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나를 죽여줘', 배우, 카메라, 연출의 힘으로 무대 위 감흥이 고스란히
2022-10-19
글 : 김수영

선천적 지체 장애를 가진 현재(안승균)는 모든 일에 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빠에겐 마냥 어린아이 같지만 10대 중반의 현재도 여느 청소년처럼 성적 욕구가 생긴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성장기 징후지만 자신을 괴물이라고 인식하는 현재도, 여전히 욕조에서 아들을 손수 씻기는 아빠 민석(장현성)도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다. 아빠 품을 떠나 또래 친구와 독립하고 싶다는 현재의 바람도 민석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부자간의 갈등은 민석의 몸에도 이상이 생겼다는 게 밝혀지면서 변곡점을 맞는다. 영화는 아빠와 아들이 동시에 겪게 되는 장애를 통해 인물간의 관계를 파고든다. 민석이 아들 현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민석과 현재는 부자 관계를 넘어 서로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게 되는데 영화는 이 과정을 극적으로 담아낸다.

성장기에 접어든 장애인의 욕구부터 안락사까지 묵직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영화 <나를 죽여줘>는 연극 <킬미나우>를 영화화했다. 캐나다 극작가 브레드 프레이저가 2014년에 발표한 연극으로 국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2016년부터 세 차례 공연됐다. 영화 속 현재나 민석이 겪는 어려움은 누군가는 한번도 마주하지 않은 풍경이라 낯설고 불편할 수 있지만, 사회에서 들리는 장애나 안락사 관련 뉴스를 떠올리면 연극이 초연됐을 때보다도 지금 더 많은 관객에게 가닿을 수 있는 이야기다. 2019년에 공연된 <킬미나우> 세 번째 시즌에서 아버지를 연기했던 배우 장현성이 영화에서도 아빠 민석 역으로 열연한다.

연극 무대처럼 영화에서도 집 거실과 욕조가 중요한 배경으로 쓰인다. 희곡을 기반으로 한 배우들의 대화도 긴 숏으로 담겼다. 관객이 객석에 앉아 무대 곳곳을 살펴보는 것과 달리 영화는 프레임으로 시야가 제한되어 있어 카메라가 관객의 시선을 대신해 인물의 움직임을 면밀히 좇는다. 공간 속 감정의 진폭까지 담아내려는 핸드헬드 카메라의 워킹과 세심한 연출 덕에 장면 장면이 단조로움 없이 스크린에 옮겨졌다. 장현성과 안승균의 미더운 연기가 극에 단단한 중심을 세우고 민석의 동생 하영(김국희)과 민석의 연인 수원(이일화)이 고통 속에서도 존재하는 희로애락의 결을 풍성하게 펼쳐낸다. 현재의 활동지원사이자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기철(양희준)도 불안할 만큼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개성 있는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극 속에서 내내 생생한 온기가 식지 않은 데에는 배우들의 공이 크다. 시드니월드필름페스티벌, 뮌헨필름어워즈, 암스테르담독립영화제 등 세계 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영화상을 받으며 호평받았다.

"현재가 보통 애들하고 똑같이 됐을 뿐인데 그게 왜 이렇게 어색하지."

현재의 성장을 감당해야 하는 아빠 민석의 대사. ‘보통’이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낯설고 특별한 기준처럼 다가온다.

CHECK POINT

<코다>(2021)

<코다> 역시 태어나는 모든 아이는 완벽한 존재라는 것을 들려주는 이야기다. 장애가 있는 가족과 한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는 아이의 성장담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농인 가족 캐릭터를 실제 농인 배우들이 연기해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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