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로에 들어선 부부인 김춘나와 김종석은 각각 ‘작은새’와 ‘돼지씨’란 이름으로 개인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작은새는 서예와 그림을 다루고, 돼지씨는 시를 써낸다. 딸 김새봄은 전시회 준비 과정에 걸친 부모의 일상의 면면과 창작론을 다큐멘터리로 담는다. 영화는 딸의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부모의 모습으로 시작해 가장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가족의 초상을 추억하고 시, 그림, 사진, 영화 등 온갖 창작으로 재구성한다. 출산으로 젊은 날의 꿈을 잊고 오롯이 어머니가 된 어머니, 넘쳐나는 끼를 깊이 묻은 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묵묵히 일해온 아버지. 덕분에 장성한 딸은 고마움을 갚기라도 하려는 듯 부모의 지난날을 회고하며 전시회 준비 및 진행을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무엇보다 강력한 영화의 힘은 작은새와 돼지씨의 작품들이다. 예술과는 이렇다 할 접점이 없는 듯한 24시간 슈퍼 상인, 주부와 경비원이란 직업이 외려 일상의 솔직한 감상이나 가족을 향한 애틋한 감정을 더없이 예리하고 농밀하게 담아낸다. 전문 창작자 못지않은 작품을 만들어내면서도 프로 예술가란 칭호를 거부하는 부부의 겸허함 역시 예술에 관한 특권 의식을 멀끔히 지워내며 영화의 소탈함에 일조한다. 특히 낡은 편지지, 이면지 등 일상감이 가득 묻어나는 종이들에 휘갈겨쓴 돼지씨의 시가 화면에 연신 적히면서 삶과 유리되지 않은 창작의 가치를 찬찬히 피워낸다. 그러면서 부모의 깊은 속마음을 고스란히 꺼내려는 작품 전반의 의도와도 조응한다. 다만 수수한 예술가 부부의 모습에 비해 지나치게 잘 정돈된 다큐멘터리의 극적 연출, 진중한 톤 앤드 매너가 진솔한 일상으로의 몰입을 종종 방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