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당신의 정신마저 지배할 매혹적인 불가항력의 영화 '큐어'
2022-07-06
글 : 오진우 (평론가)

도쿄 지역에서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공통점은 사체의 목에 X자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저지른 짓이 아니었다. 범인들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 무언가에 홀린 듯 느닷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타카베 형사(야쿠쇼 고지)는 이 사건에 다른 용의자가 있다고 의심한다. 불현듯 쿠니오 마미야(하기와라 마사토)란 인물이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등장한다. 취조 과정에서 마미야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라이터를 찾으려 일어난다. 타카베는 그의 수법을 읽고 그의 코트를 집어 던져버린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걸작인 1997년 작품 <큐어>가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한국에서 정식 개봉한다. 영화는 범죄 스릴러 장르에 충실한 동시에 주인공의 내면에 침잠해 있는 역린을 건드리는 심리극이기도 하다. 따라서 타카베 형사는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추적하면 할수록 점차 자기 내면의 심연으로 빨려들어간다. 최면술로 타카베의 정신을 지배하는 마미야는 텅 빈 존재다. 타카베는 이유를 찾아 그 빈 공간을 채우려 하고 종국에는 아무 상관 없는 이미지들을 몽타주해 파국을 마주한다. 이렇듯 <큐어>는 이유를 찾는 논리의 영역이라기보다 정신의 영역을 다루는 영화다. 이를 위해 영화는 사운드 디자인에 공을 들였다. 전체적으로 음악 사용을 절제하고 실제 장소에서 나는 소리를 적극 활용한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바람 소리 등 생활 소음을 낯설게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이상한 굉음까지 더해지면서 영화는 불안감을 증폭하고 어느새 관객을 타카베의 복잡한 머릿속에 데려다놓는다.

여기에 구로사와 기요시의 시그너처인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차를 주목하자. 차를 비추고 다음 숏이 연결되면 물리적으로 이동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그 짧은 순간에도 기묘한 감흥을 만들어낸다.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도록 창밖을 불투명하게 처리해 차 안의 인물과 배경을 분리하고 새로운 차원의 정동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숏을 구성한다. 특히 타카베가 아내와 함께 어딘가로 이동하는 버스 장면에선 구름이 보이는데, 이는 땅 위를 이동하는 느낌보다 시공간 좌표에서 분리되어 붕 떠 있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이와 동일한 방식의 숏 구성은 최근작인 <스파이의 아내>에도 등장한다. 이뿐 아니라 그의 필모그래피 곳곳에 이런 기묘한 차들이 많이 등장하니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당신은 저놈들과 달라. 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잖아"(망가진 세상의 치료제가 되고 싶은 마미야는 끊임없이 타카베를 현혹하고 전도하려 시도한다.)

CHECK POINT

<복수는 나의 것>

<큐어>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연상호 감독의 <지옥>에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이 리스트 이외에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을 <큐어>와 비교하여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복수라는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처럼 부유하며 사람들을 관통하고 살인사건을 촉발한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정신을 다루는 방식에서 <큐어>와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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