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윤수(김권후)는 은근히 바쁘다. 노트북 앞에 종일 앉아 있는 것 같으면서도 치매인 어머니를 돌보고 과외 아르바이트도 나가야 한다. 안 풀리는 소설,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어머니, 학습 의욕이 없는 과외 학생과 심기 불편한 학부모에 서서히 짓눌리면서 그는 이명에 시달린다. 치매 환자 가족 모임에서 만난 주희(구자은)와의 한담이 특효약 역할을 하지만 효과는 그때뿐 증상은 갈수록 심해진다. 반면 장례지도사 치원(박종환)은 한가하다. 그러나 몸은 편해도 누가 자신을 조종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마음은 영 불편하다. 일에 금세 적응한 신입 은경(이태경) 역시 세상과 자신이 불화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종종 멍해진다.
장세경 감독의 <픽션들>은 불안이라는 단일한 관심 주제에 최대한 가닿고자 노력하는 영화다. 특정 사건으로 생긴 한시적 불안이 아닌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 자체를 탐구하려는 뚝심이 돋보인다. 소설가(윤수)가 사는 현실과 소설 속 인물들(치원과 은경)이 사는 허구를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펼쳐내는데,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가 복수로 존재하면서 불안의 양감이 극대화된다. 시각적 디테일을 최소화해 프레임 안에 인물과 불안만 있는 듯한 미디엄숏들로 저마다의 사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두 세계를 점차 포개 인물의 실체를 분간할 수 없게 하는 것으로 주제를 강조한다.
다만 하나의 세계로 합쳐진 후반부터는 이야기끼리의 균형과 리듬이 맞지 않아 어색해지면서 극 전체가 흔들리는 양상을 보인다. 모든 배우가 똑같이 힘없는 몸짓과 공허한 표정으로 불안한 인물을 표현해 연기가 밋밋하게 다가오고 갈수록 무신경하게 반복되는 대사는 유지되던 긴장감에 훼방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