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부산국제영화제]
#BIFF 1호 [인터뷰] 박도신 월드 프로그래머, “영화와 관객의 만남을 새롭게 도모한다”
2022-10-06
글 : 조현나
사진 : 최성열
부산국제영화제 박도신 월드 프로그래머 인터뷰

박도신 월드 프로그래머는 3년 만의 정상 개최를 밝힌 올해 영화제를 두고 여러모로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팬데믹 이전과 같이 영화제의 각종 부대 행사들을 재개하고 2년 동안 폐지했던 미드나잇 패션 섹션을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신작을 소개하는 ‘<아바타: 물의 길>의 모든 것‘ 기획전도 새롭게 도전하는 프로그램이다. 영화인과 관객, 그리고 영화가 모이는 만남의 장을 더욱 다채롭게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박도신 프로그래머에게 대화를 청했다.

-3년 만의 정상 개최를 알렸다. 개·폐막식을 포함한 행사들도 원래대로 진행하고 극장 좌석도 100% 오픈하는 터라 영화제의 풍경이 예년과 확연히 달라지겠다.

=작년에는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방역 정책이 계속 바뀌어서 변동 사항이 많았다. 올해는 그런 일들이 없어 상대적으로 준비하기 수월했다. 가장 의미 있는 건 감독, 배우, 스태프 등의 게스트들과 관객이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다시 마련된다는 점이다. 해외 게스트들도 그 순간을 굉장히 고대하고 있다.

-영미권의 주요 게스트들은 누가 있나?

-먼저 <라이스보이 슬립스>의 앤소니 심 감독이 있다. 캐나다 교포로서 배우이자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교포 출신의 감독들이 많다는 것을 상기시킬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밖에 <무루>를 연출한 테아레파 카히 감독이 있다. <무루>는 마오리족과 뉴질랜드 백인들의 갈등을 그린 작품인데 독특하게도 액션이 가미되어 있다. <말 없는 소녀>의 콤 베어리드 감독도 GV(관객과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다. <말 없는 소녀>는 여러 영화제에서 ‘올해 최고의 아일랜드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소녀가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다른 가정에 맡겨졌다가, 그들과 정이 들 때 즈음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인데 정말 슬프다. 한국 관객들의 정서와도 잘 맞을 거로 생각하고 콤 베어리드 감독은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해서 주목해야 할 감독이다.

-올해 부산에서 상영되는 영미권 영화의 경향은 어떤가.

=지난 4~5년 동안 여성 감독들이 부쩍 늘었다. 다들 어디 숨어있었나 싶을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젊은 감독들이 많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나이대도 다양하고 작품의 주제도 신선하다. 몇 년 후에는 이 신인 여성 감독들이 영미권 영화계의 판도를 바꿔놓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해본다.

-아이콘 섹션의 경우 제임스 그레이, 노아 바움백 감독 등의 신작이 눈에 띈다.

=<아마겟돈 타임>은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처음으로 자신의 자전적인 스토리를 영화화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굉장히 진솔하게 이야기를 건네기 때문에 관객들이 여러모로 공감하며 볼 것 같다. <화이트 노이즈>는 노아 바움백 감독이 아담 드라이버와 네 번째로 함께 한 영화다. 영화를 보면 두 사람이 왜 오랜 시간 계속해서 호흡을 맞추는지 알게 될 거다.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미래의 범죄들>은 크로넨버그 스타일의 종합편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만큼 독특하고 범상치 않다. <미래의 범죄들>은 이번에 야외극장에서 상영하기로 했다. 우리로서도 엄청난 모험이라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본 건 마틴 맥도나 감독의 <이니셰린의 밴시>다. 영화는 아일랜드의 한 시골 섬에 거주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자기 인생의 뭔가를 남길 목적으로 한 남자가 작곡을 시작하고 그 뒤로 친구와 거리를 두는데, 친구는 여전히 주변을 맴돈다. 자꾸 이러면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해도 귀담아듣지 않아서 결국 남자가 자기 손가락 하나를 자르고 만다. 어떻게 이런 시나리오를 썼나 싶을 정도로 이후의 스토리도 흥미롭다. (웃음)

-월드 시네마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도 높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었나.

=올해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던 안드레아 팔라오로 감독의 <모니카>를 소개하고 싶다. 신인 감독 중 간혹 현실성과 오락성 사이에서 균형을 잃거나 예술성을 강조하다가 공감대를 얻기 어려운 영역으로까지 나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모니카>는 여러모로 조율이 잘된 작품이다. 에단 호크와 이완 맥그리거가 형제로 출연한 <레이먼드 & 레이>도 인상적이었다. 두 형제가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희한한 유언을 들으며 벌어지는 라이트한 코미디 영화인데 두 배우의 합도 좋고 코믹한 신들 간의 연결도 매끄럽다.

-미드나잇 패션 섹션도 묻지 않을 수 없다. 팬데믹 기간에 잠시 사라졌다 2년 만에 부활한 섹션이다. 담당 프로그래머로서 감회가 남다르겠다.

=이 질문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웃음) 미드나잇 패션 섹션이 처음 개설됐을 때부터 맡아온 터라 개인적으로 애정이 많다. 미드나잇 패션에선 하루에 3편씩 영화를 틀기 때문에 6편, 9편, 이런 식으로 3배수의 작품을 뽑아야 한다. 하지만 올해 해당 섹션의 재개 여부가 늦게 결정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4편만 선정하게 됐다. 대신 다른 섹션의 상영작 중 장르성이 짙은 <다크 글래시스>와 <뱅어. 띵곡이 필요해>를 함께 틀 예정이다. 초청된 4편을 소개해보자면 먼저 <제티카>는 공포물에서 블랙 코미디로 전개되는 작품인데 저예산 영화임에도 훌륭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영화다. <더 메뉴>는 반대로 디즈니가 제작하고 안야 테일러 조이, 니콜라스 홀트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는 코믹 공포 영화다. <더 프라이스 위 페이>는 오랜만에 좋은 B급 정통 슬래셔 영화 한 편이 나온 것 같다. 흡인력이 아주 좋다. <사탄의 노예: 영의 조우>는 5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흥행한 <사탄의 노예>의 후속편으로 전편 못지않게 깜짝 놀라게 하는 포인트가 많다. 미드나잇 패션 영화들을 보러 올 때 간혹 아예 쿠션까지 들고 잘 준비하고 오는 관객들이 있는데, 부디 잠은 미리 충분히 주무시고, 극장에선 앞서 소개한 영화들을 온전히 즐길 수 있길 바란다. (웃음)

-‘<아바타: 물의 길>의 모든 것’ 기획전도 상영부터 토크 프로그램까지 알차게 준비되어 있다.

=15분가량의 푸티지 영상을 상영한 뒤에 존 랜도 프로듀서가 직접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을 화상으로 연결해 관객과의 대화를 가질 예정이다. 인더스트리 부문에서는 이런 식의 프로모션 상영을 많이 하지만 영화제에서 진행하는 건 아마 국내외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일 거다.

-새롭게 기획한 프로그램도 있고 여러모로 영화제의 흥미로운 변화가 예상된다. 개막을 앞두고 개인적인 포부와 바람을 전한다면.

=좀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영화제의 중요한 역할은 재능 있는 신인 감독을 발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팬데믹 이전에도 그랬지만 요즘엔 신인 감독들의 영화를 극장에서 선보이기 쉽지 않다. 그래서 괜찮은 작품들이 영화제에서만 상영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 <미나리>와 <옥자>의 프로듀서인 크리스티나 오와 대화한 적이 있는데 한국의 재능 있는 감독들이 더 많이 발굴되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크리스티나 오를 포함한 다른 프로듀서들이 영화제에 와서 한국의 독립영화를 관람하고 필요할 경우 미팅도 주선해주기로 했다. 현재 정한석 프로그래머와 함께 준비하고 있고, 올해 잘 진행해서 내년에 좀 더 상용화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신인 감독들이 해외의 영향력 있는 제작사와 연결돼 활발하게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기를, 이러한 프로젝트가 한국에서 시작해 아시아로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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