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북한산
한동안 강 주변에 살다가, 북한산 주변을 맴돌며 산과 점점 가까워지더니 아예 바로 앞으로 다가가 산 지 6년째다. 최근 몇년간의 내 삶에 끼친 영향력을 꼽을 때 북한산을 빼놓기가 어려워 제일 먼저 꼽아본다. 아침에 눈을 뜰 때도 북한산의 새소리와 햇살과 함께하고 꽤나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와서도 창문을 열어 호흡하면서 위로받는다. 가까운 봉우리 중턱까지 여유가 될 때마다 산책하고 사색하면 아무리 번잡한 일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도 머리 속은 맑아지고 내가 가진 두 다리와 심장에 감사한 마음만 가득하다.
<신의 사람들> <소스필드> <여신들> <부도지> 등
직업이 이러하다보니 여유 시간이 생기면 종종 ‘언젠가 초미래적·초과거의 공간을 디자인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하며 논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초고대 유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만1600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괴베클리 테페’는 막 지어진 것이 아니라 기하학을 사용해 계획적으로 지어졌다는데, 본격적인 농경사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대규모 토목공사가 진행될 정도의 조직력은 어떻게 갖추어졌을까? 피라미드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에 새겨진 그림의 의미나 천문학의 메시지, 온 세계의 신화에 기록된 대홍수의 기억은 새로운 과학적 증거에 의해 증명된 1만2800년 전의 혜성의 충돌과 관계가 있나? 이런 질문들은 많은 주류 학자들에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할 만한 것들이지만, 나처럼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꿈꾸는 비주얼 스토리텔링 종사자들에게는 상상만으로도 신비로운 커다란 즐거움이자 취미가 된다. 아울러 젊은 시절 큰 영감을 주었던 신화들도 다시 읽기 시작하니 많은 것이 다시 보이고 들린다.
마일스 데이비스, 제프 버클리 그리고 김오키
음악은 끊임없이 듣고 사는 편인데, 최근엔 20대 후반에 들었던 음악들을 다시 듣는다. 마일스 데이비스, 운 좋게 짧은 미국 생활 시절 라이브로 직관했던 제프 버클리…. 특히
동양철학 서적들
청년기까지는 서양의 문화를 조금 편파적으로 습득했다면, 요즘은 균형감을 갖기 위해 동양의 문화와 철학 관련 서적들을 가장 많이 구입하고 있다. 공자도, 노자도, 아인슈타인도, 칼 융도 인류 최고의 경전으로 꼽은 책 <주역>을 여러 종류로 구입했는데 아직은 어렵다. 이제야 알게 되는 동양의 문화와 사상들이 너무나 깊고 오묘하며 흥미로울 따름이다. 지금은 치열한 다산과 유쾌한 연암의 차이를 이질적으로 그려낸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를 읽고 있다. 제목도 근사하지만 1장 제목이 ‘물과 불-파동과 입자’다! 너무 흥미롭지 않은가?
<마음의 미래> <단 하나의 방정식> <떨림과 울림> 등
미래 시대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궁극적으로 나와 우주의 관계로 이어진다. “오래된 꿈, ‘거의 모든 것’의 이론, 캄캄한 우주, 우주의 의미를 찾아서….” 목차만 봐도 딱 내 취향. 솔직히 이 어려운 이론들을 이해하기에는 내 머리의 한계가 느껴져 이론들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근원으로 가는 성배를 찾아가는 여정 자체가 탁월하고 박학다식하고 흥미로워 자꾸 손이 간다. 결국 가장 근원적인 ‘존재에 대한 사색에 잠긴’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은 제목이 너무 근사해서 집어든 재미있는 책이다. 결국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라는 말이 남는다.
강릉 바다 파도 소리
몇년 전부터 작품이 끝나면 아무리 시간적 여유가 없어도 가장 바다에 가까운 펜션에 자리잡고 며칠간 파도 소리만 들으며 지낸다. 바닷가 바로 옆에 있어서 그야말로 커다란 파도 소리에 온몸을 샤워할 수 있다. 시각적으로는 물론이고 머리부터 뇌와 안구, 발가락, 손끝까지 순수한 소리의 파동으로 정화된 느낌이다.