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식
장진 감독을 처음 만난 날 개고기 집에 가서 술을 한잔 했다. 그때까진 함께하기로 한 연극 <매직타임>의 캐릭터도 나와 있지 않아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런데 평소대로 막 떠들고 나서 며칠 있다 다시 만났더니 그새 내 캐릭터를 바탕으로 두세장 분량의 대본을 써오지 않았겠는가. 잠깐 봤을 뿐인데 나라는 인간을 너무 잘 잡아내 놀랐다. 그는 심지어 상대방 기분 안 나쁘게 하면서 자기 할말은 다하고 있는 대로 화도 낼 줄 안다. 좀더 시간을 가지고 내공을 쌓으면 딱 좋을 텐데. 중대한 단점도 하나 있다. 술을 못 마신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은 잘 먹인다.
신하균
장진 감독이 밥 사주고 술 사줄 때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감탄하게 된다. 농담이다. 나에게 장진 감독은 감독이라기보다 십년 가까이 사귀고 배워온 선배에 가깝다. 연기라는 걸 아예 까맣게 모를 때, 내 첫 번째 연극을 연출한 사람이 장진 감독이었으니까. 그땐 정말 대단하게 보였다. 학생이 연출도 하고 희곡도 쓰고 연기도 하고. 연기는… 열심히 한다. 그 이상은 말 못한다. 근데 그때 이후로 연기하는 건 거의 못 봤다. 장진 감독이 너무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게 아니느냐는 말이 많은데, 나처럼 한 가지 일에 에너지를 모두 써버리는 사람은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이다. 지금은 굳이 그가 쓴 극본을 보지 않더라도 매번 달라지는 이야기가 어떤 틀과 결론을 가질지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다.
김일웅
장진 감독은 말투나 목소리는 쌈마이 같을지 몰라도 생각만은 매우 올바른 사람이다. 한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믿고 냉정하면서도 자상한 면이 좋다. 정말 잊지 못할 일이 하나 있다. 연극 <택시 드리벌> 끝나고 다같이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장진 감독이 그날은 이상하게도 술을 ‘엄청나게’, 소주 반병이나 마시고 엉엉 울면서 “미안해. 일웅이 너 용돈도 못 챙겨주고. 우리 조금만 참자” 이러는 거다. 그때 신하균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칼국숫집을 냈는데 그 얘기도 했다. “하균이 칼국숫집도 한번 못 가보고… 미안해…엉엉.” 그런 일은 절대 못 잊을 것 같다. 사람들한테 장난도 많이 치고 슬렁슬렁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실제로도 그렇지만, 서른이 넘은 지금도 범접 못할 카리스마가 있는 장진 감독이다.
임원희
장진 감독은 부지런하다. 잠을 잘 안 잔다. 같은 과 1년 선배라 서로 알고는 있었지만, 가까워진 건 군대 문선대에서 같이 있을 때다. 장진 감독은 천주교 군종병이었는데, 조그만 사무실 같은 게 있어서 밤마다 둘이 거기서 떠들곤 했다. 연극 얘기, 수다의 전신쯤 될 문화창작집단 얘기. 정말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10년도 안 돼서 실현됐다. 천재라고들 하기도 하고, 쉽게쉽게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노력의 결과다. 잠을 못 잘 만큼. 한 가지 바람이라면, 일을 너무 벌여서 몸 상하지 말고, 여유도 찾아가길.
정재영
장진 감독은 말이 많다. 괜히 ‘수다’라는 이름이 나온 게 아니다. 남이 잘 안하는 짓, 해봤자 잘 안될 것 같은 짓을 하겠다고 늘 큰소리 친다. 그런데 큰소리 치고 나서 그걸 해치운다. 큰소리 칠 땐 말리고 싶은 적도 있지만, 그걸 해치우니 할말이 없다. 그래서 같이 수다 떨게 됐다. 술은 잘 못해 차를 마시면서 같이 수다 떤다. 아니면 PC방에 가서 스타크래프트를 하거나. 8∼9명이 다같이 들어갈 PC방 찾느라 삼만리 한 적도 많다. (장진 감독이 “길게 얘기한다?”며 끼어들자) 아, 이거 꼭 써주세요. 사실은 꽤 독선적이고, 진짜 욕심 많은 사람이라고.(웃음)
류승범
<화려한 시절> 하게 된 게 장진 감독 때문이다. 드라마를 할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자기가 좋아했던 드라마가 노희경 작가의 작품들이라며, 젊을 때 방송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고 권유해서. 내가 큰 덕을 본 거다. 관객으로서 장진 감독의 영화를 참 좋아하지만, 연출자로는 아직 잘 모른다. <킬러들의 수다>에서 두컷 한 게 전부니까. 직접 연출하진 않았지만 <사방에적> 현장에서 같이 작업하면서 많이 배웠다. 지금껏 감각에 많이 의존해왔는데, 감정이 넘치지 않도록 절제하는 법에 대해서. 신기한 사람이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또 많은 걸 아는지.
정규수
배우로 처음 만났다. 연희단거리패에서 <홍도야 우지 마라>를 할 때 같이 무대에 섰으니까. 서로 잘 모를 때라 뭐 하는 친구지, 그랬는데 연극계의 흐름을 벗어난 사람 같았다. 그땐 연극을 잘 몰라서 그런 줄 알았지.(웃음) 처음에는 너무 앞서가는 것 같아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는데, 결국 정도에서 벗어나지는 않더라. 지금도 장진 감독에게 연기에 대해 많이 배운다. 연기 자체라기보다는, 사회의 정서랄까,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연기에 대해서 더 잘 아니까. 그러고 보니 작품 얘긴 참 많이 했는데, 개인적인 얘긴 별로 못했다. 예전엔 술도 못 먹더니, 이제 술이 좀 늘어서 같이 마실 만 하니까 서로 너무 바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