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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드라마톡]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2022-11-18
글 : 유선주 (칼럼니스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조여정 배우를 캐스팅한다면? 요즘이라면 별로 놀랍지도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캐스팅을 엎는다면 격분해서 불도 뿜겠지. 프랑스 원작을 리메이크한 tvN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결국 얼굴에 ‘시술’을 받아야 한다는 계약 조건을 수락한 조여정은 성형외과에서 거울 속 자신을 물끄러미 보다 병원을 나와버렸다. “안 그래도 동안인데 더 어려 보이면 부담스러워서 어디 역할 주겠니.” 타란티노 영화를 포기한 배우의 너스레를 잠시 곱씹었다. 시술을 받겠다고 한 것도, 받지 않은 것도 배우가 일을 원하기 때문이다. 원작에선 세실 드 프랑스가 자연스러운 자신의 얼굴을 지키는 결정을 하고 매니저와 스쿠터로 질주하는 후련한 맛이 있다면, 한국판에선 일을 원하고 기다리는 40대 여성 배우의 고민은 덜어지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의 길을 매니저와 함께할 뿐.

배우 진선규와 이희준이 본인 역을 맡은 2회도 걸작. 연극배우 시절 자신들을 발탁한 메쏘드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둘은 변영주 감독의 차기작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 장례식장에서 상대방의 인성을 저격하고, 발인날 대표를 추억하는 노래를 서로 한 소절이라도 더 부르려고 다투다가 어느덧 화음을 넣어 이중창을 뽑는 바람에 올해 최고로 많이 웃었다. 사적인 친분이 있건 앙금이 쌓였건 간에 배우는 작품을 망치는 걸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다.

가끔 연예 뉴스에서 상투적으로 쓰는 ‘한솥밥’이란 표현에도 실없이 웃는다. 톱스타는 같은 회사 신인 계약 소식마다 한솥밥을 먹으러 불려나오고, 소속사 이전은 밥솥을 바꾸는 것 같아서였다. 메쏘드의 매니저들이 치사한 수단을 동원해 경쟁하면서도 매각 위험에 처한 회사를 지키려 하고 위기를 수습해 우선 일이 굴러가게 만드는 걸 보면, 낡은 표현을 다시 빌리고 싶어진다. 생쌀을 밥이 되게 하고 온기를 더 유지하도록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CHECK POINT

원작(<Call My Agent!>)의 한국 넷플릭스 번역 제목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를 우습게 봤다가 좋은 작품을 뒤늦게 따라잡는 중이다. 이전에 맡았던 배역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배우, 또 친분이 있는 감독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해 괴작에 출연하는 배우를 한국판이라면 누구로 캐스팅할까 상상하면서 보다가 진짜 한국 언급이 나왔다. 밤낮없이 영화를 찍는 이자벨 위페르의 스케줄 대소동을 다루는 에피소드에서는 컨디션에 문제가 생겨 촬영 일정을 중단한 이자벨 위페르가 집에서 실험적인 영화를 찍는데 그는 한국인 감독 ‘신상훈’이고 얼핏 예전 홍상수 감독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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