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증명사진 같기도 하고, 말하는 초상화 같기도 하다. 검은 스크린을 배경으로 화면에 바스트 숏으로 잡힌 한 여성이 정면을 바라보며 자기 이야기를 한다. 그다음 등장하는 여성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2년간 50개국을 돌며 2천 명 이상의 여성을 인터뷰한 실험적 다큐멘터리 <우먼>의 규칙이자 전부이다. <우먼>은 사진작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의 <휴먼> 다음 프로젝트다. 그는 <휴먼>에서 먼저 이같은 촬영 방식을 시도했고, 이 작품의 조감독이었던 아나스타샤 미코바가 <우먼>에서는 공동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여성과 여성인 자신에 대해 말하는 목소리를 최대한 많이 한데 모으고자 한 영화는 릴레이 인터뷰로 속을 채우는 방식을 택해 목적을 달성한다. 출연자가 바뀌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주제별로 인터뷰 시퀀스를 배치하고, 그러면서도 밀착되지 않은 주제를 앞뒤로 놓아 편안하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냈다. 초경 경험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로, 커리어에서 섹스로 이리저리 튀며 이어지는 이야기가 흔한 대화 모습과 닮아 출연자와 관객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좁힌다. 인종, 나이, 장애는 물론이거니와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의상 하나까지 전부 다른 여성과 108분간 일일이 눈을 맞추는 일은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여성 말고도 이 지구에 얼마나 많은 각양각색의 여성이 실재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있는 그대로의 몸의 중요성을 힘주어 강조하고, 관객에게 숨 돌릴 여유를 주기 위해 여성의 전신을 비장하게 담은 장면을 인터미션처럼 활용하는 전략도 효과적이다. 다만 넓이에만 골몰하다 보니 수집한 내용을 토대로 논의를 확장하려는 시도가 없어 깊이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