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소녀들>
디즈니+
<행복한 라짜로>로 당해 평단의 주목을 독차지했던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의 중편영화다. 1940년대 초 전쟁이 한참인 이탈리아의 한 가톨릭 기숙 학교에서 일어나는 어린 소녀들의 크리스마스 일화를 그린다. 한 여인이 학교에 먹음직한 케이크를 기부한다. 그런데 수녀들이 교주에게 케이크를 바치려 하고, 이에 소녀들은 자그마한 반란을 일으킨다. 종교와 정치의 권위적 억압이 극에 달했던 시공간에서도 순수함과 영민함을 잃지 않는 어린 소녀들의 모습이 따스한 미소를 유발하는 작품이다. 40여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석류의 빛깔>이 떠오르는 종교적 색채와 회화적 영상미, 자크 타티의 발랄한 움직임과 산뜻한 코미디, 오즈 야스지로가 다루는 아이들만의 영롱함이 고루 섞이면서 탁월한 조화를 이뤄낸다.
<소닉 프라임>
넷플릭스
다중우주 열풍이 소닉에도 불었다. 흔히 바람돌이 소닉으로 알려진 파랗고 빠른 고슴도치 소닉이 악당의 꾐에 빠져 다중우주의 길목을 열어버린다. 그러곤 친구들과 평화로이 살던 그린 힐의 우주에서 튕겨나가 악당 에그맨이 군림하는 우주에 불시착한다. 고도로 기계화된 도시에서 시민들은 부품처럼 소비되고 있다. 이에 소닉은 에그맨을 격파하고 다중우주의 비밀을 밝혀내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 한다. 30여년 동안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IP, 소닉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다. 이전의 영화, 애니메이션 시리즈보다 진일보한 소닉의 속도감 넘치는 액션이 단연 두드러진다. 시리즈 자체의 재미를 우선하다 보니 오랜 시간 퇴적된 IP의 각종 설정이 헤쳐지는 부분이 있지만, 원작 게임과 같은 픽셀 화면의 연출 등이 올드팬들의 마음을 녹인다.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
웨이브
SF 깎는 장인 리들리 스콧이 제작하고 일부 회차를 연출한 시리즈다. 두명의 로봇, 파더와 마더가 척박한 행성에 정착하여 아이들을 생산한다. 전 우주에 군림하고 있는 미트라교 세력을 피해 무신론에 입각한 인간 사회를 구축하려는 목적에서다. 하지만 미트라교 신자들이 행성에 찾아오고 파더와 마더의 계획을 방해한다. 내내 과잉의 연출을 자제하다가 종종 기괴한 마력을 폭발시키는 리들리 스콧 특유의 방식이 작품 곳곳에 깃들어 있다. 안드로이드와 인간 사이의 팽팽한 장력을 종교라는 갈등의 씨앗으로 묶어내는 양태가 자연스럽게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리게도 한다. 작품 전반에 드리운 잿빛의 차가운 색감과 건조한 이미지, 날카로운 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시즌3 제작에 차질이 발생하면서 앞으로의 이야기 진행은 중단된 상태다.
<피스메이커>
웨이브
제임스 건이 연출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스핀오프 시리즈다. 본편에 이어 프로레슬러 출신 배우 존 시나가 피스메이커를 연기한다. 작품의 성격 역시 성적, 폭력적 코드가 잔뜩 각인된 R등급 코미디로 유지된다. 슈퍼히어로 장르의 블록버스터 요소는 대개 삭제된 채 앞서 언급한 코미디에 무게중심을 두는 모양새다. 제임스 건 특유의 로큰롤 넘버 사용과 리듬감 있는 대사 주고받기가 돋보인다. 특히 오프닝 시퀀스의 어처구니없는 군무 장면은 미국 현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더 보이즈>가 빌런보다 더 악독한 슈퍼히어로들의 치부와 음모를 드러낸다면, <피스메이커>는 영웅으로서의 존재를 위협받으며 악착같이 버티며 사는 피스메이커의 모습을 애잔하게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