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제천국제음악영화제 OST 마켓에서 발굴한 신인 음악감독 5인
2022-08-14
글 : 김수영
사진 : 최성열
정리 : 김송희 (자유기고가)
기회의 탐색, 영화음악가의 탄생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제천영화제)에서 세계 최초 영화음악 작곡가 마켓이 열린다. 올해 처음 선보이는 ‘짐프 OST 마켓’은 신인 작곡가의 현장 데뷔를 지원하는 행사다. 올해로 17기 신입생을 모집한 제천영화음악아카데미 수료생은 600여명에 달하지만 데뷔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은 여전히 지망생으로 남아 있다. 이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제천영화제가 직접 데뷔의 장을 마련했다. 예심을 통과한 다섯명의 최종 진출자는 영화제 기간 중 열리는 쇼케이스와 비즈니스 미팅을 통해 이전에 없던 기회를 모색할 예정이다. 산업 관계자들과 매칭에 성공할 경우 최대 5천만원의 음악 제작비도 지원한다. 제천영화음악아카데미 수료생들로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지만 쇼케이스 준비로 더욱 돈독해진 다섯명의 신인 작곡가를 만났다.

- 각자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만들어왔는지 소개해 달라.

손한묵 장편영화, 드라마 작업을 5년 정도 했다. 클래식 음악 전공인데 대학원에서는 전자음악을 했고 지금은 국악을 공부하고 있다. 여러 장르를 좋아하는데 특히 엠비언스 사운드를 선호한다.

이명로 영화음악 작곡가로 일한 지 7년차다. 조영욱 음악감독님 팀에서 일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고 제천영화음악아카데미 덕분에 영화음악을 알게 되었다. 컨셉이 있는 음악, 독창적인 센스가 돋보이는 음악을 추구한다.

변동욱 2016년부터 20여작품에 참여했다. 주로 드라마 음악을 작곡했다. 드라마에서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필요해서 이제는 가리지 않고 다 만들고 있다.

정나현 2015년부터 단편영화 작업을 시작했고 상업영화 작곡팀에 참여한 건 2년 정도 됐다. 액션이랑 스릴러 장르의 음악을 많이 썼다.

최종호 대학원을 졸업한 지 이제 3년 됐다. 아직 현장 작업 경험은 많지 않다. 영상음악,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지만 애니메이션 음악을 좋아하고 많이 듣는다.

- 영화음악 작곡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정나현 일단, 멋있었다! 한스 짐머의 음악이 쓰인 <천사와 악마>를 보고 영화음악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어렵게 재수하던 시절 <드래곤 길들이기>를 보면서 ‘진짜 멋있다. 나 이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명로 영화 <내부자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소름이 돋았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음악이 엔딩 크레딧까지 연결돼서 흐른다.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었지만 영상을 뚫고 나오는 음악이 굉장했다. 원래는 게임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내부자들>을 보고 영화음악의 길로 돌렸다.

변동욱 고등학교 졸업하고 음악을 시작했다. 학창 시절에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O.S.T에 관심이 생겼고 막연히 영화음악 작곡가가 직업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종호 고등학생 때 음악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연주나 노래는 안될 것 같았다. 클래식 작곡도 끌리지 않았다. 그러다 히사이시 조의 콘서트 영상을 봤는데 새로운 세상이 열린 느낌이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이거라면 해볼 만하겠다 싶어 파고들었다.

손한묵 어릴 때부터 손 가는 대로 기타 잡으면 기타를 쳤고 피아노 잡히면 피아노를 쳤다. 어머니가 아침마다 라디오를 틀어놓으신 게 도움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악기를 치면서도 이걸 잘해서 뽐내야겠다기보다 내 마음에 솟구치는 뭔가를 풀어내고 싶었다. 음악의 멜로디나 어떤 요소가 감정적으로 크게 와닿은 경험이 많았다. 그렇게 작곡의 길로 나아갔다.

- 모두 제천영화음악아카데미 수료생이다. 아카데미에서 무엇을 배웠나.

이명로 여기서 영화음악을 직접 만들어보고 찾아 들으면서 영화음악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만약 이전처럼 영화음악은 그저 영화에 깔려 있는 음악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면 <내부자들>에서 느꼈던 감동도 없었을 거다.

손한묵 지방에 살고 있어서 음악을 하고 싶어도 교육기관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제천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제천영화음악아카데미에 들렀다. 영화와 음악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잖나. 아카데미 합류는 결심할 것도 없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내 수준은 얼마나 되는지 이런 것들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변동욱 학교 다닐 때 주변에 영상음악을 하려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항상 동료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무렵 제천영화제를 통해 아카데미를 알게 됐다. 나이는 달랐지만 영상음악에 관심 있는 동료나 멘토 선생님을 만난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 이번 마켓의 1차 심사는 오로지 지원서와 포트폴리오만으로, 2차 심사는 면접과 실연으로 이루어졌다. 2차 심사 때 각자 어떤 승부수를 띄웠나.

손한묵 1차에 당선된 동료들을 이미 알고 있어서 내가 저들보다 연주를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없었다. 특이한 악기와 음악으로 승부하겠다고 생각하고 코믹 음악과 국악기를 준비했다.

최종호 1차 합격도 믿기지 않았다. 신인감독을 위한 프로젝트지만 경력이 거의 없어서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안될 테니 질러나 보자는 마음으로 2차까지 갔다. 시연하고 나오면서 ‘또 뵙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나왔다. 뻔뻔하게 나간 게 한몫한 것 같다.

정나현 주로 액션,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를 작곡해서 시연할 만한 근사한 음악이 없었다. 연주할 수 있는 것도 피아노뿐이었다. 친구들에게 내가 피아노를 칠 테니 옆에서 기타 치고 연주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제까지 해온 것 말고도 다른 사운드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세션을 꾸려갔다.

이명로 나도 연주는 자신이 없어서 가장 안전한 선택을 했다. 개봉작에 쓰인 영화음악 중에 반응이 좋았던 곡 위주로 준비했다.

변동욱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피아노뿐이었다. 내가 쓴 곡 중에서 피아노로 보여줄 수 있는 곡을 추려 장르를 다양하게 섞어서 연주했다.

영화에서 음악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명로 아까 영상을 뚫고 나오는 음악에 감정이 벅찼다고 하지만 사실 잘 안 들리는 음악이 좋은 영화음악이라 생각한다. ‘음악’영화가 아니라 영화‘음악’이니까 음악은 영상의 서브로 맞춰줘야 한다. 하지만 영상에도 빈 곳이 있기 마련이라 음악이 영상이나 연출의 빈 곳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정나현 음악의 역할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 언더 스코어도 있고 메인 스코어가 있듯이 음악이 뚫고 나와야 할 때가 있고, 들리듯 안 들리듯 도움을 줘야 할 때도 있다.

손한묵 감독님과 잘 소통하되 음악에 나의 정체성을 녹이는 것도 중요하다. 음악은 영화의 풀이다. 각기 다른 시점을 붙게 하고 다른 감정을 붙이기도 한다. 음악이 그런 역할을 할 때 희열을 많이 느꼈다.

최종호 나는 영화음악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설명서, 연결고리, 증폭제다. 여기서 연결고리는 풀과 같은 의미다. 음악은 영화에서 감정이나 액션을 설명하기도 증폭하기도 한다. 음악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 연출자와 대화를 많이 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 음악감독으로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점이 있다면.

손한묵 본인한테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작업할 때 오롯이 내면으로 들어가 연구하는 시간이 가장 도움이 된다. 여러 악기를 많이 접하고 전시나 영화 등의 인풋이 많으면 아웃풋도 많아진다. 정보를 다 흡수하되 어떻게 소화할지 고민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방식은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어떤 인상을 받으면 손에 잡히는 악기로 표현해보는 편이다.

이명로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말 아이디어가 필요한 순간에 악기 하는 친구들을 찾아가 아무거나 연주해 달라고 할 때도 많다. 음악이 아니라 아무 소리나 내달라고. 그렇게 낯선 소리를 들으며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을 찾아나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심플하게 승부를 보자고 생각한다. 1, 2년차에 곡 쓸 때는 곡에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었다. 한번은 감독님이 보시고 ‘자신 없었구나?’ 이렇게 얘기하셨다. 정말 자신 없어서 그랬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항상 심플함을 목표로 곡을 쓴다.

최종호 편식을 안 하려고 노력한다. 예전에는 시끄럽고 때려부수는 음악은 절대 안 들었는데 요즘엔 일부러 듣는다.

변동욱 음악을 많이 들으려고 한다. 영화음악뿐 아니라 빌보드도 듣고 재즈도 듣고 클래식도 듣는다. 곡을 쓰더라도 그전에 안 써봤던 방식으로 써보려고 노력한다. 쓰다보면 나도 모르게 예전에 쓴 것과 비슷한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써보지 않은 악기를 쓰고 악기를 섞어보는 식으로 새로운 시도를 한다. 사실 그렇게 해도 좋은 곡이 안 나오더라. (좌중 웃음) 최근에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춤 영상을 많이 봤다. 댄서도 음악을 분석하고 이해해서 춤으로 표현한다. 음악의 어떤 요소가 춤으로 어떻게 표현됐는지 살펴보는 게 재미있더라. 그런 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 8월13일 제천영화제에서 열릴 쇼케이스 진행 상황을 공유해 달라.

정나현 방금 곡을 다 쓰고 왔다!

변동욱 나는 기존의 곡을 편곡했고 드럼, 베이스 기타, 바이올린, 첼로로 구성된 밴드와 실연 준비를 하고 있다.

최종호 기존의 한곡에 더해 새로 두곡을 막 썼다. 합주하면서 많이 바뀌겠지만 준비물은 다 갖췄다.

손한묵 다들 멋진 곡을 쓰겠지만 나는 이번에도 코믹쪽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게 제일 내 것 같다.

이명로 12분짜리 딱 한곡을 준비했다. 영화음악 중 10분 이상 되는 곡이 없으니까 나름 차별화되지 않을까. 직접 연주하는 대신 음악에 맞는 영상을 선보일 예정이다. 단순하게 여름이니까 공포영화의 영상을 골랐다.

나에게 영감을 준 음악들

이명로 작곡가의 추천 - 영화 <조커> O.S.T

조커의 이상한 내면을 드러내기 위해 대사 없이 긴 장면이 등장하지만 그때도 리드미컬한 음악은 영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특히 조커가 총을 쏘는 마지막 장면, 자신의 분노를 터트리는 장면의 음악이 굉장히 좋다. 음악에 귀 기울여보면 또 다르게 보이는 영화다.

손한묵 작곡가의 추천 - 《Expo1》

영화음악가 요한 요한손, 조니 그린우드, 그리고 막스 리히터, 올라퍼 아르날즈 등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곡을 모은 옴니버스 앨범이다. <조커>의 음악감독 힐두르 구드나도티르의 오랜 동료였던 요한 요한손의 음악을 찾다가 만난 앨범이다. 좋아하는 장르의 곡들이기도 하고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감성이 매력적이다.

변동욱 작곡가의 추천 - 영화 <라라랜드> O.S.T

재즈를 좋아해서 영화 <라라랜드>의 O.S.T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누가 들어도 음악이 어렵지 않으면서 동시에 아름답기 때문에 손에 꼽는 앨범이다. 이번 제천영화제에 <라라랜드>의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의 공연이 열린다고 해서 더 자주 듣고 있다.

최종호 작곡가의 추천 - 뮤지션 볼프팩의 <1612>

최근 펑크에 빠져 있다. 볼프팩의 유튜브 채널에서 알게 된 곡인데 완전히 매료됐다. 리듬감이 좋고 개성이 넘친다. 이들의 연주 장면이 담긴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연주 영상도 재미있다.

정나현 작곡가의 추천 - 영화 <듄> O.S.T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O.S.T

이미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나 좋은 곡은 웬만큼 다 나온 게 아닐까. 이 두 영화를 보면서 이제는 그저 음악적인 걸로만 승부를 보려 하면 안된다고 느꼈다. 악기가 아닌 소리를 어떻게 악기처럼 사용할 것인가? 같은 악기여도 소리를 어떻게 차별화해 쓸 것인가? 영화음악 속에 담긴 다양한 소리를 들으며 무궁무진한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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