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에는 ‘5초짜리 영화의 세계’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더이상 아무도 2시간짜리 영화를 보지 않고 단 5초면 한편의 영화가 끝나는 세계. 1분이 넘는 영상은 아무도 보지 않는 세계. 이건 영화적인 표현일 테고, 실제로 5초짜리 영상은 영화라기보다는 ‘영상물’로 부르는 게 맞겠지만, 이 표현이 어떤 세태를 반영하는지는 모두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야기를 경험하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한편의 영화를 보는 대신 오로지 시청각적 자극만을 얻기 위해 짧은 영상을 보는 시대는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
솔직히 말해서 이러다 책이나 영화가 완전히 사라지면 어떡하냐는 우려는 앓는 소리처럼 느껴진다. 책이나 영화가 선택받은 자들을 위한 매체도 아니고, 의무교육이 존재하고 아직은 천만 영화가 나오는 시대인데 뭘 그렇게까지. 하지만 책을 읽는 인구가 줄어들고, 집에서 OTT 서비스로 영화를 보느라 한 영화를 수없이 끊어서 보고, 영화관의 티켓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기후 위기로 인한 각종 분쟁이 코앞에 닥친 지금, 과연 사람들이 몇 시간씩 감상해야 하는 예술을 통해 다른 삶을 기꺼이 경험하고자 할까, 라는 물음 앞에서는 목뒤가 서늘해진다.
시간을 들여 집중하는 일은 원래 어렵다. 그건 시대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시장 복판에서 판소리를 했고 누군가는 비극 작품을 써서 연극으로 올렸으며 사람들은 찾아가서 그것을 지켜봤다. 이런 작품들에는 타인들의 이야기가 있었고 공동체는 이야기를 통해 감정을 공유했다. 이야기의 표현 방식이 바뀌어도 시간을 들여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늘 필요하다. 그것만이 각자의 협소하기 그지없는 삶을 연결하여 잠시나마 더 크고 넓은 것으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이 어려운 일을 늘 해왔다는 사실에 경이감을 느끼며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리라 믿어보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