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영화 복원에 대한 부지영, 박지완, 신수원 감독의 대담: “복원은 역사를 소환해서 다시 쓰는 일”
2022-09-01
글 : 김수영
사진 : 오계옥
정리 : 윤현영 (자유기고가)

“오랜 시간을 들여 우여곡절 끝에 첫 영화를 만들고 그 과정 속에 추억도 기억도 남았지만 정작 결과물이 남지 않았다.” 부지영 감독이 직접 데뷔작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복원에 나선 이유다. 영화는 감독의 것인 양 홍보되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제작사를 운영하거나 계약서에 분명하게 저작 관계를 명시하지 않으면 저작권은 감독의 손을 떠나 제작사나 배급사에 넘겨지고 팔리고 대물림된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손쓸 수 없어진 저작권 탓에 많은 영화가 상영, 복원될 기회를 잃고 관객도 그 영화를 영영 잃는다.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이하 여성영화제)에서 복원작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상영하는 부지영 감독, 개막식에서 상영될 강수연 추모 영상을 제작한 박지완 감독과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을 기리는 ‘박남옥상’을 수상한 신수원 감독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복원 경험을 나누었다.

부지영, 박지완, 신수원(왼쪽부터).
| 부지영 감독 |

<카트>(2014),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2008) 등

| 박지완 감독 |

<내가 죽던 날>(2020)

| 신수원 감독 |

<오마주>(2021), <젊은이의 양지>(2019), <유리정원>(2017) 등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복원 경위부터 이야기해보자.

부지영 2006년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제작 지원을 받으려면 개인이 아니라 제작사로 지원해야 했다.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급하게 제작사를 구했다. 제작 지원금과 제작사 펀딩을 통해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완성했는데 영화의 저작권은 제작사에 귀속됐다. 10년이 흐른 2017년, 한국퀴어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제작사 대표님에게 허락을 구했다. 알아보니 소재는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상자료원)에 남은 필름이 유일했고 해외배급을 위한 파일은 제대로 색이 재현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때 상영을 하면서 내 영화를 제대로 볼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대표님에게 저작권을 정리하자고 얘기하자 제작사 대표님이 저작권을 사가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저작권이 나에게 넘어오면서 리마스터링이 시작됐다.

제작사의 저작권 귀속은 계약서상에 명시된 것이었나.

부지영 제작사와 감독이 각각 영화에 공헌하지만 분명히 명시하지 않으면 저작권은 자연스럽게 제작사로 넘어간다. 내가 실수한 부분은 영화 필름 크레딧 공동 제작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 거다. 나도 공동 제작자인 셈인데 제작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감독으로만 명시해서 나중에 상영이든 복원이든 하려면 크레딧부터 바꿔야 했다.

신수원 감독이 계약할 때 저작권까지 넘기는 건 경우마다 다르지만 제작사가 투자받으면서 그 저작권을 또 배급사에 넘기기도 한다. 그러면 내가 창작자라고 해도 권한이 애매해진다. 나 역시 독립 제작사를 차려 제작을 겸하기 전까지 비슷한 과제가 있었다.

박지완 내 첫 영화 <내가 죽던 날>의 제작사는 워너브러더스 미국 스튜디오라 정말 그냥 싹 넘겨야 했다. 그런데 지금 워너브러더스코리아가 없어졌다. 게다가 워너브러더스 미국 스튜디오도 OTT로 넘어가면서 영화 담당팀이 거의 줄어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내가 죽던 날>의 일본 개봉을 준비할 때 한 일본 제작자가 영화 관련 책을 내보자고 했다. 나한테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제작사측에 문의했지만 미국 본사에서는 관심 없는 일이었다. 우리한테 수익이 얼마나 되냐, 영화 담당자가 없다 등등의 이야기만 오가다 결국 개봉에 맞춰 책을 낼 수 없어 엎어졌다. 나 역시 내 영화로 뭔가 하려면 지난한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강수연 배우의 추모 영상을 제작할 때도 저작권 문제로 복잡했을 텐데.

박지완 강수연 배우의 출연작 저작권자를 확인해 일일이 전화해야 했다. 저작권자가 너무나 다양했다. 제작자가 돌아가셔서 미국에 사는 아들에게 저작권이 넘어간 경우도 있었다. 연락할 방법이 없어 A4 한장 분량의 메일을 보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같은 경우 삼성의 투자를 받아 저작권이 삼성전자에 있다. 삼성은 콘텐츠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비용을 받고 프린트를 상영하는 것 말고는 어떤 활용도 할 수 없다는 기조였다. 영상자료원에 등록되어 있는 저작권자 리스트를 통해서 연락처를 알 수 있는 경우가 절반밖에 되지 않아 긴 추적이 필요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내 영화가 어디선가 상영되고는 있다는데

신수원 감독도 <오마주>에 담은 홍은원 감독의 영화 <여판사>를 어렵게 찾지 않았나.

신수원 2011년 <여자만세> 다큐멘터리를 통해 1950~60년대 여성감독을 소개했다. 그때 박남옥 감독은 <미망인>이 있었지만 홍은원 감독은 관련된 누구도 없었고 어떤 영화 프린트도 없었다. 추적하다보니 당시 필름을 모자 챙으로 만들어 쓰거나 녹여서 레코드판으로 썼다는 얘길 들었다. <여자만세>에 대한뉴스에서 모자 챙 두르는 장면을 구해서 넣었지만 그분들의 영화를 볼 수 없는 게 너무 답답했다. 그러다 2015년 한 영화업자가 개인 소장 필름을 영상자료원에 기증했는데 그 필름 더미에서 <여판사>를 찾았다. 3분의 1이 소실된 상태였고 <오마주>는 거기에서부터 시작한 영화다.

<여판사>
영화 <오마주>에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를 활용할 때 저작권 이슈는 없었나.

신수원 <여판사>는 저작권 유효기간이 60년이 지나 영화에 활용할 때 문제는 없었다. 정인엽 감독의 <애마부인>을 활용할 때는 감독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감독님이 <오마주>의 취지를 듣고 너무 좋다며 쓰라고 하셨다. 내가 찍었지만 저작권은 제작사에 있을 거라고 하셔서(웃음) 수소문을 통해 당시 제작자의 아드님을 찾았다. 그분이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쓸 수 있었다.

박지완 강수연 배우의 작품 중에서 박광수 감독님의 <베를린 리포트>는 저작권자도 영화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컸다. 전화 드렸을 때 너무 반가워하셨다. <그대 안의 블루>도 고맙다는 얘기를 들었다. 반면 판권과 저작권을 제작자가 진작에 양도했거나 회사가 도산해서 저작권이 떠돌고 있는 경우도 있다. DVD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 말고는 아무도 영화를 볼 수 없는 거다. 그래서 부지영 감독님의 복원은 정말 잘된 일이다.

부지영 감독은 단편영화들의 저작권도 직접 확인했다고.

부지영 배급사가 있으니 내 영화가 어딘가에서 상영은 되고 있는데 정작 나는 그 상황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배우나 스탭을 만나면 예전에 이랬지 그랬지 얘기는 하는데,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냐고 물으면 해줄 말이 없었다. 단편영화 <니마>나 <산정호수의 맛>도 떠올랐고 이 영화들도 나름의 자리를 마련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지완 여성영화제의 지원으로 2009년 류혜영 배우와 단편 <곰이 나에게>를 촬영했다. 류혜영 배우가 유명해지면서 <곰이 나에게>가 자주 소환됐고 여성영화 전문 OTT 퍼플레이에서 상영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영화의 저작권은 여성영화제와 인디스토리가 반반씩 가지고 있어서 그 사실을 몰랐다. 나한테 통보할 의무는 없으니까. 그럼 내 영화를 자주 검색해봐야 하는 건가. (웃음) 나의 졸업영화도 영진위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어서 실제로 내가 권리를 갖고 있는 내 영화는 하나도 없다. 사실 영화의 질감이나 색상에 신경 쓰는 사람은 감독밖에 없을 텐데 정작 영화가 나에게 없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늦게 도착한 편지를 열어보듯

이번 여성영화제에서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리마스터링 버전을 상영한다.

부지영 지난해 여성영화제가 정재은 감독님의 <고양이를 부탁해> 복원 작업을 추진했는데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복원은 저작권자의 허락도 필요하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편차가 크지만 아주 옛날 영화는 억대의 돈이 든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좋아하는 작품이라는 <하녀>의 경우 세계영화재단에서 1억원 넘게 지원해 영상자료원과 복원하지 않았나. 여성영화제가 매년 공격적으로 복원 작업을 하기는 쉽지 않다. 올해는 내가 복원하고 있다고 영화제측에 알리고 상영을 제안했다.

데뷔작으로 관객을 다시 만나는 자리다. 개인적으로도 뜻깊겠다.

부지영 복원을 통해 기술적으로 무언가 성취한 것보다 그게 훨씬 중요한 일이다. 14년 전에 내가 시도했던 것들을 지금의 관객이 어떻게 봐줄지, 어떤 피드백을 받을지 궁금하다. 당연히 어떤 부분은 굉장히 촌스럽고 상투적일 거다.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지금 관객이 읽어주지 않을까 싶어 기대도 된다.

영화 복원을 통해 관객과의 만남의 기회를 복원한 셈이다.

신수원 이번에 <오마주> 관객과의 대화(GV)를 할 때 관객이 뒤늦게 OTT를 통해 <레인보우>를 찾아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10년 만에 사람들이 내 영화를 다시 보고 얘기하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레인보우>가 함께 상영됐다. 사람들이 <오마주>를 <레인보우>의 연장선에서 보고 이야기해줘서 기뻤다. 그때의 영화를 지금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지영 공감한다. 장편 두편, 단편 세편. 나도 이제까지 많은 영화를 만든 건 아니지만 나름 내 안에서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바깥에서는 아무도 내 영화를 하나의 세계로 읽어주지 않았던 거지. 아예 볼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이 퍼즐을 맞춰보고 싶다는 욕망이 오랫동안 내 안에 있었다.

신수원 <오마주>의 제작 지원을 심사하는 자리에서 한 면접관이 <여판사>를 영화에 실제로 쓸 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오마주>를 통해 홍은원 감독의 영화가 다시 소환되겠다고 좋아하셨다. 그때는 긴장된 자리여서 말없이 넘어갔지만 그 얘기가 두고두고 생각났다. 영화에 담은 <여판사>는 영상자료원에서 영상 파일을 틀어 촬영한 거다. 오래된 16mm 필름의 손상된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뭉클했다. 홍은원 감독님의 영혼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복원이라는 건 영화를, 그 영화인을 다시 살려내는 일이다.

부지영 역사를 소환해서 다시 쓰는 일이다.

신수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오마주>와 함께 <여판사>도 상영했다. 관객이 그 영화의 어떤 장면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는데 그런 풍경이 참 신기하게 다가왔다.

박지완 영화를 살아 있게 만드는 데는 많은 사람들의 공이 필요하다. 제작자가 저작권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고 감독이 영화를 살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배우 역시 관객에게 이런 내 영화가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공효진, 신민아 배우도 배우로서 좋은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관객과 이 영화로 만날 수 있는 거다. 강수연 배우의 작품 중에는 함께한 배우들의 불명예스러운 일 때문에 관객 앞에 건네기 어려운 작품도 있었다. 복원에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복원 이슈의 중요성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누구의 어떤 영화를 복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

박지완 사람들의 관심도가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 이번에 강수연 추모 영상을 제작할 때 관객이 이제까지 보지 못한 얼굴을 담으려고 영화를 많이 찾았다. 사실 80년대, 90년대 영화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 대상화되어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강수연 배우가 가진 고유의 에너지가 영화를 뚫고 나와 그 배우를 기억하게 만든다. 이렇게 대단한 배우를 이제야 다시 보는 게 너무 늦게 도착한 편지를 열어보는 기분이다. 이 추모 영상을 보는 관객도 강수연 배우의 더 많은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고 나 역시 그렇다. 특히 배우의 90년대 초반의 필모그래피가 너무 비어 있다. 이 부분이 어서 메워졌으면 좋겠다.

신수원 홍은원 감독의 나머지 두 작품을 누군가가 갖고 있다면 기증 좀 해달라. (웃음) 홍은원 감독은 조수, 스크립터부터 10년 넘게 현장 일을 하면서 여성이 심하게 차별받던 시절을 견뎌냈다. 에세이에서도 묻어나듯이 영화에서 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세계가 있을 텐데 여전히 미궁으로 남아 있다. 그 무렵의 최은희, 황혜미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부지영 복원 사업은 영상자료원에만 맡겨져 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재원은 없고 진행도 빨리 되지 않는 어려운 상황이다. 세계영화재단처럼 문화적인 자산을 발굴하는 재단도 필요하다. 그나마 서울독립영화제가 영상자료원과 한국 독립영화 복원 사업을 하면서 좋은 영화들이 복원됐다. 이런 사업을 지속하며 리스트를 늘려나가야 하고 한국영화의 시작부터 함께 있었던 여성 영화인들도 복원이 필요하다. 올해 여성영화제에서 내 영화보다 강수연 배우의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볼 수 있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최은희, 황혜미 등등 보고 싶은 이름들이 계속 호명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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