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서 뱅크시의 그림 <풍선과 소녀>가 예상을 뛰어넘는 금액에 낙찰된다. 하지만 낙찰봉을 두드리자마자 액자틀에 숨겨져 있던 장치가 작동하면서 그림은 파쇄되고 만다. 뱅크시가 의도한 이 소동은 일종의 퍼포먼스로 받아들여진다. 그림의 가격은 낙찰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뛴다. 뱅크시의 동료이자 영화의 인터뷰이 중 한명은 이 해프닝이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진정한 가치’를 묻는다”고 말한다. 영화 <뱅크시>는 이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뱅크시라는 한 예술가에 대한 탐색을 통해 알 수 있으리라고 믿는 듯 보인다. 이 탐색은 브리스틀, 뉴욕, 런던 등을 비롯한 세계 여러 도시들을 가로지르면서 그라피티와 거리 예술의 역사 안에서 뱅크시가 성장해온 흔적들을 찾으며 진행된다. 여기에 그와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을 비롯한 거리 예술가들과 전기 작가 윌 엘즈워스-존스의 인터뷰가 해설로 함께 곁들여진다.
이 영화에서도 뱅크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연출한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에서 사용된 변조된 목소리와 달리,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대역이 뱅크시의 목소리를 ‘재연’한다. 이러한 두 목소리의 차이가, 동시에 두 영화 사이에도 차이를 만든다. 전자가 목소리의 익명성을 부각시켜 예술 제도에 공격을 가하기 위한 무기가 된다면, 후자는 그것에 어떤 진정성을 부여하고자 시도함으로써 뱅크시를 둘러싼 신화화에 일조한다. 영화가 누차 강조하는 것처럼 뱅크시 자체는 문제적인 예술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 안에서 그는 자신을 위한 자리가 없었던 예술 제도 안에 스스로를 위치시킬 수 있게 된 신화적 성공담의 주인공에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