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국제경쟁 학생·TV&커미션드·한국단편 심사를 맡은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는 1985년 도에이 애니메이션에 입사해 <꼬마 마법사 레미>, <디지몬> 시리즈 등을 총괄했다. 지금까지 그가 완성한 애니메이션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유독 꿈, 어린이, 희망,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애니메이션만이 지켜낼 수 있는 것들이기도 했다.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국제경쟁 단편 심사를 맡았다.
= 워낙 작품 수준이 높아서 심사하는 과정이 즐거우면서도 어려웠다. 최종 후보로 네 작품을 뽑아야 했는데 우열을 가리기 어려워 뭘 뽑아야 할지 고민이 컸다. 이번 심사위원은 나와 중국의 주옌통 감독, <씨네21>의 이주현 편집장이 맡았다. 신기한 건 세 심사위원의 의견이 거의 갈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품을 볼 때 눈 여겨 본 사항들이 일치했던 것 같다. 올해 단편 작품은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향이 컸다. 그 외에 유명 작품을 따라한 듯한 어중간한 영화에는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 1985년에 도에이 애니메이션에 입사했다. 사회초년생 시절엔 여성 프로듀서가 많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 시절을 회상해 본다면.
= 처음엔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 프로듀서가 기획안을 낼 때 보통 주력 삼고 싶은 기획을 밀기 위해 나머지를 다소 부실하게 만든다. 내가 바로 그 나머지 기획을 만드는 일을 도맡았다. (웃음) 그런데 떨어지기 위해 작성한 기획안이 덜컥 채택돼버린 거다. 조금 웃기지만 그렇게 정식 직원이 되었다. 당시 많은 남성 직원들이 <주간 소년 점프>에서 연재된 <드래곤 볼> 같은 액션 위주의 애니메이션으로 기획할 때, 나는 <리본>이라는 순정 만화 잡지에서 연재 중이던 <꽃보다 남자>, <내 남자친구에게> 등 여성들이 좋아할 작품의 애니화를 추진했다. 초대박이 나고서 많은 직원이 작가들을 만나고 싶어했지만 여성 원작자들은 같은 여성인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의사소통은 전적으로 내가 담당하고 남성 스탭들은 뒤에서 보고 있기만 했다. 그런 일이 많았다. 자연스레 여성 작가와의 협업은 내 전문 업무가 됐다. 주류가 기획하는 것과 다른 것을 발굴하고 기획하고 실행해 나가면서 내 자리를 견고하게 확장해 나갔다.
- <디지몬> 시리즈, <꼬마 마법사 레미> 등 총괄 프로듀싱을 맡았던 작품들이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이 성공할 수 있던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드라마다. <꼬마 마법사 레미>가 웃으며 시작했다가 진중한 드라마로 넘어간다면, <디지몬> 시리즈는 잔잔한 드라마에서 액션으로 넘어간다. 두 작품 모두 학교라는 중심 공간에서 드라마가 펼쳐지는데 그 이유는 주요 시청자인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예정이거나 이미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에서 새롭고 신나고 즐거운 일이 펼쳐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거기서 계속 살아가니까.
- 마법소녀 계보에서 <꼬마 마법사 레미>의 특징은 어린 주인공이 성인 여성의 신체로 변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과 비슷한 체형의 주인공이 마법을 펼치거나 정의를 구현하는 모습에서 아이들이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 아이들은 보통 4~5 등신으로 그리고, 어른은 7~8 등신으로 그린다. 세일러문 같은 멋진 여성을 그리면 아이들은 주인공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기 보다 동경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외형으로 그려내면서 기존의 것과는 다른 결을 보여주고 싶었다. 보통 아이가 성인의 신체로 변신하는 마법소녀물은 악당과 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현실 속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구를 침공하는 악당이 아니라 당장 나와 어울려 살아가는 가족과 친구이지 않나. 우리 주변의 어린이들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을 더 반영하고 싶었다.
-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신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기억 자체가 작품안에 저장됐다고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사람들의 생애주기에 함께 하는 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 사람들은 어린 시절 자기 안에 있는 여러 가능성을 믿곤 한다. 특히 애니메이션 주인공에 공감하면서 캐릭터의 가능성이 곧 자신의 가능성인 것처럼 은연중 받아들인다. 하지만 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사람들은 곧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포기하기 시작한다. 어른의 삶이란 포기할 줄 아는 삶이니까. 그래서 성인이 되어 어린 시절 보았던 애니메이션을 보면 그때의 어린 나로 돌아가 당시 품었던 꿈과 가능성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삶에서 드문 순간에 밑받침이 되는 건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다. 어렸을 때 좋아하는 것을 많이 만들어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꼭 애니메이션이 아니어도 좋다. 야구 구단, 아이돌 등 나의 가능성을 투영하고 또 그때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들이면 충분하다.
-애니메이션 산업에 종사한 지 37년이 흘렀다. 시대가 흐르면 세대적 가치관도 계속해서 바뀐다. 이러한 변화를 작품에 어떤 식으로 반영했나.
=<꼬마 마법사 레미: 견습 마법사를 찾아서> 속 남성들은 문제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큰 비중을 보이지 않는다. 연애물로 그렸다면 멋진 남성을 투입했을 테지만 현대 여성들은 연애보다 자신의 삶의 방식이나 목표, 성취 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현실에서 어떤 가치관이 떠오르는지, 그 가치관을 잘 드러내기 위해 어떤 장치가 필요한지 항상 고민한다.
- <은하철도 999>(1978), <드래곤볼>(1986), <슬램덩크>(1993), <닥터 슬럼프>(1997), <꼬마 마법사 레미>(1999), <디지몬 어드벤처>(1999), <원피스>(1999) 등 도에이 애니메이션의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이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도에이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 일본은 보통 애니메이션 제작위원회를 구성해서 음악, 영상, 만화 등 각자 파트를 나누어 투자를 받아 제작한다. 그런데 도에이 애니메이션은 회사의 규모가 크고 자체적으로 자금 출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제작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고도 콘텐츠 제작이 가능하다. 이번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도 상영하는 <꼬마 마녀 레미> 20주년 기념 극장판 <꼬마 마법사 레미: 견습 마법사를 찾아서>도 자체 출자를 통해 제작된 실험적인 작품이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건 창작자로서 무척 큰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