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고대했던 여름 블록버스터, '외계+인' 1부를 즐기기 위한 가이드
2022-07-21
글 : 김소미
정리 : 윤현영 (자유기고가)
최동훈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7월20일 개봉하는 <외계+인> 1부로 최동훈 감독이 귀환한다. <암살> 이후 7년 만이다. 류준열, 김우빈, 김태리, 소지섭, 염정아, 조우진, 김의성이라는 초호화 군단과 함께 활극을 펼치는 <외계+인> 1부는 한국영화에서 전에 본 적 없는 거대한 시공간의 카니발을 연다. SF, 액션, 판타지, 무협. 무엇이라 부르든 장르의 정의는 곧 무용해진다.

야심과 취향이 골고루 섞인 최동훈식 최첨단 설화. <외계+인>은 그 옛날 가장 사랑받던 이야기와 오늘날 가장 각광받는 대중 서사를 도술 부리듯 한폭에 엮은 거대한 파노라마다. 서울 한복판을 장악한 우주선이 등장하는 블록버스터이면서 약장수 신선들이 만담을 주고받는 코믹 무협이고, 시공간을 뛰어넘은 질긴 인연을 품은 로맨스이기도 한 이 영화를 일목요연하게 축약하기란 꽤나 버거운 일이다. 가장 할리우드적인 엔터테인먼트와 동양적 해학의 풍류가 공존하는 가운데, 관객의 감상도 포만감과 산만함 사이 어디쯤 맺힌다. 분명한 것은 <전우치>(2009)로 시동 걸고 <암살>(2015)로 훈련을 마친 최동훈 감독의 기술과 배짱, 그리고 스케일의 상부상조가 한국형 케이퍼 무비의 대명사로 불렸던 최동훈의 이름을 더 광활한 상공으로 쏘아올렸다는 사실이다. <외계+인>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스케일로 확장한 SF 버전의 <전우치>라고 우선 거칠게 요약한 다음, <전우치>를 잠시 돌아보자. 깨어난 요괴들을 봉인하고, 전설의 만파식적과 청동검을 찾아나선 망나니 도사 전우치(강동원)가 약 500년의 시간을 관통하는 판타지 액션극이었던 <전우치>는 2009년 연말 개봉해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와 싸웠다. 동서양의 판타지 대결은 약 5천억원(<아바타>)과 100억원(<전우치>)짜리 영화의 정면 승부로 금세 종결됐고 이듬해 <아바타>는 외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기록했다. 감독이 그로부터 약 10년 후 착수한 <외계+인>은 최동훈의 진짜 승부가 자기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할리우드 키드를 키운 SF·판타지물과 한국 설화에 대한 매혹으로 버무린 자기 복제와 확장의 실험이 여기에 있다. 날아오는 자동차 두개 중 하나는 가짜렷다, 외쳤던 전우치와 달리 <외계+인>에서 맞부딪치는 도사와 외계인들의 요상한 대립쌍은 모두 진짜다.

이야기로 읽는 <외계+인>

<외계+인>의 화술은 설화를 구연하는 듯 천연덕스럽다. 배우 김태리의 내레이션으로 문을 연 시점은 1380년의 고려. 어느 여인(전여빈)의 몸에서 빠져나온 외계인을 처리하기 위해 시간의 문을 열고 가드(김우빈)와 썬더가 나타난다. 인간의 몸에서 ‘탈옥’한 외계인을 처리하자 여인은 곧 죽음을 맞이하고, 동정심 많은 프로그램 파트너인 썬더는 엄마 잃은 갓난아이를 몰래 차에 태워 다시 현대로 돌아온다. 전체 이야기의 절반에 해당하는 <외계+인> 1부가 세계관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구심점으로 삼는 캐릭터는 배우 김우빈이 연기한 가드다. “인간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가 철칙인 그는, 종종 예기치 않게 인간의 몸에서 탈옥하곤 하는 외계인들을 다시 잡아 봉인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구에 머무른다. 픽업트럭을 타고 14세기에 나타나 일을 처리하고는 유유히 돌아서는 앞선 사례처럼, 가드와 썬더는 필요하다면 시간 여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외계+인>의 세계에서 시간은 순방향으로 흐르는 유일한 직선체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공존하는 다중의 평행체인 덕택이다. 오프닝의 임무 이후 가드는 다음 사건까지 약 10년8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지시 앞에서 이내 초연해진다. 2022년의 한국과 14세기 고려 사이에 놓인 약 10년. <외계+인>은 이 10년 사이에 생긴 시간과 공간 사이의 우여곡절을 서서히 밝혀내는 서사라 해도 좋다. 인간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인간을 지키기 위해 이내 깨지고, 초인간적 존재가 내린 이 인간적인 결정에 의해 영겁을 관통하는 끈질긴 인연의 비밀이 생겨난다.한편 약 630년 전의 고려는 현대보다 좀더 태평하고 웃음기가 만연한 세계다. 1391년 고려 말. 부채 속 고양이를 꺼내 우왕(신정근)과 좌왕(이시훈)으로 부리는 것이 거의 유일한 장기인 얼치기 도사 무륵(류준열)은 현상금이 꽤나 걸린 ‘신검’ 사냥에 몰두 중이다. 고려 파트의 서사는 신검을 놓고 포위망을 조여오는 각기 다른 세력의 탈취극이라 할 수 있는데, 천둥 쏘는 처자로 불리는 이안(김태리), 삼각산의 두 신선 흑설(염정아)과 청운(조우진), 그리고 가면을 쓴 밀본의 도사 자장(김의성)이 제각기 한축을 담당한다. 이때 묘한 이질감과 긴장을 낳는 것은 고려의 이야기가 종종 현실을 최대치로 모방한 꿈처럼 느껴진다는 데 있다. 멀쩡한 세계는 종종 기이하게 우그러진다. 저잣거리의 양복 신사, 밀본 법사의 손목에서 빛나는 롤렉스 시계, 고려 여인의 손에 들린 권총, 그리고 젊은 도사 무륵에게 이따금 찾아오는 환시와 두통의 정체가 깨어진 기억의 파편처럼 떠다닌다. 그사이 정신을 빼앗는 것은 2022년 서울에서 외계 죄수들이 일으킨 탈옥 사건이다. 죄수의 탈옥을 막을 뿐 아니라 주입도 돕는 가드는 외계 행성의 반란군 죄수들이 인간의 몸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 대형 병원으로 호송선을 인도한다. 이때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형사 문도석(소지섭)의 뇌에 외계 반란군의 대장 격인 설계자가 이식되면서 제목 그대로 ‘외계+인’으로 구성된 새로운 빌런이 탄생한다.

<외계+인>을 만드는 네 가지 주요한 설정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신검을 손에 넣기 위한 강탈 서사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신검은 맥거핀에 불과하다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장르의 트릭에 가닿게 된다. 그 무렵 상기하면 좋을 <외계+인>의 서사적 뼈대 네 가지는 이렇다.

1. 시간은 공존하며 연결되어 있다.

2. 한번 인간의 몸에서 깨어난 외계인이 다른 인간의 몸으로 들어가게 되면 기억을 잃는다.

3. 신검은 인간의 몸에 잠든 외계인을 깨워 그 존재를 복구한다.

4. 인간에게는 외계인과 대적할 만한 매우 인간적인 초능력이 숨겨져 있다.

비주얼, 그리고 장르로 읽는 <외계+인>

발상의 흥미로움은 넘칠 정도로 충분한 영화다. 두개의 타임라인이 서로를 교란시키는 규모는 제법 방대해서 막바지까지 좀처럼 수렴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언뜻 서사가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이는 시각적 아이디어의 포화 속에서 서사의 고리가 다소 약화되는 순간들이 쌓여 만드는 착각에 가깝다. 어렵다기보다는 너무 많은 까닭이고 <외계+인>은 태생적으로 유기적 연결보다는 시퀀스별 스펙터클을 우선시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우선 SF로서 <외계+인>은 어떤가. <승리호> <서복> <고요의 바다> 등 한국형 SF물의 대두가 잇따라 주목받은 최근의 흐름 가운데서도 <외계+인>은 외계 생명체의 재현과 그 세계관 구현에 있어 남다른 스케일로 승부수를 띄운다. 이족 보행하는 촉수형 외계인, 총천연색의 입자로 구현된 외계 물질 등은 독창적이진 않지만 풍성한 볼거리로 자리매김하기엔 손색없다. 비주얼적으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외계 행성의 대기를 포자 형태로 뭉친 ‘하바’를 싣고 와 지구에 터뜨린다는 설정이다. 가스 테러라는 현실감 있는 상상력 위로 붉은색의 공기층에 휩싸인 빌딩숲 풍경이 신선한 비주얼을 완성한다.

고려 시대 재현에 있어선 밀본 사찰 공간과 삼각산 두 신선이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밀교에서 추출한 공간적 모티프와 <천녀유혼> 등 홍콩 무협의 판타지적 감수성을 버무린 캐릭터 묘사가 능수능란하게 어우러지는 대목이다. 청동 유물인 정문경(다뉴세문경)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삼각산 신선들의 거울은 후반부에 이르러 <전우치>의 분신술에 비견될 만한 쾌활한 볼거리도 낳는다. 외계인, 신선, 도사, 그리고 인간이 제각기 한자리를 차지한 채 촉수를 뻗치거나 도술을 쓰고, 총격을 가하는 요지경이 재미없을 리 만무하다. 아쉬움이 있다면 스케일과 감수성의 성취가 슬며시 반비례의 곡선을 그린다는 점이다. <외계+인>은 괴작이 되어야 비로소 훌륭해지는 유의 영화이고, 그래서 너무나 매끈한 결과물이 외려 시시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오묘한 조합의 배우들

배우 김태리는 어떤 역할이든 원래 해왔던 사람처럼 해내는 신묘한 배우다. 그다지 공들이지 않고도 능숙하게 과업을 해내는 태연함과 씩씩함이 <외계+인>의 천둥 쏘는 여인, 이안에게서도 매력으로 작동한다. 고려 시대 복장을 한 김태리가 ‘매트릭스 자세’로 사찰 건물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며 총을 겨누는 장면은 <암살>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총격 신을 소화하던 전지현과 마찬가지로 액션의 정점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김태리는 이야기 흐름상 1부보다는 2부에서 좀더 본격적인 활약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오랜 공백 끝에 스크린에 귀환한 김우빈은 프로그램 파트너 썬더가 분신술을 부린다는 설정에 힘입어 1인다역으로 매력 발산에 나섰다. 어쩌면 김우빈의 가드는 최동훈 감독 영화를 통틀어 가장 고전적인 캐릭터로 볼 수도 있겠다. 류준열의 무륵이 깡패와 타짜, 도사의 경계를 능글맞게 오가는 최동훈식 페르소나의 원형을 수행한다면, 김우빈의 가드는 정의와 신념, 임무에 오롯이 반응하는 하드보일드 장르의 주인공에 가깝다. 이런 인상은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로소 재밌어진다. 시각적, 서사적 설정들이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동안 잠시 숨 돌릴 틈을 만들어주는 감초 콤비는 염정아, 조우진이 믿음직스럽게 해낸다. 교활하고 장난꾸러기 같지만 쉬이 얕보기는 힘든 강력한 능력의 소유자인 두 신선은 <외계+인>의 유쾌한 트릭스터로 존재하면서 부채 도사 무륵 못지않은 흥미진진한 액션 신도 담당한다. 엄밀하게 비교하자면 최동훈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캐릭터의 세련미는 둔화된 편이다. 시공간이 파편화됨에 따라 팀플레이의 밀도도 낮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들 각자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각개전투 속에서 때로 조우하는 고려인과 현대인, 그리고 외계인의 시너지는 배우 본연의 매력과 함께 배가된다.

사진제공 CJ ENM,케이퍼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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