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세컨드>
넷플릭스, 웨이브 외
단 1초 혹은 두 프레임의 필름도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원 세컨드>는 필름 시대의 거장 장이머우가 이러한 질문에 내놓은 긍정의 답이자, 필름이 아니더라도 영화의 가치가 여전히 소중하다는 믿음의 전언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중국, 주인공 장주성이 노동교화소에서 탈옥해 거친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을 뚫으며 영화 필름을 운반한다. 영화와 함께 상영될 뉴스릴에 오래전 헤어진 딸의 모습이 나온다는 소식 때문이다. 운반 도중 필름이 훼손되고 사라지는 통에 여러 번 위기를 맞지만 어떻게든 영화가 상영될 마을의 영사 기사에게 필름을 전달하려 한다. <책상 서랍 속의 동화> <인생> 등 장이머우의 초기 대표작들에 서린 따스한 정서가 과거와 현재에 걸친 영화 매체에 대한 무조건적 애정과 조응하면서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영화, 보기의 미학>
넷플릭스
<원 세컨드>처럼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6부작 다큐멘터리다. 극장에서 <죠스>를 40번쯤 봤던 유년 시절의 추억이 평생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한 여인의 회고록으로 시작해 영화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오간다. <친절한 금자씨>를 필두로 한 영화 속 복수의 의미,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대부>에 얽힌 등장인물과 호감도의 역학 관계, 50년대 TV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던 극장의 역사와 OTT가 주도하는 작금의 세태를 비교하며 찾아낸 영화의 가치 등이 수많은 영화를 인용한 에세이 형식으로 펼쳐지는 방식이다. 물론 영화미학이라고 무겁게 말하기엔 어색한 짧은 분량의 가벼운 이야기들이면서 대체로 미국의 관점에서 읽히는 담론들이지만 그리운 고전들의 레퍼런스만으로도 영화에 대한 팬심을 채울 수 있다.
<낫아웃>
넷플릭스, 티빙 외
인생이 실패의 연속이라고는 하지만, 때로 어떤 실패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상실로 다가온다. 기대했던 신인 드래프트에 선발되지 못하면서 야구 인생이 끝날 위기에 처한 광호의 경우가 그렇다. 예기치 못한 절벽에 내몰린 광호는 급히 야구 특기생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 하지만 고교 야구계와 대학 야구계가 미리 합격 내정자를 협의하는 당시의 입시 관행으로 광호는 야구부 감독을 비롯해 주변 동료들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끝내 광호는 대놓고 촌지를 원하는 감독을 위해 불법적인 일로 목돈을 마련하려 한다. 꿈을 향한 맹목적인 열망과 처연하게 대비되는 현실의 냉랭한 조건들이 영화의 먹먹함을 가득 채운다. 실제로 국내 야구계의 입시 관행을 세간에 폭로했던 한 야구 선수의 실화가 바탕이라는 점도 감상의 깊이를 더한다.
<반려동물의 숨겨진 슈퍼파워>
넷플릭스
자극적이고 암울한 콘텐츠에 지쳤을 때 찾을 수 있는 최상의 치유 방법이 여기 있다. 4부작의 짧은 다큐멘터리 <반려동물의 숨겨진 슈퍼파워>다. 광활한 협곡 사이를 비행하는 보더콜리의 모습 이후로 춤추는 앵무새, 운전하는 쥐, 말하는 고양이 등 듣기만 해도 흥미진진한 동물들의 모습이 이어지며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동물들의 숨겨진 슈퍼파워가 단순한 흥밋거리 이상의 과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도 보여준다. 접촉한 물체의 형상을 즉각 시뮬레이션하는 쥐의 수염이 차세대 생명공학의 단서이고, 물체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고 공간화하는 앵무새와 고양이의 능력이 GPS 기술의 핵심이라는 식이다. 물론 이들의 가장 강력한 슈퍼파워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지니는 저마다의 형용할 수 없는 귀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