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의 SF를 좋아해]
[이경희의 오늘은 SF] 언어의 문제
2022-09-01
글 : 이경희 (SF 작가)

얼마 전 극장에서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여러모로 이상하고 독특한 사랑 이야기여서 좋았는데, 한편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이 이야기가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주연배우 중 한명이 한국어 사용자가 아닌 탓에, 이 영화의 대사는 꽤 자주 외국어의 직역투를 띤다. 한쪽은 서툴러서, 다른 한쪽은 상대방을 배려하느라.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을 매개하는 스마트폰 번역 앱의 한계로 인해. 그들이 서로에게 전하는 감정은 본래의 형태 그대로가 아니라, 삐뚤빼뚤하고 조잡하게 열화된 초급 한국어와 중국어의 좁은 틈을 통과하며 파쇄된 일부만 겨우 전달될 뿐이다. 어쩌면 그 불완전함이 그들의 관계를 더 독특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는 애처로움. 혹은 서로가 동류이며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이 둘 사이를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

아무래도 작가는 언어로 밥을 먹고사는 직업이다보니 언어를 흥미롭게 다루는 이야기들도 많이 탄생하는 것 같다. 이누이트어에는 눈을 표현하는 단어가 백 가지가 넘는다거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복잡미묘한 감정상태를 표현하는 단어가 독일어 사전에 존재한다거나 하는 과장된 속설만큼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언어는 이용자의 사고방식을 제한하게 마련이고, 서로 다른 언어가 충돌하는 이야기는 항상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이영도의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는 언어의 충돌을 중심 소재로 다루는 소설이다. 이 이야기에서 인류는 ‘범은하 문화 교류 촉진 위원회’라는 외계 단체를 통해 또 다른 외계 종족과 통신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대화 상대방이었던 종족은 일종의 페로몬 같은 화학물질을 내뿜어 대화를 나누는 종족이었고, 지구에 도착한 그들의 ‘언어’는 지표면에서 모종의 화학반응을 일으켜 샌앤드레이어스 단층에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다. 제목이자 스토리의 핵심인 ‘카이와판돔’이라는 단어를 번역하는 데 난항을 겪는 이유도 상대 종족과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와 생활양식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외계 언어를 소재로 하는 작품 중에 빼어나기로 손꼽히는 소설로는 아마 다들 입을 모아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언급하리라 생각한다. 이 이야기 속 주인공 역시 갑작스레 지구를 방문한 외계 종족과 소통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연구한다. 그러던 중 이들이 시간을 인식하는 관념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외계의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시공간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언어의 습득은 문명의 습득이자 세계관의 습득이라는 통속적인 주제를 우주적 스케일로 멋지게 확장했는데, 이 과정을 경험하는 주인공의 담담한 어조와 영어권 특유의 시제 표현이 적절히 어우러져 매 순간 독자를 낯설게 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한국어로는 그 맛을 100% 즐기기가 어렵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컨택트>라는 영화로 각색되기도 했다. 드니 빌뇌브가 연출한 영화 버전은 물론 빼어난 영상미와 연출을 자랑하지만, 영상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원작의 수많은 장점들이 잘려나가기도 했다. 솔직히 소설에 비해 좀 평범한 이야기가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버전의 바뀐 결말이 좀 별로였는데, 이건 어쩔 수 없는 상업적 타협이려니 싶다. 넓게 보면 이 또한 소설이라는 언어와 영화라는 언어의 세계관 차이가 아닐지. 조금 고전소설이지만 새뮤얼 딜레이니의 <바벨-17> 이야기도 꼭 한번 해보고 싶다. SF 계보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은 ‘바벨-17’이라는 비밀 암호를 추적하는 주인공 ‘리드라 웡’의 모험담을 다룬다. 스포일러를 최소화하며 설명하자면 ‘바벨-17’은 일종의 인공 언어다. 이 언어에는 주어가 없다. 더 정확히는 ‘나’와 ‘너’라는 개념이 삭제되어 있다. ‘나’도 ‘너’도 없는 간결한 형식의 언어. 이 언어를 모국어로 익힌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질까. 대체 누가,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이런 언어를 퍼뜨리고 있을까.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를 빼고 이야기하기가 정말 어려운데, 어쨌든 우리의 현실에는 ’바벨-17’과 유사한 형식을 가진 언어가 실제로 존재한다. 그 언어는 컴퓨터 속에서만 사용되고, 대개는 명령어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말이다. 자아가 삭제된 채 명령을 수행할 뿐인 기계의 언어. 바벨-17을 사용하는 인물 ‘붓처’에게 ‘나 I’와 ‘너 You’의 개념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리드라. 둘의 대화 장면은 내가 아는 SF 작품을 통틀어 손꼽아 애정하는 장면 중 하나다. 마침내. 너의 언어를 배운 나는 내가 나임을 알고, 너와 함께하기를 바라지만. 겨우 그걸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리야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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