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는 첫 문장부터 건조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임진왜란의 굴곡진 음영을 더듬는다.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 사이에서 마지막까지 고민했다는 김훈 작가의 후일담은 역사의 재현이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작업인지를 증명한다. 김훈 작가는 ‘꽃은 피었다’로 썼을 때 ‘전쟁 한복판에서도 꽃은 핀다’는 식으로 다소 감성적으로 읽힐까 싶어 최후의 순간 끝내 ‘꽃이 피었다’로 바꾸었다. 고작 한 문장. 아니 한 음절. 하지만 때론 단어 하나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역사를 이야기로 다시 되살리는 자가 숙고해야 할 무게란 그런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고 존경해 마지않는 성웅(聖雄) 이순신 장군이라면 그 부담과 책임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는 적지 않지만 그를 다시 해석하는 일은 실로 고된 작업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모두 이순신 장군을 알지만 동시에 여전히, 어쩌면 영원히 제대로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김한민 감독의 <명량>(2013) 역시 이 숙명을 피해가기 어려웠다. 1761만 관객이 <명량>을 보았지만 이순신에 대해 여전히 할 이야기는 남아 있다.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 장군의 전투를 삼부작으로 만들기로 결심한 것도 같은 이유다. 김한민 감독이 <명량>의 속편을 제작한다 했을 때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되리라 예상한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역사 속 위인을 재현하는 전기영화, 그 이상의 도전이다. 명량대첩, 한산대첩, 노량대첩까지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전투를 중심으로 세명의 배우가 각기 다른 모습의 이순신을 연기한다. 세번의 전투와 세명의 이순신. <명량>의 최민식,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의 박해일, 아직 개봉 전인 <노량: 죽음의 바다>의 김윤석 배우가 이순신을 맡았다. 각 전투의 성격과 그 시기 이순신 장군의 고뇌, 역사적 상징이 뭉쳐 끝내 한편의 영화가 되는 영리한 접근이다. 어쩌면 모두가 알지만 여전히 더 알고 싶은 이순신이기에 가능한 도전이며 속편이 나오기까지 무려 8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순신의 활의 노래
<한산>은 임진왜란이 터진 후 역사의 분기점이 되었던 1592년 한산도대첩을 배경으로 한다. 1597년 정유재란의 명량대첩을 배경으로 했던 <명량>에서 5년을 거슬러 올라간 이야기다. <명량>이 12척의 배로 적군을 맞이하고 끝내 승리해야만 했던 영웅의 태산 같은 무게를 그렸다면 <한산>은 일본군의 수륙병진 작전을 무너트린 역사적인 대승의 과정을 다룬다. <명량>의 이순신에게 필요했던 것이 불가능 앞에서도 달아나지 않는 불굴의 용기였다면 <한산>의 이순신은 좀더 본질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용의 출현’이라는 부제처럼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이 어떻게 출현하였는지, 정확히는 이순신이 어떻게 일본 수군을 물리치고 전황을 뒤짚을 수 있었는지를 조명한다. 이순신 장군이 겪었을 고난을 묘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산대첩의 스펙터클한 전황을 보여주는 것도 예상 가능한 행보다. 하지만 전쟁을 그린다는 건 전투 장면을 그리는 것과 전혀 다른 일이다. 그것은 매우 지난하고 긴 준비를 바탕으로 한다. 김한민 감독의 <한산>은 여기에 주목한다. 한산대첩이라는 믿을 수 없는 전투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설득하는 데 영화의 3분의 2를 투자하는 것이다.
영화는 한산대첩보다 40여일 앞선 사천해전에서부터 문을 연다. 거북선이 실전 투입된 이 전투에서 13척의 배를 격침시키는 등 왜군을 크게 격파하였지만 이순신 장군이 총상을 입기도 했다. 이때 입은 부상이 이후 내내 후유증을 남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군과 일본군 양측 모두에 경각심을 안긴 일전이었을 것이다. 사천해전의 패전 소식을 들은 일본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변요한)는 복카이센(귀신 거북)이라 불리며 공포의 존재로 자리 잡은 거북선과 이순신을 경계한다. 경상도 수군을 물리치라는 명령을 받고 출진한 와키자카는 원균이 도망친 덕분에 육로로 진격, 한양 인근 용인에 다다른다. 이때 소수의 병력으로 밀집해 있던 10만명의 조선군을 습격하여 대승을 거둔다. 이후 다시 수군을 맡아 조선 바다를 평정하라는 명령을 받은 와키자카는 이순신과의 일전을 준비한다. 이순신 역시 적장이 세운 공적을 듣고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다. <한산>은 중반까지 두 장수의 치열한 첩보전 형태를 띤다. 역사에 남을 대승이라는 빛나는 업적 이전, 전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전략에 세심한 공을 들이는 것이다. <한산>은 이순신에게 손쉽게 영웅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일본군이 한양까지 진격해 임금이 몽진을 했고, 일본 육군이 언제 전라도의 수군 본영으로 들이칠지 알 길이 없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임금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해상에서의 대승이 필요한 상황 자체가 맞서야 할 적인데, 적군의 장수까지 만만치 않다. <한산>은 아군의 위대함을 위해 적을 바보로 만들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역사가 스포일러인 전투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비결이다.
전략이란 무엇인가.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뒤집는 기책은 화려하지만 달리 말하면 어쩔 수 없는 궁여지책일 따름이다. <한산>이 주목하는 것은 미리 대비하고 이길 수 있는 상황을 준비한 이순신 장군의 치밀한 면모와 지략이다. 그렇다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묘한 계책을 내놓는 식으로 쉬운 길을 가지 않는다. 학익진은 마법이 아니다. 이미 나온 수많은 전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학익진을 펼쳐 적을 일거에 섬멸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일이다. 한산 앞바다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조선 수군에 불리하게 돌아가지만 이순신 장군은 그 모든 요소를 활용하여 한산 앞바다에서만큼은 조선 수군이 압도할 수 있는 상황을 구축한다. 부산에 주둔 중인 적진에 첩자를 침투시키고, 실전 투입에서 문제가 드러난 거북선을 개량하고, 적군이 한산 앞바다에서 전면전을 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한산>이 하는 일은 그 과정의 이야기를 상상하여 촘촘한 사건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치열한 심리전과 첩보전, 전쟁에 대한 질문과 전장 앞에 선 인간들의 소용돌이치는 감정으로 이뤄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후반의 스펙터클한 전투보다 한층 밀도 있고 단단한 물밑의 전투가 상영시간 내내 관객의 시선을 빼앗는다. 마치 온몸의 근육을 동원해 활시위를 당기듯 사력을 다해 첩보전과 전투 준비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산>은 8년의 세월 동안 한껏 시위를 당겨 마침내 과녁을 꿰뚫은 활의 노래라 할 만하다.
물론 312억원이 투입된 대작이니만큼 한산대첩의 전투 자체가 주는 스펙터클도 대단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위를 떠난 활은 정확하게 과녁, 아니 관객의 심장을 꿰뚫는다. 함대전의 팽팽한 긴장감과 역동적인 움직임을 잘 살리는 가운데 천지를 울리는 대포 소리가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것은 물론 한산 앞바다의 물살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CG의 기술적인 완성도도 만족스럽다. 속편이 나오기까지 8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건 충분한 기술적 업그레이드를 위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바다에 배를 띄워 촬영했던 <명량>과 달리 이번엔 단 한척의 배도 물에 띄우지 않고 강릉 스케이트장에 실내 세트를 설치하여 촬영했다. 해전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데 정교한 CG만큼이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다름 아닌 압도적인 사운드다. 생생하게 구현된 전장의 사운드와 포격은 치열했던 전장 한가운데로 관객을 초대한다. 그야말로 여름 극장가를 위한 최적의 선택이다. 한산대첩이 1592년 7월9일(양력 8월14일)에 있었던 만큼 의미도 남다르다.
영화 초반 사천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아군을 구하기 위해 활을 당긴다. 조총의 사거리에 노출되는 것을 감수하고서도 활을 당기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이 영화의 주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전쟁. 일본군에서 귀화한 장수 준사(김성규)에게 이순신 장군은 말한다. “이것은 의(義)와 불의(不義)의 전쟁”이라고. 그러기 위해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고. 한산대첩은 지키기 위해서 공격해야 하는 전투다. 이순신 장군이 세우고자 했던 바다 위의 성은 조선 전체를 지키는 거대한 마음속의 성인 셈이다. <한산>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우리 마음속 각자의 이순신들이 모여 거대한 성을 쌓아나가는 영화다.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방식을 소위 ‘국뽕’이라고 한다면 <한산>은 이제껏 본 적 없는 차분함과 신중함으로 그러한 심리 상태에 도달하는 보기 드문 영화다. 오랜 준비 끝에 바다 위의 성, 마음속의 한산은 그렇게 구체화된다.
박해일의 물의 노래
<한산>의 이순신, 박해일의 이순신은 고요한 물과 같다. 눈빛에 물의 기운이 있어 캐스팅했다는 김한민 감독의 표현은 빈말이 아니다. <극락도 살인사건>(2007), <최종병기 활>(2011)의 오랜 인연으로 다져진 서로를 향한 신뢰를 바탕으로 박해일의 이순신을 그려나간다. 신중한 성격과 부동심, 철저한 준비로 요약되는 <한산>의 이순신은 고요한 호수가 되어 상황을 비춘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이 영화에서 이순신은 일종의 배경에 가깝다. 그는 감정을 분출하지 않는다. 격렬한 전투 중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조용하게 “발포하라”고 되뇌는 모습은 그야말로 활을 든 군자의 초상이다. 모두가 혼란스럽고 두려운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그의 모습은 거대한 산(한산-閑散)처럼 든든하다. <한산>의 이순신은 산속의 큰 호수처럼 맑고 청아하다. 그 투명한 수면 위에 전쟁이 비치고, 전쟁 한복판에 놓인 사람이 비친다. <한산>의 이순신은 스스로 분출하고 뿜어내는 대신 차분함으로 전쟁을 비추는 거울이 되길 자처한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한산대첩을 다룬 기존의 어떤 창작물보다 주변 인물들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이순신 장군을 잘 알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처럼, 한산대첩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한산대첩을 이끈 수많은 장수와 부장들의 면면을 차분히 조망한다. 전라우수사 이억기(공명)는 이순신의 든든한 오른팔이 되어 그의 고뇌를 기꺼이 함께 짊어진다. 한산 앞바다의 물길을 꿰고 있는 장수 어영담(안성기)은 등장만으로도 신뢰를 더하고 경상우수사 원균(손현주)은 적당히 비겁하고 타산적이며 용렬한 면모를 드러내며 갈등의 중심을 잡아준다. 특히 영화의 핵심이자 비밀병기인 거북선의 개발자 나대용(박지환)은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던 거북선의 새로운 면모를 제공한다. 한편 첩보전의 중심에 서 있는 준사와 일본 장수 사헤에(이서준)마저 놓칠 수 없는 존재감으로 화면을 장악한다. 한산대첩을 둘러싼 부장과 적장들의 면모가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건 반대로 이순신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고요하게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산>은 캐릭터 한명 가볍게 흘려보는 일 없이 한산대첩의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물론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역사를 제대로 고증하는 것만큼 중요한 성패의 열쇠는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각색할 수 있을지에 달렸다. <한산>은 유연하게 상상력을 동원하여 역사의 공백을 메운다. 대표적인 것이 거북선의 활용이다. 거북선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고 어떤 활약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불분명하다. <한산>은 이 틈을 파고들어 드라마의 비밀병기로 삼았다. 부제인 용의 출현은 이순신의 출현이자 거북선의 출현이기도 하다. 거북선이 2층선인지 3층선인지, 용두의 충파 부분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두꺼운 장갑 때문에 무거워진 무게를 어떻게 해결하여 돌격선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지 등 의문투성이다. 도입부 사천해전부터 등장하는 거북선이 후에 어떻게 활약하는지, 더이상 신비의 전법으로 소비되지 않는 학익진이 어떤 과정을 통해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지켜보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흥미와 재미의 요소가 되기 충분하다. 역사라는 거대한 산, 이미 다 아는 이야기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1700만 관객의 뇌리에 이미 자리 잡은 <명량>의 이순신도 있다. 전작을 뛰어넘는 건 그것만으로도 도전이지만 <한산>의 경우 <명량>의 벽이 유난히 높고 두텁다. <한산>은 물과 같이 맑은 태도로 답을 찾는다. 역사를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자 우리 시대가 바라는 영웅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화답. 역사와 인물을 완전히 재해석하지 않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순신의 모습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한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이순신이 탄생했다. 김한민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국뽕 너머의 국뽕”은 과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