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BIFAN #1호 [인터뷰] 신철 집행위원장 “영화를 재정의하고 온라인으로 이행해야 할 시기다“
2022-07-07
글 : 임수연
사진 : 최성열
신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신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영화제를 이끈 지도 어느덧 4년이 됐다. 코로나19는 영화제 운영에 큰 위기를 주기도 했지만, 전염병 확산과 함께 가속화된 영상 산업계의 변화는 그가 페스티벌에서 다양한 시도를 과감하게 해볼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7월 7일 개막을 이틀 앞두고 행사 막바지 준비로 분주한 신철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 얼마 전 칸국제영화제 필름마켓 ‘페스티발 허브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새로운 영화제의 시대: 하이브리드를 넘어 확장’이란 주제로 직접 발표했다고.

= 영국영화협회(BFI), 체코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인도 푸네국제영화제 등에서 경험 많고 유명한 분들이 오셨다. 올해 56회째를 맞이한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 중 하나다. 그들은 영화제가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를로비바리나 칸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절히 적응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푸네는 2000km 떨어진 도시를 오가며 이동식 상영을 하기 때문에 영화제만의 차별점을 갖춘 곳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BFI도 관록이 깊다. 그런데 그 외의 영화제들은 현재 영화제의 미래를 걱정해야 한다. 그래서 “왜 <오징어 게임>을 영화라고 부르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과감하게 던졌다. 아마 백인 중심의 유럽 영화제 입장에서는 아시아 변방의 작은 도시에서 온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웃음) 하지만 더 늦기 전에 빨리 영화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K-무비가 이 정도 큰 담론은 컨퍼런스에서 던져줘야 하지 않을까.

- 같은 질문을 지난달 부천영화제 기자회견 현장에서도 던졌다.

= 영화의 시작은 비주얼 스토리텔링이었다.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필름이 발명되면서 이를 이용한 스토리텔링을 하게 된 거다. TV가 보급되면서 비주얼 스토리텔링은 방송과 극장영화로 나뉘어졌다. 방송은 디지털 신호, 극장은 셀룰로이드 필름으로 분리되어 따로 가다가 결국 지금은 디지털 방식으로 통합됐다. 디바이스가 바뀌면서 TV 방송 역시 고화질로 진화했고 이를 극장도 받아들이게 됐다. 이제는 장소만 다를 뿐 만드는 과정도 보여주는 방식도 똑같다. 극장이나 가정의 모니터나 똑같이 디지털 프로젝션을 한다. 그렇다면 드라마와 TV쇼, 영화의 구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는 오랫동안 영광을 누렸다. 영화는 영화만의 특별함이 있다며 자꾸 영역을 구분하려 했다. 엄청난 명성을 쌓은 TV 프로듀서들도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를 예술로 인정해주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아무리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라도 2시간 동안 극장에 갇혀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반면 TV 드라마는 무언가를 먹으면서, 가족과 싸우면서 보거나 감상을 중단하기도 한다. 자신이 힘들게 만든 작품이 집중도 떨어지는 환경에서 공개되는 것을 싫어하는 창작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스트리밍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25년 전쯤 음악이 겪었던 변화를 지금 영화가 겪고 있다. 그런 시대에는 영화가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 이미 극장의 위기를 점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 스트리밍 서비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극장 스크린은 줄어들 거라고 확신한다. 극장은 정말 불친절한 서비스다. 밤에 식재료를 주문하면 새벽에 받아볼 수 있는 시대에 영화는 예매하고, 직접 극장으로 가야하고, 시간을 맞춰서 감상해야 한다. 영화는 현 20대 관객에게 굉장히 불편한 서비스이다. 앞으로 극장에서 볼 영화와 아닌 영화를 보다 명확히 구분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영화관 전체의 수익은 확실히 떨어진다. 관객 수 2~300만 정도가 들어야 할 중간층 영화가 큰 타격을 입으면 영화의 생산 편수 자체도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극장 중심으로만 영화를 논한다면 우리가 영화라고 인정할 수 있는 대상이 점점 축소될 것이다. 하지만 업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카테고리를 재정의하는 시도가 쉽게 추진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상 ‘영화는 영화상영관 등의 장소 또는 시설에서 공중에게 관람하게 할 목적으로 제작한 것’이라 정의되는데, 이렇게 영화의 범주를 제한하는 환경을 하나씩 고쳐 나가야 한다. 지금처럼 영화의 정의가 모호해질 때 오히려 영화의 영역을 확장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

- 올해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나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시맨틱 에러>의 극장판을 상영하는 것도 부천영화제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 극장 상영은 돈이 많이 든다. 마케팅하고 관을 잡는 데 비용을 써야 한다. 그렇다면 돈을 써야만 영화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지금 신인 감독들이 입봉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극장이 가장 큰 수익원이기 때문이다. 제작비 회수가 쉽지 않으니 신인에겐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영화인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며 스크린 독과점을 비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독립예술영화관을 만들었다. 그런데 온라인은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 그리고 지금은 온라인으로 이행해야 할 때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인디와이어> 인터뷰에서 “현재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한 변화는 과거 영화의 사운드가 발명됐을 때와 거의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을 봤다. 영화에 소리를 넣겠다고 했을 때 기존 무성영화인들은 영화의 예술성을 다 망치고 있다며 분노했다. 컬러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도 흑백영화의 예술성을 망치려고 한다며 반발이 심했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이 기기로는 영화를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세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옛날에 헤어진 형제들이 다시 만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엔데믹을 준비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온오프라인 상영을 병행한다. 부천영화제는 장르 특성상 온라인 상영 형식도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앞으로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OTT 플랫폼과의 협업을 유지할 계획인가.

= 팬데믹 시기 각국의 영화제들은 꼭 극장만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고, 온라인 상영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영화는 결국 테크놀로지가 발견해낸 예술 장르다. 그러니 온라인 상영과 같은 테크놀로지를 잘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일방적 스토리텔링에서 인터액티브 스토리텔링에 이르기까지 비주얼 스토리텔링의 역사는 쭉 발전해왔다. 부천영화제에서도 매년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VR이 그다음 단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기자회견장에서 앞으로 데이터 중심의 영화제를 만들겠다는 발언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 좀더 선진적인 체계를 가져가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했던 말이다. 아직도 영화 정보는 아날로그식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을 통해 수집할 수 있는 정보가 엄청나게 많은데도 아직 과거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데이터 테크놀로지의 시대에 프로그래밍과 영화제 운영을 보다 효율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지금은 조금씩 준비하고 있는 단계이고, 올해는 먼저 영화제 운영 시스템을 제공하는 영화제 전문 플랫폼 ‘이벤티벌’과 업무 협약을 맺었다. 프로그램은 프로그래머들이 짜고, 잘 짜고 있고, 나는 부천영화제가 가진 포텐셜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사람들과 소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아직 영화제 초짜이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부분을 배워가고 있다. 집행위원장을 5년 정도 더 하면 영화제의 구석구석까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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