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SF]
[곽재식의 오늘은 SF] 1973년에 상상한 2022년
2022-12-08
글 : 곽재식 (소설가. 공학박사)
<소일렌트 그린>

이미 다른 글에서 한번 언급한 적 있지만 2022년이 가기 전에 꼭 한번 되짚어보고 싶은 영화로 <소일렌트 그린>(1973)이 있다. 영화는 미래 세계가 서서히 비참한 사회로 변해 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 주인공이 이런저런 모험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결말에 가까워지면 ‘소일렌트 그린’이라는, 새로 나온 식품의 정체를 밝히려 한다는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한동안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소일렌트 그린의 성분이 뭔지 밝히며 외치는 장면이 인상적인 SF 명대사로 자주 언급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 비슷한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온 탓인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과거만큼 무겁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영화의 진짜 구경거리가 뭔지 보다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이 영화는 망해 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괴롭게 사는지를 하나하나 보여주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영화 속의 세상은 핵전쟁이나 소행성 충돌 같은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망해 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사회가 잘못 꼬이면서 한쪽으로 점점 쇠퇴했기 때문에 슬슬 망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당연시하는 풍요를 누리지 못하게 된 상황이 어떤 괴로움을 주는지 보여준다. 한때 한국 언론에서는 “이러다가 잘못하면 한국이 필리핀처럼 된다”, “이러다가 잘못하면 한국이 베네수엘라처럼 된다”, “이러다가 잘못하면 한국이 남미처럼 된다”라면서 다른 나라와 비교해 가며 경제가 무너지면 살기가 얼마나 힘들어지는지 자주 언급한 적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 역시 비교 대상과 방향이 좀 다를 뿐이지 그런 식으로 망한 경제의 기괴한 풍경이 미국 사회에서 일어난다고 치고 그 상황을 보여준다.

우선 이 영화 속 세상에서는 집이 없어 길바닥에서 대충 사는 사람들의 비율이 엄청 높다. 얼마나 살 곳이 없는지 남들이 사는 집의 복도 계단에 앉아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붕이 없는 길바닥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그래도 건물 안 계단을 침대 삼아 눕는 것이 나으니까 그렇게 지내는 것이다.

물자도 부족한 상황이다. 어마어마한 갑부가 특수 보관 창고에 대단한 보물인 양 보관하고 있는 것이 쇠고기 한 덩어리다. 이 영화 속 세상에서는 그것이 돈을 주고도 못 구하는 희귀품이기 때문이다. 이런 물자 부족 상황은 영화 말미를 장식하는 중심 소재로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정상적인 농축산물이나 해산물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고기나 생선 대신에 소일렌트사에서 만든 거무죽죽한 모양의 이상한 가공식품을 만들고 있다. 그나마 사람들이 먹을 만한 음식이 그것뿐이기에 소일렌트는 신제품을 계속 발표하는데, 소일렌트 그린도 바로 그중 하나다. 이런 식으로 경제가 망한 세상이니 거리 풍경도 지저분하고 황량한데, 그런 와중에 어떤 시설, 어떤 사람들은 말끔하게 꾸며져 있는가, 왜 그런가, 하는 이야기로 세상을 풍자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 덕에 영화가 다루는 내용은 더 풍성해진다. 내가 이 영화를 좋게 본 이유도 바로 이런 여러 세부 묘사와 장면들이 배치돼 이어지는 모습이 좋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세상이 망해 가는 건 폭발적인 인구 증가 때문이다. 그러니까 세상에 인구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고, 살 집이 없고, 소비할 자원이 없어져서 모두가 가난하고 비참해졌다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영화 포스터에는 길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기계 삽 같은 것으로 낙엽 청소하듯 퍼담는 장면이 크게 그려져 있다. 때문에 사람들이 가득하고 비좁은 공간이 자주 화면에 등장한다.

그런데 영화 포스터의 한쪽 구석을 보면 대단히 재미난 숫자가 적혀 있다. 바로 이 영화의 배경인 2022년이다. 1973년에 나온 이 영화는 영화가 나온 지 50년 후에는 세상이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보여주는데,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실제로 사는 세상이다. 나는 이 2022라는 숫자가 이 영화에서 한 가지 새로운 지식을 찾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 대부분의 선진국이 인구 폭증은커녕 인구 감소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시대가 2022년이기 때문이다. 장차 한국, 일본, 유럽 각국의 경제가 무너질 만한 큰 위협이 되는 원인으로 누구나 지적하는 것이 젊은 층 인구의 감소에 따른 인구 절벽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과 완벽하게 정반대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몇몇 나라들만 겪는 특이한 일은 아니다. 합계 출생률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세계적인 인구 대국인 중국의 합계 출생률마저 스웨덴, 덴마크 같은 유럽 선진국보다 낮다. 인도라면 아직도 출생률이 그런대로 높은 편이지만 그 역시 감소세다. 1970년대 선진국으로 진입한 프랑스의 당시 출생률보다 지금의 인도 출생률이 더 낮다.

<소일렌트 그린>의 이면에 깔린 발상은 기본적으로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맬서스 트랩에 뿌리를 두고 있다. 흔히 “식량 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구 증가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면서, 결국 이대로라면 사람 수에 비해 자원이 너무 부족해져 다 같이 망한다던 그 걱정이다. 때문에 당시에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지 않고 그냥 생명을 잃도록 방치해야 한다거나, 철권 독재 정부가 철저히 사람들의 삶을 관리해야 한다거나, 전쟁을 일으켜 경쟁력이 약한 나라 사람의 목숨은 좀 줄여야 한다는 식의 다양한 사상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그 시절 상상하던 식량 위기는 이미 20세기 초에 질소 고정 기술이 개발되면서 진작에 극복되었고, 전반적인 세계의 인구 증가 추세도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현실이 빠르게 변화하는데도 맬서스 시대에 등장한 사상은 끈질기게 남아 아직도 이곳저곳에 그 잔재가 들러붙어 있는 것 같다. “자원이 부족하니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에 밀리는 쪽은 제거해야만 한다”는 전제는 <소일렌트 그린>이 나온 1973년뿐 아니라 영화의 배경인 2022년 현재에도 고정관념으로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2023년이 되면 다들 이런 틀을 깨고 나오면 좋겠다. 이를테면, 영화 속 2022년, 콩 단백질로 만든 것 같은 인조 고기는 자원 부족 상태와 비참함의 상징일 뿐이지만 실제 2022년의 인조 고기는 오히려 동물에 대한 배려와 건강을 생각하는 호사스러운 신기술로 대접받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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