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부산국제영화제]
#BIFF 5호 [인터뷰] '우리 집' 기요하라 유이 감독, “영화에선 환상과 현실이 공존할 수 있다”
2022-10-10
글 : 이우빈
사진 : 최성열
<우리 집> 기요하라 유이 감독

<우리 집>은 미학적 완결성과 감독의 개성을 고루 성취한 영화다. 낡은 일본식 주택에 세리와 엄마가 살고 있다. 세리는 자꾸 유령이 느껴진다고 호소한다. 이내 영화는 같은 주택에 사는 사나와 토코의 이야기를 교차시킨다. 두 이야기의 인물들이 직접 만나진 않지만, 세리가 느끼는 어떤 기운이 사나와 토코로부터 나오는 건 점차 확실해진다. 그렇게 <우리 집>은 같은 공간, 다른 세계의 두 이야기를 교묘히 겹쳤다가 떼기를 반복한다. 종잡을 수 없는 서사와 규명할 수 없는 세계들의 묘한 병렬이 영화에선 모든 이야기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감독의 가치관을 증명한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자신의 창작론을 깊게, 조목조목 설명하는 기요하라 유이 감독의 모습을 보고 나니 더 많은 궁금증과 기대감이 샘솟았다.

- <우리 집>엔 많은 레퍼런스가 담겨 있는 것 같다. 특히 어떤 사건이나 집단의 실체를 관객에게 다 드러내지 않고 미스터리를 구가하는 방식이나 유령의 존재를 슬그머니 드러내는 방식이 자크 리베트의 <아웃 원>, <마리와 줄리앙 이야기> 등을 떠올리게 한다.

= 맞다. 자크 리베트와 <아웃 원>을 굉장히 좋아하고 그에게 영향도 많이 받았다. 처음 영화를 만들기로 맘먹었던 것도 고등학생 때 자크 리베트의 <북쪽에 있는 다리>,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를 보고 나서였을 정도다. GV에서 말했던 대로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향도 크다. 두 감독에게 공통으로 배운 건 영화에서의 리얼리티를 어떻게 설정할지의 문제다. 영화에선 환상과 현실이 마냥 대립하는 게 아니라 바로 옆에 같이 있을 수 있단 가치관을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었고, 나도 실현해보려는 중이다.

-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집>의 구조가 <징후와 세기> 같은 작품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느껴진다. 시나리오 단계에선 <징후와 세기>처럼 두 이야기를 크게 1, 2부로 나눴는데 편집본에선 두 이야기를 더 자주 교차시키고 긴밀하게 연결한 이유는?

= 목적지는 <징후와 세기>와 비슷하다. 관객이 <우리 집> 속 두 개의 이야기, 두 개의 세계를 독립된 영화가 아니라 꼭 하나의 영화로 보길 바랐다. 전혀 다른 이야기, 인물, 관계, 관념 등의 대조적 요소들을 하나의 영화로 연결해낼 때 과연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아서다. 그러기 위해서 촬영을 마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결국엔 플롯을 계속 교차하면서 쌓아가는 방식이 최선이라고 결정했다.

- 촬영은 1, 2부를 나누어 차례대로 진행했나?

= 그렇다. 예산의 문제가 컸다. 대학원 졸업작품이었기 때문에 약 3천만 원의 제작비가 전부였다. 두 개의 이야기를 같은 로케이션에서 촬영해야 하는데 집 안 모습이 전부 달라져야 하지 않나. 예산을 절감하려면 어쩔 수 없이 로케이션의 미술 세팅을 한 번에 다 교체하고 1, 2부를 따로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머리로 생각했던 것에 비해 촬영 상황의 제약이 꽤 컸다. 다만 그런 제약을 오히려 기회로 살리면서 여러 시도를 할 수 있었다.

- 토코와 사나가 식사하는 장면에서 부엌에 난 창틀의 프레임에 토코의 목이 잘리는 기묘한 숏 구도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 장면도 촬영 상황의 제약에서 탄생한 건가?

= 맞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정했던 컷이다. 원래 카메라의 배치와 컷 분배를 사전에 정하는 편인데 공간이 워낙 좁다 보니까 생각했던 곳에 카메라를 둘 수가 없었고 결국 컷 구도를 조정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제한된 위치, 비슷한 위치에 카메라를 두고 두 개의 이야기를 촬영하니까 오히려 두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대비되는 것 같아서 즐거웠다. 어쩔 땐 “이 집이 나를 잘 조종해주는 건가?”란 생각까지 들었다. (웃음)

- 제한된 촬영을 감수하면서도 세트가 아닌 로케이션 촬영을 택했다.

= 원래는 스튜디오나 세트도 후보에 있긴 했다. 그런데 인위적인 환경보다는 더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집의 분위기를 원했다. 수많은 로케이션 헌팅 끝에 최종적으로 촬영한 집은 아주 오래된 일본의 옛 가옥이고, 그동안 여러 가게가 없어졌다가 생긴 곳이다. 집에 다양한 기억이 쌓인 만큼 집이란 공간도 하나의 존재, 한 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번 개보수, 증축되다 보니까 이상한 구석에 창고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영화에 나왔듯이 2층으로 가는 계단은 급조해서 만든 티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집의 구조 자체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각본을 로케이션에 맞춰서 수정할 정도로 중요한 공간이었다.

- “타인의 기억이 존재의 경험을 구성한다는 것에 관한 영화”라고 <우리 집>을 설명한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점에서 기억을 잃은 사나가 영화에서 중요한 인물인 것 같다. 그런데 사나와 같이 사는 토코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 비밀과 기억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두 사람을 하나의 이야기에 집어넣어 대조한 의도는?

= 기억이 없는 인물, 반대로 가득 차 있는 인물의 대비라니. 너무 재밌는 해석이라서 고맙다. (웃음) 원래부터 인물 관계의 대조를 의도했다. 우선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 세리와 엄마 간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일반적이고, 명확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 사나와 토코의 관계는 어떻게 정의하기가 모호하다. 사나는 기억을 잃었고 아이와도 같은 상태여서 사나와 토코 사이에선 일본 사회의 상식인 존대·존칭의 사용도 뒤죽박죽일 정도다. 상하관계가 전혀 없어서 불편할뿐더러 여자 사이란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완전히 가까워지기도 어렵다. 그러니까 세리와 엄마, 사나와 토코의 관계를 완전히 반대로 설정하면서 앞서 말했듯 대조적 요소의 연결이 어떤 차이를 생성하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 세리는 마치 소마이 신지의 <태풍 클럽>에 나오는 학생들처럼 충동적인 감정과 욕구에 사로잡힌 소녀다. 영화의 기이한 분위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투영했나?

= 사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세리가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란 생각은 안 해봤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정말 그런 것 같다. <태풍 클럽>에 대한 얘기도 처음 들어보는데, 정말 그렇게 느껴져서 재밌다. 다음에 참고해야겠다. (웃음) 세리가 자신의 욕구를 여과 없이 행위에 옮겨버리는 아이니까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를테면 트리를 갑자기 자전거에 싣고 가거나 막무가내로 하는 가위바위보가 그렇다. 하지만 내 경험은 아니고 오히려 정반대다. 내가 못 해 봤던 행동과 표출 못 했던 감정을 담아 보려고 했다. 내 청소년기는 방 안에서 영화만 보는 시절이었으니까 일종의 대리만족인 것 같다.

- 오프닝 신의 춤 장면은 움직임만으로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 처음부터 댄스 신은 꼭 넣고 싶었다. 사실 개인의 취향이다. 춤 보는 것도 좋아하고 춤 추는 것도 좋아한다. 물론 잘 추진 못한다. (웃음) 춤이란 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행위고, 인간의 움직임을 보여주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영화에 정말 잘 어울리는 짝이다. <우리 집> 각본을 써야겠다고 구상한 계기도 댄스 신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서부터였다. 나는 오프닝 장면을 ‘유령의 댄스’ 장면이라고 부르는데, 자연스럽게 영화의 내용에도 유령의 존재감이 가미됐다. 살아있는 인물들이 마치 유령처럼 춤을 추는 이미지 자체에 굉장히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느낀다.

- 차기작이 완성 단계라고 들었다.

= 이미 완성했고 자막 작업 중이다. 세대가 다른 세 주인공의 하루를 찍는 이야기다. 각기 다른 삶의 일부를 하나의 영화로 묶으려고 한다. <우리 집>과 비슷한 주제로도 보이긴 하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다. <우리 집>처럼 긴장감 있거나 무서운 분위기는 아니고 조용한, 엄청나게 조용한 영화가 될 것 같다. 감독으로서 최종 목표는 영화를 계속 만드는 일이지만, 그때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다르게 만들어 내고 싶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