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한구석에 말없이 앉아 있을 것 같은 범석은 말과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관계 맺음의 방법을 몰라 어색한 호의만 내세우는 소년이다. 하지만 이 조용한 성격이 불의를 외면하거나 모른 척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범석은 시은(박지훈)과 수호(최현욱)의 접점을 극대화하면서 이들을 위해 선뜻 용기낼 줄 안다. 드라마 <호텔 델루나>와 <D.P.>, 영화 <결백>과 <보이스>를 거쳐온 홍경은 소년의 외로웠던 나날을 종결시키고, 그에게 친구들과 함께 나아갈 성장의 시간을 선물했다. 소설 <데미안>의 구절을 바꾸면 범석의 얼굴을 띤 홍경의 이야기가 된다. ‘소년은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소년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범석은 조용하고 숫기 없는 소년이지만 의외로 강단 있는 모습을 보인다. 어떤 일이 새롭게 벌어질 때마다 사건의 심각성을 빠르게 파악하고 용기내 나서기도 한다.
=범석이는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한번쯤 겪어봤을 다양한 감정을 드러낸다. 10대가 거치는 일종의 통과의례를 보여주는 셈이다. 그 시기엔 주변의 선망하는 대상을 보면 나도 모르게 따라하게 되는데 범석도 그런 부류의 감정을 느낀다.
-범석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어색해하고 모든 제스처가 겸연쩍다. 학창 시절 어디에선가 본 적 있는 어리숙한 소년의 태도를 생생하게 체화했다.
=구체적인 이미지나 태도를 참고한 건 아니다. 그저 그에게 주어진 상황이나 감정, 그가 엮어나가는 관계성을 생각하며 어떻게 대응하고 반응할지를 고민했다. 머리도 튀지 않고 지극히 평범해 보이기 위해 둥그런 바가지 스타일을 했다. 그 나이대 남학생이 가장 많이 하는 머리이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 평범해 보일 방법을 찾았다. 사실 격투 신에서도 수호나 시은이는 화려하게 싸우는데 범석이는 현실적이고 감정이 앞선 액션을 취한다. 그런 서투름이 있다.
-시은이는 얼음장처럼 차고 다른 사람과의 교류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시은의 핸드폰에 유일하게 등록된 번호가 범석과 수호의 것이다. 범석의 어떤 점이 시은의 마음에 들었다고 생각하나.
=범석은 시은이에게 다가가는 입장이다. 초반에는 모종의 협박을 받아 시은을 힘든 구석으로 몰아갔지만 곤경에 빠진 그를 돕기 위해 용기내 수호를 데려온 순간, 둘의 관계에 변화가 생긴 것 같다. 범석이 시은이랑 친해져야겠다고 의도적으로 계산한 건 아니다. 그저 공동의 사건을 마주하고 함께 헤쳐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시은의 마음이 열린 듯하다.
-<약한영웅 Class 1>의 장르는 ‘액션’이자 ‘성장’이다. 거대 세력을 맞닥뜨린 세 친구가 어떤 형태의 성장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나.
=10대 청소년은 주로 혼자 있는 걸 더 편하게 여긴다. 그런데 혼자만의 생각에 골몰하다 보면 나만의 제한된 세계에 갇힐 수 있다. 이때 나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은 타인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성인보다 청소년 시기에 그 균열로부터 영향을 크게 받는다. <약한영웅 Class 1>에서도 각자 섬처럼 지내던 세 친구가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경험을 확장하고 성장을 하게 된다. 뭐랄까, 공동의 특별한 경험을 가지면 부쩍 친해지기 마련이라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세 친구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는 듯하다. 실제로 학교에서도 축구 한번 같이하면 묘하게 동질감이 생기고 ‘우리’라는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처럼. (웃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언뜻 범석이 같은 모범생의 느낌이 든다. 평소의 홍경은 어떤 성격인가.
=안 그래 보이지만 아주 활달하다. 집 안에 가만히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밖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다. 쉬는 날에는 여행을 가거나 전시장을 많이 찾는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외부에서 오는 즐거운 자극을 즐긴다.
-4년 전 이맘때, ‘서울독립영화제 2018 배우프로젝트’에서 2위를 차지했다. 막 데뷔한 신인 시절이었다. 그때의 홍경이 지금의 홍경올 돌아보면 어떤가. 자신이 원하던 대로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발버둥치고 있는 것 같다. (웃음) 평소 새로운 걸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그렇다고 했던 역할과 안 해본 역할을 구분하려 한 적은 없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피부로 와닿는 이야기와 마음으로 느껴지는 메시지다. 앞으로도 그런 것들을 해나가고 싶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이후로 영화 <결백>과 <정말 먼 곳>을 하고 드라마 <호텔 델루나>와 <D.P.> 등을 거쳐왔다. 매일 발버둥치는 마음으로 임해왔는데 결국 그 발버둥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나보다. 4년 전의 내가 그리던 모습과 똑같지는 않지만 꼬리를 물고 따라가고 있다.
-처음으로 되고 싶었던 게 배우였다고. 자신의 어떤 모습에서 배우로서의 잠재력을 발견했나.
=역량보다는 성향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영화를 정말 좋아했다. 정말 많이 봤다. 영화관에 가는 걸 삶의 낙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새로운 작품이나 장르, 형식 등에 진입 장벽이 높지 않았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에도 비슷한데 나는 정독파다. 그래서 이해가 잘 안되면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읽거나 본다. 그렇게 어떤 장면에 오래 머물렀던 시간이 은연중에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