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복원의 재구성: 이창동 전작 4K 리마스터링 포럼’에 가다
2022-08-04
글 : 정재현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정리 : 이다혜
"영화 촬영, 상영 당시의 모든 요소가 아카이빙되어야"

7월1일부터 8월25일까지 진행되는 ‘발굴, 복원 그리고 재창조’ 기획전은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상자료원)의 주요 사업인 영상 복원 사업의 결과물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자리다. 올해 ‘발굴, 복원 그리고 재창조’ 기획전에선 4K 리마스터링된 이창동 감독의 장편 6편과 단편 <심장소리>를 상영하는 섹션이 마련됐다. 기획전의 일환으로 지난 7월23일,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1관에서 ‘복원의 재구성: 이창동 전작 4K 리마스터링 포럼’이 열렸다. 전석 매진된 이날 행사에는 수많은 관객이 참여해 <심장소리>를 관람하고 포럼을 경청했다. 영화 상영 전 모습을 드러낸 이창동 감독은 감사 인사와 함께 <심장소리>의 제작 과정을 전하고, “원본 복원 작업은 영화산업 전체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하며 모두 발언을 마쳤다. <심장소리>가 상영된 뒤 김홍준 영상자료원 원장이 모더레이터를 맡고 박홍열 촬영감독, 조해원 영상자료원 영상복원팀장, 신정민 영상복원 전문가가 패널로 참여한 포럼이 시작됐다. 포럼은 2시간가량 진행됐으며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를 디지털화하는 복원 과정의 현황 그리고 디지털 촬영 시대에 발생하는 원본 아카이빙 문제에 관한 논의가 진행됐다.

■ 4K 디지털 리마스터링과 필름 복원의 중요성

조해원 필름 디지털 리마스터링은 화면과 음질 개선을 포함해 아날로그 형식으로 마스터된 것을 디지털 포맷으로 전환하는, 새로 마스터링을 하는 단계다. 35mm 필름의 해상도를 정확히 수치화할 순 없지만 대략 4K 해상도와 근접한 해상도를 내기 때문에 4K로 리마스터링하는 게 가장 좋다. 영상자료원의 필름 디지털화 과정은 필름 스캔, 필름 디지털화, 필름 복원의 세 단계를 거친다. 먼저 필름 스캔은 아날로그 자료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단계로 여기서 가장 많은 작업을 거친다. 필름 디지털화는 스캔 파일을 활용해 색 보정, 음향 복원을 진행한 후 다른 디지털 파일로 마스터링하는 작업이다. 영상자료원에서는 필름 디지털화를 리마스터링 개념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필름 복원은 필름 디지털화 작업에서 추가 공정을 더해 원본과 동일한 상태로 복원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김홍준 1990년대 한국영화 현장에서는 1.85:1 화면을 찍을 때 렌즈에 마스킹하고 와이드스크린을 만들어냈다. 이때 렌즈에 잡티가 있을 수도 있고 카메라가 바람에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필름에 기록돼 있으니 원본일 것이다. 초창기에는 디지털에 대한 맹신 때문에 티 하나 없는 화면을 잘된 복원의 기준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복원은 상대적이고 문화적인 개념이다. 적절한 선에서 원본의 기준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

조해원 필름 복원에는 아카이브 철학적인 부분이 포함돼 있다. 원본을 무작정 깨끗하게만 만든다고 해서 복원이 잘됐다고 볼 순 없다. 영화가 제작된 시대 상황에 맞춰서 만들어내는 게 필름 아카이브 차원에서의 복원이기 때문이다. 가령 화면 가장자리의 머리카락같이 지금의 시선으로 봤을 때 지울 수도 있는 것들을 복원 공정에서는 남긴다. 즉 필름 디지털화, 리마스터링은 화면과 음질을 개선해서 더 좋은 해상도로 만드는 작업이라면 필름 복원은 원본에 대한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디지털 파일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국내에서 필름 보수를 시작으로 필름 복원의 단계까지 할 수 있는 국가기관은 영상자료원이 유일하다. 이는 필름을 보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신정민 리마스터링 분야 세계 1위인 볼로냐 복원 서머스쿨에 26일간 다녀온 적이 있다. 해외의 경우 복원을 할 때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복원은 촬영 당시 스탭들의 열정, 당시의 상영 플랫폼까지도 공유할 수 있는 개념이어야 한다.

이창동 감독

■ 시대별 작업 공정과 오리지널 네거티브 손실 문제

조해원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필름으로 촬영해 필름으로 상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때 35mm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촬영 원본)을 현상한 후 스틴벡을 통해 16mm 필름으로 편집했다. 최종적으로 색 보정 전 단계에서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 커팅을 하고, 그 과정에서 순서를 정리하고 해당 필름으로 상영용 필름을 복사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오리지널 네거티브가 보존될 수 있었다. DI(Digital Intermediate, 색 보정 포함한 교정 작업) 도입 전 단계에도 키-코드 텔레시네가 있어 편집 시 당연히 오리지널 네거티브를 보존할 수 있었다. 필름으로 찍어 디지털로 상영하는 시점부터 오리지널 네거티브 손실의 문제가 생겼다. 2001년 <화산고>를 시작으로 DI가 도입됐는데, 오리지널 네거티브를 디지털로 스캔해 그 위에 작업과 편집을 거친 후 최종 DI 공정에서 DCP(Digital Cinema Package, 극장 상영용 파일)를 만들어 디지털 상영관에 배급했다. DI 시 DSM(Digital Source Master, 색 보정이나 CG 등이 포함된 디지털 원본 마스터)은 필름에 또 새롭게 리코딩했다. 이때 리코딩은 상영 표준에 맞춘 2K DSM 소스로 진행됐기 때문에 촬영 원본이 제대로 보존되지 못했다. 심지어 DSM 공정은 필름에 디지털 자료를 넣는 과정을 포함하는데 이때 해상도는 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영상자료원이 보유하고 있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의 영화 시네온 파일(필름 리코딩용 파일)은 224편이다. 이들은 리코딩 필름과 2K DSM인데, 다시 말해 오리지널 네거티브가 없다는 뜻이다. 향후 2K 리마스터링을 진행할 수는 있어도 4K 해상도에 준하는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이 없기 때문에 시네온 파일을 스캔 후 4K 업스케일링을 통해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시>는 2K DSM을 4K로 업스케일링하는 과정을 겪었다. 디지털 촬영 후 디지털 상영 단계로 넘어오면서 4K, 6K, 8K 고해상도로 촬영이 가능해졌다. DSM을 만들고 DCDM(Digital Cinema Distribution Master, 자막 등 부가 데이터 포함)과 DCP를 상영관으로 보내는데 3254개의 전국 스크린 중 4K 영사를 할 수 있는 상영관은 228개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고해상도 촬영과 별개로 실제 극장에서 보는 것은 2K DCP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상영관이 2K 영사기이기 때문에 4K를 구현할 환경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박홍열 한국영화가 전성기였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필름 사용량이 정말 많이 늘어났다. 그러던 중 디지털 기술과 디지털 영사기가 등장했다. 이때의 필름 현상소들은 필름 프린팅이 주 수입원이다 보니 고객 유치를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저가의 DI 산업을 편집에 도입했다. 그렇게 30만자 이상의 원본 필름들을 직접 편집하면서 이를 보존하지 않고 죄다 디지털화해버렸고, 그 과정에서 원본이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필름은 디지털보다 훨씬 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다. 4K가 10비트니까 2의 10제곱인 1024만큼의 색 심도를 표현할 수 있다면 필름은 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디지털에 대한 맹신으로 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날린 것이다.필름을 DCP로 만드는 과정은 복사의 과정이다. 한국영화가 부흥하고 극장이 많아지면서 필름 프린팅 양도 많아졌는데 오리지널 네거티브를 계속 복사하면 원본이 망가지다 보니 당시엔 훼손을 막으려 오리지널 네거티브를 디지털 리코딩하고, 그것을 계속 복사 또 복사하며 프린트를 떴다. 지금 영상자료원이 <반칙왕>의 릴리스 프린트로 리마스터링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실상 릴리스 프린트는 오리지널 네거티브가 아니라 연거푸 복사된, 원본의 정보량이 손실된 필름이다.

김홍준 당시 한국영화계의 상황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이 도입되기 전 35mm 필름은 굉장히 비싸고 제작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35mm 필름 오리지널 네거티브를 동일한 필름으로 복사했던 할리우드와 달리 당시 한국은 35mm 필름을 16mm 필름으로 축소하여 복사, 편집했다. 촬영한 필름이 5만자 정도라면 1만 5천자에서 2만자 정도가 오케이 컷이었고, 나머지 엔지 필름은 보존하지 않고 그냥 버렸다. 당시 한국영화의 취약한 산업 구조, 오랫동안 쌓아온 관행 등의 이유로 오케이 컷만 오리지널 네거티브로 남겨두고 나머지는 원본이 아니라 생각했다. 할리우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엔지 필름도 아직 보관하는데 말이다. 물론 그 많은 필름을 보존할 공간이 없기도 했다. 충무로 영화인들이 돈이 많아서 100평짜리 집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것도 아니고. (좌중 웃음)

조해원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복원팀장, 신정민 영상복원 전문가, 박홍열 촬영감독,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왼쪽부터).

■ 오리지널 네거티브 수집의 중요성과 제도 개선의 필요성

조해원 영상자료원은 90년대 중반부터 DCP 의무 납본제를 시행 중이다. DCP가 2K이기 때문에 향후 4K 이상의 리마스터링을 위해서는 촬영 원본 수집이 더욱 중요하다. 다행히 <버닝>은 4K로 촬영했기 때문에 4K DCP를 만들어 보존하고 있다. 몇년 전부터 수집팀을 통해 오리지널 네거티브 손실의 문제를 확인했고, 이 문제가 지속되면 필름 시대에 DI 공정이 들어오며 고해상도의 원본을 잃어버렸던 과정의 반복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부터 의무 납본을 DCP로 받되 색 정보가 들어가지 않는 오리지널 네거티브도 매입해 수집하고 있다.

박홍열 <기생충> 등의 최근 영화들은 전부 6K로 찍고 있음에도 최종 DCP는 무조건 2K다. 2K DCP를 자료원과 제작사들이 보관하는 게 안타까웠다. 영상자료원이 복원 사업에 중점을 두며 DI 없는 원본을 수집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디지털로 촬영하는 영화 용량은 100~150테라다. 필름 촬영 때처럼 공간을 차지할 여력을 생각할 필요가 없음에도 관습이 남아 있다 보니 원본 데이터는 지금도 어떤 제작사도 관리하지 않는 듯하다. 그런데 얼마 전 공개된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의 원본 데이터를 넷플릭스에서 전부 보유하고 있어 놀랐다. 오리지널 네거티브를 보존하는 것은 산업적인 측면은 물론 역사적, 인류학적 맥락 안에서도 중요하다. 그리고 오리지널 네거티브의 보존 중요성에 관한 인식이 전환된다면 제작사들도, 지금 독립영화를 찍고 있는 사람들도 원본을 보관하고 싶을 것이다. 이건 영상자료원 혼자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 여러분들이 그런 목소리를 높여준다면 정부가 예산을 배정할 것이고 아카이빙의 중요성도 재고하지 않을까.

김홍준 파주에 복원센터가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영상자료원이 예산을 쌓고 인원을 확충한다면 제3의 복원센터, 제4의 복원센터도 만들고 전국에 4K 시네마테크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꾼다.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나라에서 극장 상영을 목적으로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영화로 등급 신청을 하는 것만이 DCP 의무 납본 대상이다. 즉 OTT 제작, 배급물인 <승리호>나 <오징어 게임> <D.P.> 등은 우리가 수집할 의무도, 그들이 제출할 의무도 없어 공중에 떠 있다. OTT의 오리지널 네거티브는 고사하고 DCP조차 수집이 안되는 상황이라 이 점도 여론의 상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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