <헤어질 결심>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장담한다. 정서경 작가는 어떤 의도로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같은 대사를 썼을까, 류성희 미술감독은 어떤 과정을 거쳐 ‘서래의 벽지’를 만들었을까, 조영욱 음악감독은 왜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영화에 세번 사용했을까. 이같은 질문의 답을 이번호 <씨네21>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연기력 못지않게 남다른 필력을 가진 배우 박정민이 우상이었던 박찬욱 감독의 피사체가 되어 <헤어질 결심>을 찍게 된 경험을 글로 써서 보내주었다. 기회가 된다면 평양냉면이라도 함께하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라이브로 듣고 싶다.

지난주 에디토리얼 지면에선 박찬욱 감독에게 별점으로 사랑 고백을 했다. 곧장 밀려온 후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사랑 이야기를 만든 감독에게 대놓고 고백했으니, 스스로의 촌스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정서경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멜로영화 시나리오를 쓰기가 꺼려졌던 이유 중 하나는 ‘사랑’이란 말을 직접 쓰기 싫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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