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남송우 교수의 ‘한산: 용의 출현’, 사실과 허구 사이
2022-08-14
글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부산여해재단 이순신학교장·문학평론가.

<한산: 용의 출현>의 진정한 주인공은 한산대첩이 아니라 바로 이순신이어야 했다.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이 개봉 이후 놀라운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개봉 8일 만에 3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가속도를 감안한다면, <명량>을 넘어설 기세다. 그렇다면 <한산>은 정말 이름값을 하는 역작으로 영화사에 남을 것인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한산>에 찬물을 끼얹거나, 대중성이냐 작품성이냐를 따지는 케케묵은 논쟁을 벌이고자 함이 아니다. <한산> 시사회에서 필자는 이 영화가 단순히 이순신을 ‘다룬’, 이순신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데 실망했다. 영화가 정식 개봉을 한 다음날 다시 한번 상영관을 찾았지만 역시 다르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영화비평가와 대중에게 높은 평점을 받고 있는 이 영화가 이순신을 다룬 역사물임에도 이순신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쳤다. 실제로 대중은 9점 전후를 상회하는 높은 평점을 주면서도 정작 스토리에 대한 관심은 미약했다.

명장의 지략과 민초의 항쟁이 빛났던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사실과 허구 사이의 거리와 긴장에 대한 문제는 필연적이다. 이는 단지 <한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영화에서 역대 흥행 순위 20위에 드는 <명량> <광해, 왕이 된 남자> <왕의 남자> 등도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순 없었다. 그런데 <한산>이 다루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 사이의 간극은 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왜곡에 가까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 구체적 사항 중 하나가 한산대첩을 앞두고 전개되는 조일 수군 사이의 첩보전에서 드러난다. 항왜가 된 도모와 기생의 첩보 설정, 거북선의 설계도를 훔치게 한 일본 첩보인의 등장이 그것이다. 조일 수군이 한산대첩에서 벌이는 전략 대결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 요소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를 고조시킨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픽션적 요소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산대첩 직전 상황에서, 사료에는 흥미로운 첩보 전달자가 실제로 존재했고, 그는 다름 아닌 목동 김천손이었다. 왜적선 70여척이 거제 영동포에서 견내량으로 이동해 머물고 있다는 김천손의 결정적인 제보가 있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한산대첩을 소재로 하는 어떤 영화든 이 부분이 삭제된다면 역사적 사실관계에 심각한 훼손이 생긴다. 그만큼 한산대첩에서의 김천손의 존재와 역할은 영화에서 중요한 장치로 다루어졌어야 한다.

조일의 숨막히는 대결구도도 영화적 요소로는 흥미로울 수 있다. 또한 반상의 구별이 분명한 신분제 사회에서 전쟁을 치르는 실질적인 전투부대랄 수 있는 민초의 역할이 축소 혹은 배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조금이라도 다가가려는 노력을 했다면 임진왜란이 결코 소수 명장들의 지략전만은 아니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이순신은 계속되는 승첩 장계를 써올리면서도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전투에 공을 세운 이들을 어느 누구도 누락하지 않았으며, 또한 죽은 자와 남겨진 가솔을 위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불리한 전황 속에서도 조선 수군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의 이러한 통솔력과 그를 믿고 따른 이름 없는 백성들이 한마음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순신의 승전보를 통해 관아를 등졌던 지방 수령들이 돌아오고, 의병들이 모여들고, 세속을 떠나 있던 승려들까지 승병으로 조직되는 놀라운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한산대첩을 다룬 야심찬 기획인 <한산>은 어떤 극적 구성과 시나리오를 사용하든 민초와 더불어 치러낸 해전으로 한산대첩의 의미를 확대심화시켰어야 했다. 달리 말하면 임진왜란 중 이순신은 어떠한 정신 가치를 바탕으로 전쟁을 준비하고 싸웠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다면 한산도에서의 대승을 온전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순신의 놀라운 지략과 민초의 영웅적 항쟁은 그렇게 한몸이 되어 대승을 거둔 것이다.

사라진 시대정신과 인간애

전투 신을 다룬 영화의 특성상 스크린을 장식하는 화려한 전투 장면들이 영화의 흥행을 결정짓는 변수가 되기도 한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역사적 실존 인물인 이순신을 다루면서 그의 역동적인 내면과 그것들이 만들어낸 힘의 파장들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면 영화의 완성도에는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물론 그런 장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항왜한 왜군의 “이 전쟁의 의미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이순신은 한마디로 일축한다. “이 전쟁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이 아니고, 의와 불의의 전쟁이다.” 이순신은 우리의 산하를 짓밟고 백성을 유린한 왜를 무찌르는 그 중심에 의(義)를 둔 것이다. 관객은 이 장면에서 이순신의 강렬한 육성을 직접 듣는 듯한 착각이 들었을 것이다. 임진왜란에 임하는 이순신의 근본적인 태도를 가늠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순신이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자세로 전쟁을 치러낸 원동력이 오직 의(義)로움이 전부라고 한다면 이 또한 이순신의 전모를 제대로 파악했다고 할 수 없다. 이순신이란 인물을 매개로 영화를 만들든, 문학작품을 창작하든 창작자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은 삶을 추동해온 그의 정신적 가치를 제대로 형상화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인물에 대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픽션의 구성물 자체도 이순신의 삶의 태도와 근본정신의 경계선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다.

<한산>은 대중에게도 익숙한 학익진 전법을 구사한 한산대첩을 소재로 한 ‘영리한’ 영화다. 그만큼 대중에게 속 시원한 장면들을 선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과거 성공한 역사물의 흥행공식에서도 드러났듯이 당대를 아우르는 시대정신과 인간미가 영화 곳곳에 녹아들도록 하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평범한 전쟁영화로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아쉬웠던 점 하나를 더 논한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전사한 왜 수군들과 침몰한 전선의 잔해와 항왜한 왜군과 기생만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죽은 왜군 시체가 조류를 따라 흘러다니다가 한산섬 이곳저곳에 밀려들자 그 시체들을 수습해서 묻어주도록 하는 장면(실제로도 그랬다)이 엔딩을 장식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순신의 내면 깊이 뿌리내린 인간애가 관객에게 더 큰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영화 <한산>의 진정한 주인공은 한산대첩이 아니라 바로 이순신이어야 했다. 절제된 언어와 침묵으로 일관한 주연배우 박해일의 표정 연기만으로 이순신의 내면 가치를 표현하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다. 이순신의 리더십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부족했다. 다시 말하면 이순신이 평생을 다해 쌓아올린 사랑과 정성, 정의와 자립의 정신이 화려한 전쟁 장면에 묻혀버린 것이다. 이 점에서 <한산>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친 국민들을 위무해줄 수 있는 공감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했다. 의도 필요했지만, 절망 중에 있는 국민들의 가슴을 어루만져줄 참된 의의 뿌리인 사랑의 메시지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점은 여전히 아쉽다. 이순신이 다시 살아나서 이 영화를 본다면, ‘나의 삶과 역사가 이렇게도 왜곡될 수 있구나’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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