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 데뷔작 <남매의 경계선>으로 장편 부문 대상과 관객상, 다양성상까지 수상한 플로랑스 미알레 감독이 올해는 심사위원장으로 부천을 찾았다. 안시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으로 선정되기도 한 <남매의 경계선>은 난민이 된 남매의 고달픈 여정을 묘사하는 동안 대담한 선과 풍요로운 색채를 동원해 역사적 장면을 야수파의 화폭 위로 옮겨 놓는다. 화가이기도 한 미알레 감독은 올해 BIAF 포스터에서도 그 재능을 기부해 축제의 서막에 짙은 서정을 불어넣었다.
- 부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한국을 처음 찾았다.
= 작년에 <남매의 경계선>이 세 개의 상을 받았지만 상황 상 참석할 수 없어 아주 아쉬웠다. 한국 애니메이션에는 아주 특별한 접근법이 있다. 영화제 기간 동안 심사를 하면서 받을 놀랍고 낯선 느낌을 기대하고 있다. 파리에 있는 국립장식미술학교(ENSAD)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많은 한국 학생들을 만났는데 그중에 올해 함께 국제경쟁 부문을 심사하는 정다희 감독(<의자 위의 남자> <빈 방> <움직임의 사전>)도 있었다. 그를 다시 만나 기쁜 마음도 크다.
- 심사위원장이 영화제 포스터를 직접 그렸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인 사례로 남을 것 같다. 어떤 작업 과정을 거쳤나.
= 작업은 지난 3월에 시작했다. 바닷가에서 일어나는 내용을 담은 트레일러를 만들고 싶었다. 지난해 아유무 와타나베가 만든 트레일러가 영향을 준 부분도 있고, 아직은 내가 한국을 잘 모르기 때문에 보편적인 장소로 관객들을 초대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준비 중인 다음 단편영화 또한 수영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선 초안을 그린 뒤 이를 바탕으로 애니매틱을 만들고, 와이드 샷과 타이트 샷을 겹쳐 움직이는 그림으로 연출했다.
- <남매의 경계선>은 유리 위에 오일페인팅으로 작업한 뒤 이를 카메라로 찍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아주 독특한 테크닉인데, 단편영화를 제작할 때부터 비슷한 기법을 써 왔다. 판화를 전공한 이력의 영향이 있을까.
= 아마도 카메라 아래서 바로 ‘페인트 온 글래스’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제작된 첫 장편 영화일 거로 생각한다. 이런 도전을 시작하려면 사리 판단을 못하거나 살짝 미쳐야 한다. (웃음) 굉장히 어렵고 수공예적인 테크닉이었다. 각 컷의 애니메이션은 제작되면서 점점 만들어진다. 한마디로 되돌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만약 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는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다.애니메이터들이 여러 층의 유리판에 이미지를 재구성했고 각 유리판은 밝은색과 어두운색으로 이미지를 나눴다. 바로 이 부분, 층별로 컬러를 사용하는 방식에서 나의 판화 경력이 아이디어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 낮은 명도가 두드러지는 장면이 많지만, 비극적인 순간에 조차 색채의 생기를 놓지 않는다. 색채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 동료인 마리 데스플친과 시나리오 작업을 끝냈을 때 롤페이퍼에 영화의 전체 컬러를 그렸다. 각 챕터의 컬러가 계절 변화에 맞으면서 인물들이 겪는 사건, 그리고 감정과도 일치하길 바랐다. 예를 들어, 양부모 집이 나오는 대목에서는 핏빛의 컬러로 가을을 겪는다. 쿄나가 혼자 발견되었을 땐 겨울이고 이 대목은 흑백이다. 내게 영화는 주인공인 코나의 기억의 색을 반영한다. 이 컬러들은 대체로 부드럽거나 희미한 컬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폭력적일 수 있는 색감과도 멀리 떨어져 있다.
- 남매의 모험은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일어나는 전쟁의 여파에 대한 경각심과 난민 문제를 정서적 차원에서 이해하도록 돕는다. 첫 장편영화를 만들면서 이 주제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 유럽에서는 여전히 너무나 크고 많은 이주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나의 증조할머니는 1905년에 유대인 박해를 피해 10명의 아이를 데리고 우크라이나 오데사를 떠났다. 러시아 유대인, 아르메니안인,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등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전쟁, 차별, 가난 등 여러 다른 이유로 유럽이나 미국으로 망명한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 20세기 초의 대 이주와 21세기 초의 대 이주를 대조하고 싶었다.
- 2016년에 작업을 시작해 2021년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초연했다. 상당히 긴 제작 기간을 거쳤는데 자세한 작업 공정을 들려준다면.
= 프랑스 툴루즈, 체코의 프라하, 독일의 라이프치이. 이렇게 세 곳에서 나누어 작업했다. 2명의 독일 애니메이터는 12개월 동안, 5명의 체코 애니메이터는 18개월 동안, 5명의 프랑스 애니메이터는 9개월 동안 동시에 일했다. 최종적으로는 약 15명의 여성 애니메이터들과 카메라 바로 아래의 유리 위에서 작업을 한 한 명의 남성 애니메이터가 <남매의 경계선>을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애니메이터들과 함께하면서 직접 연출적인 지시 상황을 전달할 수 있도록 도시를 순회했다. 정말이지 힘들었다. 애니메이티드 페인팅 제작 과정은 보통 아주 오래 걸린다. 각각의 애니메이터들이 자신이 연출하는 컷 전체를 혼자서 담당했기 때문에 일을 분담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한 명의 애니메이터가 하루에 몇 초를 작업할 수 있을지 예상하기도 어려웠다. 각자의 리듬이 무척 달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예상했던 마감 기한을 거의 지키지 못했다. (웃음)
- 꾸준히 협업하고 있는 작가 마리 데스플친과는 어떤 과정을 거쳐 소통하나.
= 우리는 함께 일한 지 굉장히 오래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리듬이 자리 잡은 상태다. 굉장히 긴 협업의 시간이었다. 마리는 이야기 구성과 극작, 대사에 더 많이 개입했고 나는 비주얼 라이팅을 비롯한 시각적 아이디어와 언어를 구상했다.
- 애니메이션 감독이기 이전에 화가이기도 하다. 정지된 상태로 그리고 싶은 것과 애니메이션을 통해 움직이는 이야기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 당신에겐 명확히 구분되나.
= 일부러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으려 한다. 애니메이션이라 하더라도 몇몇 상황들은 굳이 많은 움직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남매의 경계선>에서 아이들을 물건처럼 가두는 양부모의 집을 드러낸 방식이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곡예사가 등장하는 서커스 장면이나 바다를 건너는 장면은 움직임을 크게 주어야 핵심이 담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주 단순한 컷을 좋아하는 편이다. 애니메이션은 우리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느냐에 따라 스스로 적절한 자리를 찾아간다.
- 예술성만큼이나 체력과 지구력이 필요한 것이 애니메이션 작업이다. 지금까지 부침 없이 꾸준히 일해왔고 또 60대에 첫 장편영화까지 발표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 2006년에 <남매의 경계선>을 만들어야겠다고 처음 생각했을 때가 50살이었다. 젊을 때였지. (웃음) 예산을 구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지만, 애착이 너무 큰 나머지 우리가 믿고 매달린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 없었다. 다행히 내 프로듀서는 한 번도 낙담하지 않았고, 2016년에 드디어 본격적인 제작을 시작할 수 있었다. 10년 사이 나는 나이가 들어버렸지만,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은 변함없이 강했다. 이런 용기와 에너지를 다음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도 똑같이 가질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대로 괜찮다.
- 애니메이션의 주제로 요즘 관심이 있는 요소는 무엇인가.
= 물, 그리고 신체를 주제로 한 작업에 관심이 있다. 지금 만들고 있는 단편영화는 제2차세계대전 직후가 배경인 수영 챔피언의 실화다. 역사적 사건을 현실과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설화처럼 풀어보려고 한다.
- 국제경쟁 부문을 심사할 때 어떤 요소에 주목하게 되나.
= 내가 단편영화로 커리어를 시작했기 때문에 장편영화에서도 단편영화가 가진 특유의 자유로움과 창의성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한다. 주요 심사 기준 중 하나는 방식의 독창성이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점점 더 기술이 영화에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한 영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