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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드라마톡] ‘슈룹’
2022-11-04
글 : 유선주 (칼럼니스트)

자식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누구보다 빠른 걸음으로 궁 안팎을 휘젓고 다니는 중전 임화령(김혜수). 내명부 실세인 대비(김해숙)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던 화령은 맏아들 세자(배인혁)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자 후계 구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비와 본격적으로 맞서게 된다. tvN 드라마 <슈룹>의 5회. 대비가 움직인 대신 수십명이 대전 앞에 엎드려 폐세자를 청하며 왕을 압박하자, 그 자리에 나서 중신들 하나하나를 지목해 이들의 무리하고 부당한 요구에 반박하는 화령의 위엄은 정말로 대단한 볼거리였다. “이리 개떼처럼 몰려와 이 지랄을 하는 것은 세자를 살리기 위함입니까, 죽이기 위함입니까!”

한데 배우의 연기에 전율하는 것과 별개로, 드라마의 설정 구멍을 극중 인물이 변명하거나 지적할 때 느끼는 민망함도 있다. 애초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세자가 병이 났다고 폐세자를 논하는 과정 자체가 무리수였다. 물론 공식 홈페이지의 ‘관전 포인트’에선 ‘시대만 과거, 현대와 매치’라 했고 일련의 퓨전 사극들은 저마다 예외와 파격을 다뤄왔다. 하지만 예외를 논하려면 그 시대의 보편적인 합의가, 파격이 작동하려면 쉽게 허물지 못하는 규범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슈룹>은 줄곧 이를 편의대로 안일하게 취급한다.

용잠을 머리에 꽂으며 성큼성큼 대전 앞마당으로 들어선 화령의 일갈. “폐하긴 무얼 폐해!”는 은은하게 짜증을 적립하던 시청자인 나와 겹치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 호통은 작가, 혹은 드라마로 향하는 것일까? 극의 무리한 전개가 중전이 내명부를 벗어나 왕의 신하들을 향해 불을 뿜을 만한 명분으로 동원되는 아이러니는? 복식과 궁궐 외엔 조선인 듯 조선이 아닌 걸로 치고 의문을 휘발시키다 보면 <슈룹>엔 자식들에게 닥치는 위기를 돌파하는 농도 짙은 감정만 남는다. 엄마니까. 엄마라서.

CHECK POINT

화령의 넷째 아들 계성대군(유선호)의 성 정체성을 극중 갈등이나 분쟁의 땔감으로 삼지 않고 한 인간으로 존중하고 온전히 받아들이게 했던 전개를 지지하지만, 딸이 있었으면 물려주려 했다는 비녀를 계성대군에게 전하는 장면에서 이것이 화령이 아들만 다섯인 엄마였어야 하는 이유가 될까 싶었다. <슈룹>에는 왕이 20년간 정비와 일곱 후궁에게 본 자식이 아들 12명이다. 6회가 되도록 딸은 그림자도 등장하지 않고, 하다못해 혼인하고 출궁했다는 설정 한줄 보태지 않는 기이한 성비의 비밀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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