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정직한 후보2’ 배우 서현우, 박진주, “웃음 설계자들”
2022-09-07
글 : 이자연
사진 : 최성열

‘거짓말을 못하게 되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정직한 후보>가 이 질문에 대한 직관적 상상을 관객에게 제시했다면 <정직한 후보2>는 전작보다 확장된 레이어를 한겹 더 두르며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질주한다. 그리고 그 속도의 균형을 맞춰나가는 인물, 조태주와 봉만순이 새롭게 등장한다. <남산의 부장들>(2019), <유체이탈자>(2020), <모럴센스>(2022), <헤어질 결심>(2022) 등을 통해 안정적이고 강렬한 연기를 펼친 서현우는 얍삽하고 잔꾀에 능한 건설교통과 국장 조태주를 그려냈다. 영화 <써니>(2011), 드라마 <질투의 화신>(2016), <사이코지만 괜찮아>(2020), <그해 우리는>(2021) 등에서 통통 튀는 감각으로 현실 속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 박진주는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시누이 봉만순이 되었다. 시리즈가 잘 안착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리에 어떤 인물이 필요할까. 빼기와 절제의 기술을 유려하게 장착한 두 배우를 통해 그 답을 들어볼 수 있었다.

<정직한 후보2>에 새롭게 합류했다.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된 과정은.

서현우 2020년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하고 몇주 뒤 <정직한 후보>가 개봉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내가 맡은 전두혁은 이미지가 무척 강하고 거친 인물이었다. 배우로서 지평을 넓히고 싶다고 느낄 즈음 <정직한 후보>를 보았는데, 코미디라는 장르에 언젠가 도전해보고 싶을 만큼 상반된 분위기가 재미있었다. 그런데 너무 감사하게도 장유정 감독님이 <정직한 후보2> 시나리오를 보내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척 설렜다. 하지만 막상 시나리오를 보고 나니 조태주가 어렵게만 보였다. 이미 안정적으로 안착한 영화에 새롭게 등장한 인물의 톤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걱정됐다. 나의 과한 욕심이 작품을 망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원년 멤버 사이에 자연스럽게 흡수될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코미디영화라고 마냥 놀러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순 없었다.

박진주 어릴 적 뮤지컬 배우를 꿈꾸면서 <김종욱 찾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 작품을 만든 장유정 감독님은 내겐 오래전부터 연예인 같았다. 처음 감독님의 제안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간 이유기도 하다. 다만 이미 탄탄하게 다져진 땅에 혹여 민폐가 되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때 장유정 감독님이 자신만 믿으라고 하시더라. 그 말이 용기를 내는 데 발판이 됐다.

명민하고 눈치 빠른 조태주와 엉뚱하고 철없는 봉만순 캐릭터를 어떻게 연구했나.

서현우 고민이 너무 커서 장유정 감독님과 여러 번 만나 조태주의 전사를 함께 정리했다. 조태주는 강원도청 건설교통과 국장이다. ‘도청밥만 18년 먹었다’고 으스댄 대사처럼 여러 도지사와 함께해온 이력이 있다. 희철(김무열)이 경계할 만큼 주상숙(라미란)의 개인 비서처럼 구는 행동은 그의 비교적 빠른 승진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사실 초반에 조태주가 주상숙을 따라 계속 현장에 나가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국장 정도면 실무자를 내보내지 자신이 나가지 않으니까. 하지만 조태주라면 충분히 그럴 것 같았다. (웃음)

박진주 처음에 ‘포니’(봉만순의 영어 이름)를 보며 좀 헷갈렸다. 포니는 똑똑한 아이일까, 아닐까. 오히려 똑똑한 사람들은 티 안 나게 눈치 없는 척하지 않나. 그런데 포니는 정말 순수하게 둔한 것 같았다. 미운 시누이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그런 공식을 따르기보다 나만의 방식을 가미하고 싶었다. 하와이에서 3년 살았다는 포니의 배경에 따라 독특한 억양의 영어를 섞었더니 감독님이 좋아해주셨다. 톡톡 튀는 포인트로 인물을 입체적으로 살리려 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두 배우 모두 장유정 감독에게 크게 의지한 것 같다. 함께 호흡을 맞춘 과정은 어땠나.

박진주 장유정 감독님은 배우들을 자식 같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럼 그 눈빛에 호응하고 싶어서 못하던 것도 더 하게 된다. 컨디션에 따라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러면 감독님은 될 때까지 기회를 주면서 인내하신다. 기다리는 일이야말로 상대방을 향한 애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현우 배우를 움직이게 만드는 연출자다. 코미디영화라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텐션으로 해내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장유정 감독님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체계적이고 면밀하게 설계를 한다. 그래서 인물 구축도 뚜렷하고, 배우의 역량을 바로 알아차린다.

조태주는 듣기 좋은 달콤한 말로 주상숙에게 아첨하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회유한다. 이 과정에서 자칫하면 영화의 주요 소재가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닌, 정치 풍자로만 기울여 보일 수 있다.

서현우 그런 부분을 우려하기도 했다. 오직 사회 비판과 정치 풍자로만 비치면 영화가 180도 달라진다. 그럴 때면 조태주가 느끼는 감정과 상황, 욕망에 더 집중하려 했다. 권력형 비리를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풀어내면 그 사건만 파고들 것 같아서 사건은 담백한 형식으로 드러내고, 인물의 순수한 열망을 더 보여주려 했다. 그렇게 조태주를 실재하는 사람처럼 구체화하다 보니 시나리오에 없던 신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이런 자리엔 당연히 조태주가 따라 나오지 않았을까?” 하면서 여기저기 촬영장에 불려나갔다.

왜곡 없이 웃기기 위해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서현우 누군가를 재미있게 하고 웃기게 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촬영 전부터 아주 세밀하고 정교한 설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과하게 행동하고 욕심을 부리면 관객에게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 <정직한 후보2>를 거치면서 코미디는 상대 배우와의 교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표한 웃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료 배우와 최선의 합이 나올 수 있는 앙상블이 필요하다. 그걸 조금이라도 어기는 순간 파트너는 ‘왜 갑자기 선을 넘지?’ 하고 바로 알아차린다. 다른 작업보다 코미디가 2~3배 어렵다.

박진주 난 13배 어려웠다. (웃음) 그동안 재미있는 감초 역할을 많이 맡았지만 코미디 장르를 제대로 직면한 건 처음이라 초반엔 몸과 마음에 힘을 잔뜩 주고 갔다. 그런데 선배님들이 코믹 연기에 굉장히 진지하게 임하는 걸 보면서 무척 놀랐다. 끊임없이 분석하고 준비하면서 누군가 오해하지 않도록 강약 조절이 중요하단 걸 깨달았다. 그제야 힘을 조금씩 빼기 시작했다.

배우 박진주에게 노래는 떼려야 뗄 수 없다. 포니가 우쿨렐레를 튕기며 노래 부르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현재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WSG’ 워너비로도 활동 중이다.

박진주 우쿨렐레 노래 신은 감독님이 포니를 위해 준비한 장면이다. 감독님은 요즘 말로 ‘킹 받게’ 하는 포인트를 잘 아신다. 근데 그게 또 포니와 잘 맞다.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놀면 뭐하니?>에 출연하게 된 데에도 노래라는 소재가 가장 큰 이유로 작동했다. 사실 이전에는 예능 출연을 많이 고사했다. 실제 성격을 전부 드러내버리면 연기할 때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할 것 같아서 스스로 벽을 높게 세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에게 나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생겨났다. 내 안에 나를 너무 가두고 싶지 않았다.

촬영 현장도 코믹 장르로부터 영향을 받았을지 궁금하다. 기억나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면.

서현우 조태주는 국장급이라 집 앞 주민센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래서 여러 부처의 고위 공무원이 인터뷰한 영상을 돌려보면서 말투, 손짓, 표정, 태도, 스타일링까지 세심하게 눈여겨봤다. 나중엔 현장에 구경 온 사람들이 실제 공무원과 혼동하기 시작하더라. 나에게 와서 “여기 뭐 하는 거예요?” 묻기에 “영화 촬영하나봐요. 저기 라미란씨 왔네” 하고 답했다. (웃음)

예고편이 나가고 댓글로 가장 많이 보인 반응이 ‘크게 생각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영화’라는 말이었다. 영화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묘한 칭찬으로 들린다.

서현우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회 분위기가 많이 경직됐다. 그럴수록 <정직한 후보2> 같은 작품이 더 필요하다. 영화를 보며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영화 안에 문제의식이 없다는 게 아니라 유속에 몸을 맡기고 여유롭게 헤엄치는 것처럼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생각은 우리가 대신 다 했으니 마음 편히 보셨으면 좋겠다.

박진주 특히 요즘은 SNS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쉽게 느낀다. 나만 빼고 모두 잘 사는 것 같고, 나만 뒤처지는 것만 같은 불안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그럴 때 편히 볼 수 있는 영화 한편 있으면 ‘우리는 네 친구야, 언제든지 와’ 하는 느낌의 위안을 얻는다. 실제로 친구랑 있으면 크게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웃으니까.

두 배우 모두 다양한 작품을 통해 매력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주연보다 더 돋보이는 조연 캐릭터도 많았는데, 신스틸러로서의 철칙이 있다면.

박진주 중요한 장면에서 더 힘을 빼거나 소리를 조그맣게 내면 냈지 괜히 과장되게 보이려 하지 않으려 한다. 그 장면에 존재할 법한 인물로 있어야 주인공도 빛나고 상황도 현실적으로 보인다. 괜한 욕심을 부리면 시청자들이 바로 알아챈다.

서현우 그래서 나는 신스틸러란 어떤 장면을 자기의 것으로 빼앗는 사람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적당히 머무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신스틸러가 아니라 신보탬러에 가깝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이 한 장면을 찍으러 이렇게 오랜 시간 대기했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의상이든 표정이든 괜히 오버스럽게 보여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마음을 잘 내려놓는 태도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진실의 주둥이가 된다면 어떨까.

서현우 마냥 통쾌하고 후련할 것 같지 않다. 모든 진실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선의의 거짓말이야말로 윤활유가 될 때가 있다.

박진주 오직 딱 하나, 사랑 고백 많이 하고 다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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