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68혁명. 시위의 나날들
고다르는 2월에 누벨바그 동료들과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수장 앙리 랑글루아의 사임을 종용한 것에 대한 거리 시위를 벌인다. 칸영화제 참석 이후에도 파업 노동자, 학생들과 함께 거리에서 시위를 이어갔다. 같은 해, 장피에르 고랭과 지가 베르토프 그룹을 만들었는데 이들은 새로운 형태의 정치영화를 지향하며 픽션 바깥으로 탈주해나갔다.
1969년
<대영제국의 소리> <즐거운 지식> <이탈리아에서의 투쟁들> 등
방송국과 협업하지만 연이은 상영 거부를 당한 장뤽 고다르. 러시아의 체코 침공에 관한 가상의 토론을 담은 다큐멘터리 <프라우다>를 위해 지가 베르토프 그룹과 프라하 여행.
1970년
<승리가 될 때까지> <동풍>
레바논에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영화 촬영. <승리가 될 때까지> <동풍>, <블라디미르와 로사>(1971) 등 장뤽 고다르의 영화가 정치적으로 가장 급진적인 경향을 보이던 시기로 연이은 상영금지 처분으로 뒤늦게 공개된 작품들이 많다.
1972년
<만사형통>, 중편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
지가 베르토프 그룹의 운동을 주류 무대로 가져오려는 시도. <만사형통>의 주인공이었던 제인 폰다의 베트남 방문 사진을 보고 고다르와 장피에르 고랭이 편지를 쓴다.
1973년
프랑수아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을 향해 날 선 비판, 트뤼포와 돌아서다
두 사람은 1984년 트뤼포가 뇌종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화해하지 않았다.
1976년
<여기 그리고 그 밖에>
팔레스타인 민중 봉기를 비추며 영화의 인공성을 질문한 에세이 필름.
1979년
스위스 롤레로 이사
고다르는 파리 외곽에 사무실과 작업실을 두고 양국을 오간다. 훗날 고다르는 롤레에서 은둔생활을 자처하며 생을 마감했다.
1980년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인생>으로 정치적 비디오 작업에 열올렸던 1970년대를 뒤로하고 메인 스트림으로 복귀한 고다르. 묵묵한 영화 만들기의 시간을 이어간다.
1983년
<카르멘이라는 이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1985년
<탐정>
트뤼포를 잃은 장피에르 레오, 누아르로 돌아간 장뤽 고다르의 만남.
1987년
<리어왕>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뒤섞은 콜라주.
1988년
<영화의 역사(들)>
총 4부, 8개 챕터로 나뉜 영화는 1988년 시작해 1998년 완성되었다. 2004년 파리 퐁피두센터의 제안으로 <영화의 역사(들)에서 선택된 순간들>로 재탄생한다.
1990년
<누벨바그>
알랭 들롱 주연의 <누벨바그>는 <네 멋대로 해라>로 시작된 누벨바그의 작업을 고다르 스스로 정리하는 듯한 작품이다. 죽음을 맞이한 방랑자 알랭 들롱은 이 영화에서 다시 부활해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씨네21>은 1374호부터 3주간 장뤽 고다르 감독을 추모하는 연속 기획 기사를 마련했습니다. ‘연표로 보는 고다르의 생애’ 역시 1376호까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