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카터’ 정병길 감독 “액션을 한폭의 수묵화처럼”
2022-08-11
글 : 이자연
사진 : 박종덕 (객원기자)

- <카터>는 모든 기억을 잃은 채 잠에서 깨어난 카터(주원)가 의문의 목소리에 의존하며 미션을 수행해나가는 이야기다. 영화의 소재와 스토리라인은 처음 어떻게 떠올렸나.

= 시나리오 집필은 <내가 살인범이다>를 마친 2012년에 시작했다. 워낙 원테이크 액션 장면이 많아 주인공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임무 수행에 동력을 주기 위해 귀 안에 심은 장치로 미션을 통보하고, 또 미션을 주는 목소리 주인공이 악인인지 아군인지 모르게 하면서 미스터리를 키워나갔다.

- 거듭해서 주인공에게 퀘스트를 주는 방식이나 주인공의 뒤를 쫓아다니는 카메라 구도가 마치 여느 배틀 게임을 연상시킨다.

= 특정한 게임을 참고한 건 아니지만 게임의 익숙한 개념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벌거벗은 카터가 옷가게에 가서 급하게 옷을 입는 장면이나 가방에 신식 무기를 담아 적진에 쳐들어가는 장면은 게임 속 아이템 착용 과정과 비슷하다. 카터가 속옷만 입고 나왔던 이유는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을 따를 수밖에 없게끔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기 위해서였다. 어쨌건 사람이 옷을 벗고 있으면 위축되잖나.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빌드업해나갔다.

- 액션 신을 다양한 각도로 보여주며 속도감을 높인다.

= 원테이크 신은 보통 카메라 한대로 촬영하기 때문에 컷을 쪼개거나 클로즈업과 풀숏을 왔다 갔다 할 수 없어 자칫하면 루즈해진다. 하지만 카메라가 인물 동선에 맞춰 빠르게 움직이면 그 부분을 보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스카이다이빙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더 늦게 떨어지면서 순간적으로 풀숏을 잡고 그 뒤에 인물들을 따라가면서 클로즈업으로 비춘다. 카메라의 빠른 움직임이 중요했다. 대부분 RED 코모도 카메라를 사용했다. 사이즈가 작아서 우리가 들고 뛰기 용이하고 또 6K까지 커버할 수 있다. 날렵한 액션 신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 초반 목욕탕 장면은 파죽지세의 액션 신이 무척 압도적이다. 워낙 많은 사람이 격투를 벌이다보니 안전 또한 고려했을 것 같다.

= 사실 그 장면은 다른 작품에 구상해두었던 시퀀스다. <카터>를 준비하며 통째로 갖고 왔다. 스턴트팀이 대거 출연해서 합을 맞추는 게 무척 중요했는데 워낙 숙련된 분들이라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다만 목욕탕이라 바닥이 미끄러워 특수 제작한 매트를 깔았다.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매트가 헐렁거려서 오히려 불안하더라. 그래서 다시 다 떼어버렸다. 공간이 넓다보니 매트리스 떼어내는 데만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번 촬영 회차는 이대로 끝날 거라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때 모든 스탭과 배우들이 달려들어 이 작업을 도와주었다. 무척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 주원 배우를 카터로 낙점한 이유가 궁금하다. 어떤 점을 눈여겨봤나.

= 연기야 더 말할 것이 없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과 우수에 찬 눈빛이 아무도 믿을 수 없어 경계하면서도 미션을 따를 수밖에 없는 카터의 심리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무엇보다 주원 배우가 미팅 자리에서 굉장히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보통 배우들은 삭발을 기피하는데 그런 것에도 아랑곳없이 적극적이었다. 다른 영화 관계자들이 작품을 보고 신인배우로 착각할 정도로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 격투 신마다 등장하는 국악풍 음악은 기괴스러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국악 장르를 차용한 이유가 있다면.

= 배경음악으로 선율이 아닌 사람의 목소리가 깔리면 어떤 분위기를 낼지 궁금했다. 영화 전반적으로 동양화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한 맺힌 여성의 목소리가 담긴 국악풍 음악을 넣어봤는데 잘 어울려서 처음부터 끝까지 배치했다. 사람의 목소리를 악기로 쓴 것이다.

- 전작 <악녀> <내가 살인범이다>를 보면 연쇄살인, 킬러 등 묵직한 소재가 많다. <카터>의 디스토피아는 그동안 그려낸 세계관과 어떻게 다른가.

=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면서 사람들이 이상행동을 보이지만 좀비처럼 말을 못하거나 사고 불능 상태가 아니다. 말도 하고 자기 판단도 하고 도구도 쓸 줄 안다. 다만 무작정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분노를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워한다. 현실에서도 사람들이 순간적인 충동을 제어하지 못해 사고를 일으키는데 만약 그게 계속된다면 어떨지 상상해봤다. 외모적으로도 이질감을 높이고 싶어 민머리를 차용했다. 삼손이 머리카락이 있을 때 힘이 난다면 반대로 <카터>에서는 머리카락이 빠질 때 의문의 분노가 솟구친다.

- 결말에선 가족주의적 요소가 관성적이거나 뻔해 보이지 않도록 주의한 듯하다.

= 그렇다. 미스터리함을 높이기 위해 회상 신을 전부 들어낼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루는 회상 내용을 모두 지워봤는데, 전사에 대한 설명이 없어 앞뒤 연결이 잘 안되고 어색했다. 질주하는 스토리에 회상 신으로 브레이크를 잡아주는 게 낫다는 주변 반응도 도움이 되었다.

-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OTT를 통해 관객을 만나는 건 처음이다.

= 모든 일에 일장일단이 있다. 실제로 관객을 마주할 수 없어 아쉬움이 크지만, 한편으론 온라인으로 벽을 허물고 전세계 사람들과 함께할 거라고 생각하니 떨리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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