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71개국 242편의 공식 초청작과 커뮤니티비프 상영작 111편까지 총 353편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영화의 바다에서 헤맬 당신을 위해 아시아(남동철, 박선영, 박성호), 월드(박도신, 서승희, 박가언), 한국(정한석), 와이드앵글(강소원) 그리고 커뮤니티비프 프로그래머(정미) 9인의 프로그래머가 꼭 관람해야 할 영화들의 목록을 전해왔다. 부산국제영화제 200% 즐기기, 그 첫걸음은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남동철 수석프로그래머
천야일야/감독 구보타 나오/일본/뉴 커런츠/126분
1960년생 구보타 나오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30년째 실종된 남편을 기다리는 여성의 사연을 통해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시간을 다룬다. 일본 고전영화를 보는 것 같은 우아함을 갖추고 있다. 영화가 시간을 다루는 매체라면 이런 식으로 우아하게 시간을 그릴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감독 미야케 쇼/일본, 프랑스/일본 영화의 새로운 물결/100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차세대 일본 감독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감독으로 언급한 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이다. 올해 일본 영화 특별전 중에서도 제일 먼저 선정된 영화이기도 하다. 독창적인 리듬은 물론 빈틈없이 꽉 짜인 구성이 마치 잘 계산된 건축물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노 엔드/감독 나데르 사에이바르/독일, 이란, 튀르키예/뉴 커런츠/113분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프로듀서를 했고 <3개의 얼굴들>(2018)의 각본을 함께 써 칸영화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한 나데르 사에이바르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사소한 거짓말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인데,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한 흡입력이 매력적이다.
강소원 프로그래머
남쪽, 적막철도/감독 샤오추첸/대만/다큐멘터리 경쟁/113분
아시아 경쟁작에서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영화다. 감독이 허우 샤오시엔의 조감독 출신이다. 영화에서 대만 뉴웨이브의 무드가 확 느껴진다. 다큐멘터리엔 소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영화의 리듬과 톤이다. 그런 면에서 가장 좋은 작품이었다.
죽은 후에도/감독 수유팅/대만/다큐멘터리 경쟁/119분
요즘 대만 다큐멘터리가 굉장한 약진이다. 영화는 아버지가 가족들을 위해서 16년 동안 집 만들기를 독학해서 일본식 목재 집을 만드는 이야기다. 가족들이 홈비디오 형식으로 찍은 장면들까지 합쳐지면서 장대한 가족 드라마가 깊은 감동을 준다.
LA 주류 가게의 아메리칸 드림/감독 엄소연/미국/다큐멘터리 쇼케이스/85분
LA 한인 이주민 2세대인 감독이 가족과 친구들 모습을 기록한 영화다. LA 한인들의 세대 격차, 역사적 성찰이 들어가 있으면서도 경쾌한 분위기와 드라마, 강한 개성의 인물들을 놓치지 않는다. <미나리>의 다큐멘터리 버전 같다.
박가언 프로그래머
뱅어. 띵곡이 필요해/감독 아담 세들락/체코/월드 시네마/111분
하룻밤 동안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작품인데 속도감이 굉장히 좋다. 아이디어도 신선하고 편집도 늘어짐이 전혀 없다. 마지막 반전까지 훌륭하기 때문에 젊은 관객들의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영화라 생각한다.
프롤로고스/감독 만타스 크베다라비시우스/리투아니아, 그리스/월드 시네마/90분
뚜렷한 내러티브를 보여주기보다 감독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이미지들이 계속 이어진다. 정말 아름다운 영화라서 꼭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만타스 크베다라비시우스 감독은 올해 초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침공을 촬영하다가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프롤로고스>는 그의 유작이다.
이노센스/감독 기 다비디/덴마크, 이스라엘, 핀란드, 아이슬란드/다큐멘터리 쇼케이스/100분
이스라엘 징병제를 통해 군대에 입대한 뒤 자살한 아이들의 서사를 전한다. 개인적인 편지, 혹은 일기장을 읽어주는 느낌인데 이 정도로 소프트한 톤의 영화도 이스라엘에서 만들어지긴 쉽지 않다. 병역 문제는 한국에서도 주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이노센스>를 통해 한국 관객들과도 흥미로운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